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와 초롱꽃 사이

작년 생명평화탁발순례로 제주도에 갔을 때였다.

그때 성산 일출봉 근처 바닷가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함초롬 그러나 눈부셨던 그 자태,

갯양귀비꽃이었다. 이렇게 그녀를 처음 만났는데 그냥 발길을 뒤로 할 수 없었다.

일행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가물거렸다. 이제 보이지 않는다.

기다렸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첫치마끈을 풀듯 꽃잎이 바람에 날리기까지,

그리하여 몸안에 어린 씨앗들이 자라나 알알이 익어가기까지,

일순 수유라고 할 수 있을까. 억겁과 찰나의 강을 건너 온,

거기 그 자리에 내가 그랬다.

숨바꼭질처럼 그 갯양귀비 씨앗 겨우 몇알 얻을 수 있었다.

인내는 결코 쓰지 않고 달콤했다.

담배갑의 비닐을 벗겨 그 안에 담았다.

한달여 제주 순례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뿌렸는데

이렇게 꽃을 피웠다.

ⓒ www.jadam.kr 2005-07-18 [ 박남준 ]

오늘 아침 꽃밭에 풀을 뽑는데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엊그제 테레비에서 봤는데 아편나오는 양귀비는 아닌가보네.

아, 이 꽃이요. 제주도 바닷가에서 얻어온 갯양귀비예요.

바닷가니까 갯이 붙었는가 보네.

그 아주머니 우리집 앞마당 제집처럼 들고 나는데

동안 내가 아편나오는 양귀비를 마당에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겠다.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며칠 전부터 초롱꽃이 피기 시작했다. 모악산방에서 이사올때 몇뿌리 옮겨왔던 것이다.

전화기 자동응답에 녹음을 했다.

ⓒ www.jadam.kr 2005-07-18 [ 박남준 ]

초롱꽃이라고 아나요.

초롱꽃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맑은 종소리가 들릴 것 같고요

초롱불을 환히 밝혀놓은 꽃 같기도 합니다

저 초롱꽃이 한창인 집주변에 있습니다

연락사항 남겨두시고요 그럼 안녕

초롱꽃 곁에 앉아 귀기울인다.

콩당콩당 가슴이 두근거린다.

윙 윙 벌 한마리 날아온다

쉿 조용히 해봐 금방 들릴라고 했는디

너 호박벌이제 호박벌이면 호박꽃이나 찾아갈 일이제

어디 보는 눈은 있어가꼬

야 좀 조용히 하란말이야

아니 너 정말 그럴래

윙 윙 윙

이놈의 쉐키가 콱 그냥 ;^^

박남준 시인,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07.15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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