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일주일 전부터 천둥번개친
서울 자농모임이 있었습니다.
하루 해가 귀하고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이 바쁜 철에
저 멀리 진주에서, 고성에서, 화천에서 오셨는데...
우선 번개를 주동한 저로서는 못내 아쉬움과 허전함,
아니 얼마나 송구스러움이 남는 모임이었는지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성격이 다른 두 모임(1부, 2부)을 하루에 연이어 갖다보니
설레임이 지나쳐 아마 안테나에 이상이 생겼나 봅니다.
풀과 나무와 햇살과 고요한 바람,
황토빛깔 웃음을 웃는 여인네들의 정겨운 대화와 천진한 어린아이들
사람들 옆에 드러누워 편안한 오수를 즐기는 어미개들과 강아지,
소박하지만 편안함과 자연이 함께 한 점심식사.
그리고 여유롭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1부 모임은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왔습니다.
이것이 이번 행복배님이 사는 곳에서의 시골모임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2부 모임은 어떠했는지요.
1부 모임이 오픈게임이었다면 2부모임은 본게임이었어야 했는데
저로서는 2부가 유감스럽게도 완죤히 낙제를 간신히 면한
송구스러운 모임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누군가의 두 번의 전화를 받았건만
도저히 통화할 수 없을 정도로 멍멍해서 급히 밖으로 뛰어나와서야
통화를 마칠 수 있었던 주변의 엄청난 이야기 총알들.
왠지 호사스럽고 번들거리는 실내장식과 잘 차려입은 손님들의 형식성.
인공조명으로 빛나는 어두운 도시의 밤과
여유없이 빠르게 흘러만 가는 먼 곳에서 온 우리들의 시간..
여럿이 들어갈 방의 크기와 테이블 배치를
미리 챙겨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로만 예약한 탓에 좁은 방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3개조가 서로 등을 마주 대하고 앉아야 했던 옹색함.
더구나 일찌감치 시간에 맞춰 올라오신 시골 자농님들은 한 쪽부터
채곡채곡 줄 맞추어 앉아계신 덕에 저를 포함하여 늦게 온 서울내기들간의
눈에 뵈지 않는 분단의 어색함과
물론 너그러우시겠지만 어 이상하네..
이게 난초향 초등학교 동참횐감 하는 의구심 아닌 의구심.
더우기 결정적으로 면목 없었는 것은 아무리 장소가 좁고 앉음새가 옹색하고
시끄러웠다고 하더라도 처음 만나는 분들끼리 서로 수인사를 나누는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는 엉터리 모임 주선자 난초향.
이런 엉터리 난초향은 2차 '건아들' 라이브 카페가 끝날 때까지
혼이 나갔으니..
지금에서야 아쉬워한들 아뿔싸입니다.
이것이 이번 서울 2차 모임이었고
왜 제가 낙제를 간신히 면한 모임이었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소서..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 자신을 나타냅니다.
언어는 인간 존재가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내 존재를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내가 살고 있는 존재의 집, 영혼의 집으로 상대방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말하는 사람의 존재를 만나는 것이고
그 존재의 집 초대에 응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이야기는
서로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고
서로의 영혼의 집으로 초대하는 대화를 했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 할 때
그 이야기가 서로를 상대에게 보이고
상대를 자신의 영혼 속으로 초대하는 동안
언제나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이야기를 경청하여 듣는 제3자가 있습니다.
그 제3자는 침묵입니다.
자농님들, 설혹 겉으로 내뱉어진 이야기가
소음 속의 고함대화였을지라도
발언되지않은 마음 속 언어, 깊은 사랑의 언어
침묵의 대화도 다들 나누었으리라 위로해봅니다.
그 대화는 아마도 얼굴을 쳐들고 아빠의 눈동자 하나 표정 하나,
춤동작 하나 하나를 존경하는 마음 가득담아 땀을 흘리며 따라 하는
숨결과 성우의 무언의 대화에서 볼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압빠...난 아빠를 존경해요. 아빠 같은 사람 될거예요"
성우와 아빠의 무언의 춤대화를 침묵으로 경청했던
자농님들, 이 침묵의 경청자들이 이번 모임의 의미라고 생각해봅니다.
다음 번 모임을 또 주선하게 되면 확실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경복궁이나 창경궁에서 할 것입니다.
자농님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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