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속도를 자연과 호흡하듯 맑고 깊게…
시인인 그가 홀연 서울 생활을 접고 지리산으로 들어간 지 7년째다.
처음엔 그의 뜻밖의 행보에 지인들이 놀랐지만,
이제 이원규는 “지리산 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어다니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지리산 사람이 되어 있다.
그는 산속에 묻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움직인다. 아니, 걷는다.
날로 오염이 가속화되어 썩어가는 낙동강 1,300리를 걸었고
지리산 850리와 백두대간 1,500리를 걸었으며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를 지원하며 부안에서 서울까지 걸었고,
지금도 도법, 수경 스님과 함께 “생명평화의 탁발순례단”의 일원으로서 달마다 천리 길을 걷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
ꡔ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ꡕ(좋은생각사)에는
그가 왜 걷는지, 그의 소박한 삶과 자연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자꾸 넓어지고 더 빨라지는 동안
길 위에서 길을 잃고
인간의 길 위에서 죄 없는 야생동물들이 죽어갑니다.
이제 남은 것은 길을 지우는 일.
물고기는 헤엄을 치며
저의 지느러미로 물속의 길을 지우고,
새는 날며
저의 깃털로 공중의 길을 지우지요.
마침내
나도 길을 지우며 처음처럼 가리니
그대 또한 길이 아닌 곳으로
천천히 걸어서 오시기 바랍니다.
―본문 중에서
시인 유용주는 발문을 통해,
이 땅에서 아프지 않은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원규가 직접 걸으면서 쓴 이 편지 전편을 다 읽었지만
어느 구석에서도 편지로 읽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한 편의 시를 읽었을 뿐이지요.
오랜만에 사적인 편지를 공적인 마당으로 끌어올린 시다운 시를 읽었을 뿐입니다.
한 편 한 편이 우리 각자에게 중요한 화두 하나씩을 던져주는
죽비로 읽었을 뿐입니다.”라고 토로하며,
꽃이나 나무, 산이나 강이나 돌을 비롯하여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삶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 인연은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허물고 오래 전부터 한몸이었다는,
생명과 평화에 대한 준열한 물음이자 요구임을 지적한다.
이에 탁발 순례라는 ‘상생(相生)의 빈손 여정’이
나눔의 아름다움으로 눈부시게 변하기를 바랄 뿐이다.
■ 마음에 미풍이 스치는 사색의 숲길
“행여 지리산에 오려거든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기를”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몸이 되는 상생(相生)의 길”
임을 강조하는 이원규.
그래서 작가는 산행을 할 때에는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계곡을 따라 바위를 밟고 올라간다.
지리산에서의 생활은 지리산에 정착한 이웃들과 함께라 더욱 정겹다.
불법 체류중이던 태국인 노동자의 수술 보증을 섰다가
엄청난 수술비를 떠안고 서울서 내려온 포장마차 주인과의 술자리,
가을 소풍 나온 초등학생 아이들 때문에 들썩거리는 마을 어른들,
석간수로 찻물 우려 나눠 마시는 지리산 차맛의 정취 등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 아니 갈 수 없는 길―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
"모두들 더 많이 가지고 끝없이 이기기만을 바라는 세상 속으로
버리고 버리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생의 길을” 위해 이원규는 걷는다.
이는 <생명평화의 탁발순례단>의 한결같은 마음이기도 하다.
민간인 학살지역이나 빨치산이 죽은 곳을 지날 때는 천도재를 올리고,
충혼탑이나 경찰전적비를 만나도 똑같이 천도재를 올리고,
농어촌의 마을 마을을 다니며
사고든 자살이든 자식을 먼저 보내고 한숨 짓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개인적인 해원을 위해서라도 천도재를 올린다.
가다가 초상집을 만나면 상여를 메거나 망자의 해원을 위해 염불을 할 것이며,
농사철이면 미력하나마 일손을 거들기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알차게 속으로 늙는다는 것은 누구나 죽어가고 있다는
상식에 기꺼이 발을 맞추는 것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무덤으로 가는 길 위에서
조금씩 더 여유롭고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 이원규 약력
1962년 문경에서 태어남.
19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편지」 1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1998년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
지난해에는 MBC TV <심야스페셜>에서
지리산 시인의 소박한 생활상을 그대로 안방에 전달,
도시 생활의 풍요로움에 젖은 이들에게 큰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시집으로는 『옛 애인의 집』(2003), 『돌아보면 그가 있다』(1997),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1993), 『빨치산 편지』(1990)를,
산문집으로 『벙어리 달빛』(1999)이 있다.
자농여러분 너무 오랫만에 뵙지요
어제까지 제주 순례에 실무일로 함께 하다
이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모두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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