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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들의 자리는 생명살림에서 부터농약의 경우 일본에 비해서 2배 정도의 많은 양을 사용하고 있다. 가히 세계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을 방관만 할 것인가.

 

www.jadam.kr 2003-10-20 [ 일본<금요일) ]
현재로 가정해본 예수의 최후의 만찬, 수입농산물과 유해식품으로 예수 숨을 거두다.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온 자연순환적이고 환경친화적이었던 농업방식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중심으로 한 과학농법이라는 신기술(?)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전농업의 3%에도 못 미칠 정도만 친환경적인 농업기술을 적용한 농사를 짓고 있는 실정이다.

 

수십 년간 진행되어 온 현대농법이 식량증산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나, 그 결과 우리의 농토는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로, 지속적인 생산성 유지를 하는 데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농토오염에 관한 공식적인 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연작장해가 극심하고 거의 전작목에 피해를 입히는 역병이나 선충 피해 등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 토양환경 악화는 그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일본의 2배나 많은 농약 사용량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에 대한 농림부(1998년)와 FAO(세계식량기구, 1996년)의 자료를 근거로 해서 보면, 우리 나라는 단위면적당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량이 구미지역에 비해서 대략 10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농약의 경우 일본에 비해서 2배 정도의 많은 양을 사용하고 있다. 가히 세계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의 <리스크 연구학회>지와 <환경화학>지는 청산가리보다 더 맹독성을 띠고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물질로 알려진 2,3,7,8-다이옥신(2.3.7.8-TCDD)의 농도를 조사한 자료를 각각 1990년,1992년에 발표했는데, 이 자료에는 일본의 농촌, 산지의 다이옥신의 오염도는 유럽의 20배, 캐나다, 미국의 100배 이상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일본 내에서는 도시보다도 농촌의 다이옥신 오염도가 3배 가량 높았다. 이는 다이옥신의 오염이 공업화, 도시화로 인한 유해물질의 방출로 이루진 것이란 통설을 뒤엎는 것으로, 농업을 통해서 사용되는 농약이 또 다른 다이옥신 방출의 주 원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 농촌의 다이옥신 오염도는

 

일본보다 농약 사용량이 현저히 많은 한국 농촌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다이옥신을 포함한 환경호르몬의 오염이 어느 정도일까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물 별로 다이옥신의 잔류 정도를 나타낸 자료는 토양의 다이옥신 농도가 0.8ppt(1조분의 1g)를 기준으로 소고기는 37ppt(46배), 유제품은 24.1ppt(30배), 호흡은 2.2ppt(3배)의 잔류농도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이는 토양에 기준치 이하의 잔류량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물에는 수십 배 이상의 다이옥신이 잔류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토양오염의 파급효과가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판단케 한다. 국내산 버터류의 다이옥신 잔류량이 선진국들의 4~6배에 달한다는 독-스웨덴 연구소의 분석결과를 보면 현 한국의 토양오염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전지구적인 문제 환경호르몬

 

농업에 있어서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만을 문제 삼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환경호르몬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지구적인 환경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다이옥신 잔류에 직접적 원인인 유기염소계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농약회사들은 주장을 하나, 그 외의 농업에 사용되는 농약들도 환경호르몬의 잔류를 촉진하는 물질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내분비 교란 물질인 환경호르몬은 특히 자연계의 거의 모든 생물체의 생식기 및 면역계, 신경계 등 생리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암과 수로서의 차별적인 생식기능이 감퇴되거나 혼성이 되는 현상이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대

 

생명의 근원인 대지(大地)가 병들어 가고 있다. 이 병의 근본 원인을 농민 탓으로만, 정책 탓으로만 국한시킬 수도 있을지 모르나,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소비자들의 농업에 대한 무관심, 자녀들의 건강에 대한 무지, 생명에 대한 사랑의 부족이 대지의 병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이 시대야말로 농업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대다.

 

그러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역동적 힘은 농업정책으로만, 농민의 노력으로만 가능하지 않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말 중요한 힘이 있다. 바로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이다. 농사는 농민이, 소비는 소비자가라는 분리된 사고로는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을 근간으로 이루어졌던 전통적 농업의 형태가 상업농 형태의 전업농으로 전환이 되고 자급, 자생의 생활틀이 무너지면서 이제 농촌생활도 도시와 큰 차이 없는 생활수준과 비용을 요구하게 되었고 따라서 농업은 뚜렷한 하나의 경제활동이라는 의식이 기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농업으로의 전환, 즉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은 환경운동차원에서 촉진되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 하면 친환경농업으로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경제적 부가가치의 실현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새로운 농업방식으로의 전환이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소비자들의 의식전환으로 인한 구매성향의 변화가 친환경농업을 촉진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한국이 처한 자연환경의 파괴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해 토양이 극도로 오염되고 있더라도 이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도시 소비자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농업의 주체는 농민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이 소비자에게 더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농민이 처한 현실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힘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낸다.

 

농가 부채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정부 차원에서 단기적인 대책을 세워 다소 위기를 넘긴 듯하지만 장기적으로 부채를 해소할 만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농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농가 부채와 농업 기술과의 관계를 말해 보자. 농가 부채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 대부분의 농가의 경우, 실패의 위험성이 따른다고 보는 새로운 농업, 즉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은 부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선택을 거의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환경농업을 추진해 나가는 존경할 만한 농민들도 있지만 이것이 농업현장의 새로운 주류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소비자들의 구매성향의 변화가 농업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이렇게 소비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면 하소연할 소비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일반농산물에 비해 고가로 형성된 친환경농산물의 가격으로 인해 중산층 정도의 수입으로도 구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비자 스스로 구매방법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간다면 방법은 없지 않다.

 

전국적으로 택배망이 발달되어 전국 어느 곳에서든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리고 상품으로서는 미흡하지만 질적으로는 우수한 과일들을 일반농산물에 비해 결코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농가와 직거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없지 않으나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친환경농산물의 애용은 필수적이다. 각종 첨가물로 가득한 인스턴트식품으로, 생산과정이 어떤 농산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없이 그저 양으로, 칼로리만을 중심으로 식단을 짜는 가정주부는 진정한 어머니로서의 자격이 없다.

 

남편과 자식에 대한 올바른 건강상식이 자연과 흙을 살리는 힘의 근간이다. 친환경농업을 올곧게 실천하는 농민에게, 또 계획하는 농민들에게 어머니들이 희망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건강을 올바로 이해하는 소비자로 자리잡는 것에서부터 친환경농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입농산물의 농약오염도를 강조하며 국내농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얄팍한 홍보가 친환경농산물의 생산을 촉진하진 못한다.

 

일본에서 발행되어 진보적 잡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주간지 「금요일」은 1993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해서 파격적인 그림을 표지로 선택했다. 예수님의 최후 만찬 그림을 활용한 것인데, 예수님 생존시의 최후 만찬 그림과 현대판 예수님 최후 만찬 그림을 위 아래에 대비시켜 놓았다. 자세히 보면 현대판 그림에는 예수님께서 만찬 도중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서 표제어로 ‘크리스마스 축제는 농약이 가득한 산해진미로’를 써 놓았다. 예수님이 조미료와 농약이 범벅이 된 요즘의 음식을 드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완성하기도 전에 돌아가신 것이다.

 

이 잡지는 농산물의 심각한 농약오염 실태를 고발하며 식생활에서 무분별하게 수입농산물을 활용하는 일본사회에 경고를 보낸다.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 이 잡지를 보고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면서 교회의 역량으로 이 사회 속에서 추진할 수 있는 생명운동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독교의 가능성

 

흙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어머니다. 고로 흙은 우리와 한 몸이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나오듯이 우리는 흙으로부터 왔다. 이런 흙을 병들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존재를 병들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보다 깊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이해한다면 요즘에 만연되는 자연파괴·토양오염의 방관은 신앙적으로도 엄청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신앙적 이해라면 교회는 강력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엄청난 교세로 이 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여전히 흙·자연을 살리는 환경운동이나 친환경농업의 보급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는 곳이 너무도 적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신앙의 본질은 생명을 사랑함인데 어찌 ! 정말 혼란스럽다.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는 소비자들에게 환경교육을 하고 구체적인 힘을 발휘할 조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적인 역량이 점점 쇠잔해져 가는 것 같다. 친환경농업은 시대적인 당위성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힘 있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현사회 속에 가장 큰 조직으로 자리잡고 있는 교회의 역할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교회가 움직이면, 그 많은 교단이 적어도 한 가지에서만 일치를 본다면 한국은 변할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간절한 소망이다.

 

친환경농업은 농업만으로 분리된 영역이 절대 아니다. 친환경농업으로부터 생명의 어머니인 흙이 살아나고 우리의 생명은 생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과 신앙이 하나되는 참 신앙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농촌이 새롭게 변할 가능성은 소비자의 구매성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소비자가 올바로 서야 농업이 올바로 설 수 있다.

 

그래서 이 사회 속에서의 교회는 여전히 친환경농업을 확산시키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조한규 명예회장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10.2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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