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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눈물 젖은 두만강아~~~~~~~~
지리산숨결 2004-05-01 14:32:10 | 조회: 8404















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 노래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님은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우니
떠나간 그님이 보고 싶구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님 가신 강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 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해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의 국경을 따라
동해로 흐르는 길이 512km의 강이고 . 선사시대 이래로
한반도 문화 형성에 통로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강이었다.
역사적으로 여진족과 관련이 깊은 강으로 「두만」이라는 명칭은 여진어에서 연유된다
[豆滿江,뚸만쟝]은 여진어로 투먼 싸이친(圖們色禽),] 싸이친이란 강이란 의미로
그 뜻은 <<만수지원(萬水之源)>>이 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1869년
함경도 지방의 대흉작 때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 구한말에는 애국지사들이
의병활동을 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녔고, 특히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만주로의
이주 장려 정책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횡포로 농토를 빼앗긴 100만이 넘는
우리 민족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민족학교를세워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두만강은 이렇게 민족의 역사를 안고 흘러온 강으로 실향민들이
마지막 조국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통한의 강이었다

1930년대에 두만강 나루는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가는 실향민들로 붐비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낯선 타국땅으로떠나가는 겨레의 마음은 슬픔에 젖었고,
사랑하는 남편과 이별하는 여인들의 오열이 그칠 새가 없었다.
가슴 아픈 이별의 눈물을 두만강 물결 위에 뿌리며 정처 없이떠나간 옛님은
다름 아닌 우리 겨레요 조국이었으니, 이 노래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가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구애의 노래처럼 보이나,
그리운내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하는 후렴에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간절한 감정이 담겨 있다.

이노래는 4분의 2박자 트로트 리듬으로 전주, 간주, 후주
그리고 가사가 3절까지 있는 노래이다 ·선율은 솔, 미, 레, 도 의
하행진행과 같은 리듬이 반복되는 노래로 음악적으로는 그렇게 뛰어난
곡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의 통속적인 대중가요의 패턴을 벗지 못한 곡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싸구려 뽕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민족의 한을 읊었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창작에 앞서 이시우는 〈봄 잃은 낙동강〉을 창작 하였는데‘
여기서도 역시 일제에 나라를 잃은 민족의 설움을 외면·할 수 없어
낙동강에 봄이 와도 그 봄마저도 잃었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여타 작품들 중에서도 〈눈물 젖은 두만강>은 그의 대표작이며,
이 노래를 창작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고 한다.
이 노래가 지어진 사연과 이 노래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민족 수난기의 가요사]에서 추려보면 하나의 민족 서사시 랄 만큼 극적이다.

두만강의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에는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도문철교(320m)가 있다. 그 철교를 넘으면 중국의 첫관문인
옛 간도땅 투먼[도문]이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1930년대 중엽 극단 예원좌 일행이 중국의 조선인 부락을 찾아 다니며
순회공연을 할 때였다. 중국의 동북지방인 용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곳을 거쳐 두만강 대안의 작은 도시인 도문의 한 누추한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지난 1938년 O.K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된 <눈물젖은 두만강>은
지난 30년대 중국 투먼시의 한 여관이라고 밝혀졌다]

그 여관은 조선 사람이 경영하면서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었는 데,·
뒷마당에 단풍나무가 두 그루 서 있었다. 마침 가을철이라 나무 하나는
새빨강게 물들고, 다른 한 나무는 샛노량게 물이 들어 집 떠난
나그네의 향수를 느끼게 하였다. 그 단풍나무를 바라보노라니
작곡가 이시우의 마음에 저도 모르게 쓸쓸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이시우를 비롯한 몇몇 배우들이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저마다
고향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관집 주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저 단풍나무는 내가 두만강을 건너올 때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외다
말하자면 고국 땅의 나무외다. 내가 고향을 떠나오던 때가 기미년(1919년)
추파월(秋八月)인데, 연연히 그날을 잊지 말자고 두만강나루을 건너오면서
어린 단풍나무를 몇 그루 떠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두그루만 저렇게 살아 남었네요
이 나무를 심은 지가 이제 십여년이 되는데, 저렇게 단풍이
들어 제법 가을 맛을 풍겨주네요.”

기미년이라면 1919년 3 ·1운동이 일어난 해…, 가을이 되어야
단풍 고운 줄 안다고, 늦가을 낙엽지는 순간까지도 순연한 붉은 빛을
잃지않으므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아름다움을 심어주는 단풍을 생각하니,
불현듯 이시우는‘추억’이라는주제가 떠올라 악상을 고르려고
사색에 잠겨보았다. 그러나 신통한 악상이 잡히지 않는다.
이날밤, 작곡가는 밤이 깊도록자리에 누워서 사색을더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옆방에서 난데없이 여인의 비통한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피곤한 잠에 떨어져 있던 극단 일행도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이시우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여관집 주인에 게 오열하는 여인에 대한 사연을 알아보았다.
여인의 남편은 만주땅에 와서 항일투쟁을 하다가 그만 불행하게도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여인은 간난 신고하면서
두만강을 건너와 남편이 끌려간 형무소를 찾아갔으나, 남편은 이미 일제에
총살된 뒤였다 30년대 중반 만주에는 독립군에 투신한 남편들을
수소문하며 방랑하는 여인들이 적지 않았다.
남편잃은 설움에 겨운 여인은 마침 그날 이 남편의 생일이라
조용히 술이나 한잔부어놓고 생일제를 지내려 하였다.
그런데 여관집 주인이 그여인의 남편과서로 잘 아는 사이 였던지라
이를 알고 제물을 차려 들어왔다. 그리하여 여관집 주인이 차려준 젯상에
술을 붓고 난 여인은 그만 솟구쳐 오르는 오열을 참 지 못하여
밤중에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여관집 주인을통해 그여인에 대한사연을들은 이시우는가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튿날 그 여인이 남편을찾아 건너온 두만강을바라보며
나라 잃은우리 겨레의 슬픔을 절규하는 내용으로 이 곡을 지었다·
〈눈물 젖은두만강〉은 이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가사는 도문에서 만난 문학청년 한명천이 지었다고 한다.

후렴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희생된 남편을향한그리움에 목메는 여인의
애절한 호곡 소리는“그리운 내 님이여”라는 시어로 승화되 었고,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은유되었다.

그리고 2절의 “추억에 목메이는 애달픈 하소”라는 구절과
3절의 님 가신 이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라는 구절은 여관집
뒷마당에서본 단풍나무의 시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 창작되자, 극단 ‘예원좌’는 장월성이라는
소녀배우로 하여금 막간에 나가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소녀배우가 처음으로 이 노래를 부른 날 장내는 떠나갈 듯한
박수로 터져 나갈 듯하여 장월성은 앵콜 송을 불러야만 했다.
장월성은 당시 레코 드를 취입할 정도의 가수가 아니었는데도,
노래가 워낙 사람들의 정서에 맞았기 때문에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고국을 쫓겨사는 그곳 조선족의 공감대를 타고 눈물과 울음으로 소용돌이쳐 나갔던 것이다.
그 후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시우는 김정구를 찾아가
레코드화할 것을 제의, 이에 감동한 김정구는 박시춘에게 악보를 보이고
시인 김용호에게 2절, 3절의 가사를 의뢰하여 레코드로 취입하였다.
그래서 레코드에는 김용호 작사로 되어 있 다.

두만강 연안 따라 공연하는 조선 악극단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김정구의
「눈물젖은두만강」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 김정구는
이 노래가 태어나게 된 사연을 말하곤 했다. 이튿날 남편의 옥사소식을
들은 소복 입은 한 한국여인이 강변을 거닐다가 투신, 부용꽃처럼 흘러갔다는 말이 들려왔다.
어젯밤 공연 때 노래하는 바로 앞에서 울음을 못 감추어 안달하던
소복 입은 바로 그 여인이었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1943년 조선총독부는 「
조선인을 자극하는 민족성이 강한 노래」로 낙인, 발매 및 가창 금지곡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이 노래는 민간에 급속히 유행되어, 조국이 그리울 때도,
떠나간 옛 님이 그리울 때도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불렀다
[1930년대 중엽 극단 ‘예원좌’의 배우였던 장월성의 구술, 1973년 5월 29일).

특히 60년대에 시작된 장수 반공 라디오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테마곡이 돼 더욱 유명해졌다.

<눈물젖은 두만강>의 노래비가 이 노래의 작곡가
이시우씨(작고)의 고향 경남 거제에 세워진다.거제시는
거제면 남동리 45 이씨 생가터에 <눈물젖은 두만강>
가사 전문을 새긴 노래비를 건립하고 인근 일대를
소공원화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키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본명이 이만두인 이씨는 1928년 거제초등학교를 19회로 졸업했다
해방후 귀국해 서울에 살면서 작곡활동을 계속해 오던
이선생은 지난 75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으며
선생의 위패는 현재 인천 용화사 법당에 안치돼 있다 한다

그리고1998년9/25일 타계한 김정구 선생.
알고 있는 분들은 다 알겠기에 간단히 언급 합니다

김정구는 1916년 원산의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성량이 풍부하여 30년대 톱가수가 됐다. 형 용환은 가수이자 작곡가였다.
누이 안라는 무사시노 음악학교 출신의 소프라노였고 동생 정환도 피아노를 전공했다.
누이의 영향때문인지 원산기독교청년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한때 작곡가 이흥렬이 이끄는 원산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주자와
혼성합창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등 클래식 음악에 뜻을 두었다.
그가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온 것은 1935년이다.
가수의 길에 들어선 그는 코믹송을 부르는 만요가수로 두각을 나타낸다.
"왕서방 연서" "총각 진정서" "바다의 교향시"를 부를 때는
우스꽝스런 분장과 특유의 어투, 경쾌한 몸짓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김정구, 그가 무대에 서면 넓은 무대가
어느새 그의 몸보다 작아진다"는 언론의 절찬도 받았다.
일본 순회공연때는 인기를 독차지했다. 도쿄 공연때 일제에 볼모로 잡혀있던
영친왕의 아카시아 저택에 초청받아 낙화삼천을 부르다 다함께 통곡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가수로서의 일생은 어느 누구보다 화려했다 75년에는 회갑기념 쇼를 가졌다.
80년에는 문화훈장 "보관장"도 받았다.
남북예술단 교환공연이 열린 85년에는 꿈에도 그리던 평양에 가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구성지게 불렀다.
지난 93년부터 자식들이 사는 미국에 가 있던
그가 1998년9월25일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운 고향땅 원산에 묻어달라"는 유언만 남기고.
고복수에서 남인수 김정구로 이어지는 해방전 인기가수세대가 조용히 막을 내린 셈이다.

pureland의 노래는 세월따라에서 발췌정리



김 병 권 印
2004-05-01 14: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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