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닮

며칠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악양에서-전주-부안-전주-악양-진안-장계-진안-무주-영동-서울-광주-전주-다시 진안, 그 진안 운장산을 오르고 내려와 이제서야 악양에 돌아왔다.

먼저 온 가을을 찾아 떠난 여행도 즐거웠으나 편안함으로 따지면 집이 좋기는 하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10여일을 보내서였는지 돌아와 혼자먹는 밥이 낯설다. 나이 탓인가. 아니라면 가을 탓인가.

진안 마이산 풍경을 찍으려 맞은편으로 올라갔던 작은 산능선에서 이른아침 맑은 이슬방울을 달고 있는 마른풀을 보았다. 그 마른풀의 마디마디 눈망울에 뚝뚝 금새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같은 그렁그렁 맺힌 눈물꽃망울들, 내 탁한 눈에서 맑은 눈물꽃망울들은 언제부터 떠나갔을까.

그 앞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아침햇살에 그 이슬꽃망울들 눈감아도 환하다 빛을 발한다. 그래 빛나는 것들 속에는 눈물겨움이 있지. 작은 풀꽃인들, 저 나무, 저 돌맹이, 저 산, 저 안개, 저 바람, 저 저...

벌써 저녁인가. 처마 끝 왱그렁거리는 풍경소리에 문을 여니 문밖이 캄캄하다.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가을비라도 오려는가. 날이 추워지겠다. 불을 좀 많이 지펴야지. 어제밤엔 좀 미지근하게 불을 땠더니 몸이 좀 무겁고 하던데 오늘밤엔 뜨근뜨근 아랫목에서 지져야 겠다.불을 때고 들어와 저녁을 차린다. 밥통을 열어보니 저녁밥으로 먹기에는 양이 좀 모자라다. 그래 어제 돌아올 때 구례토지 우리식당에서 도토리묵을 사왔었지. 두모를 사서 한모는 서울가는 친구에게 주고 한 모 가져왔는데 묵국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묵국수를 만들었다. 묵국수를 조금 남은 밥에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