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정겹고 맛있는 글입니다.
언젠가 쉼표님이 다람쥐와 도토리에 관한 글 하나 올린 것
다시 여기 옮겨보겠습니다.
.......
깊은 산을 다니다 보면
한군데 소복하게 돋아난 어린 단풍나무들을
가끔씩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람쥐의 짓이란다.
다람쥐는 늦가을이 되면, 겨울양식을 준비하기 위해
단풍씨앗들을 물어다가 저만 아는 곳에 은밀히 묻어둔다.
그런데 기억력이 별로 좋지 못한 이 다람쥐는
단풍씨앗 묻어둔 곳을 표시해두기 위해
슬쩍 하늘을 올려다 본다.
드높은 파란 가을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다.
다람쥐는
자기가 단풍씨앗들을 물어다가 감춰둔 곳과
수직의 위치에 떠있는 구름에다가 그 위치를 표시해둔다.
그러나 반들거리는 다람쥐의 까만 눈과 눈맞춘 구름은
이내 다람쥐의 눈빛을 망각 속으로
아득히 흘려 보내고 만다.
겨울이 다가와 먹을 것이 궁해진 다람쥐는
가을에 은밀히 묻어둔 단풍 씨앗들을 찾으려 해도,
제 눈으로 점찍어 둔 구름은 이미 흘러가 버렸으니,
결국 땅에 묻어둔 단풍씨앗들을 찾지 못하고 만다.
이듬해 봄, 다람쥐가 찾지 못한 단풍씨앗들은 싹을 틔워
한군데 소복하니 어린 단풍나무들을 돋아나게 한다는 것이다.
신비로운 조화를 꽃피우는 자연의 벗들의 어울림을 담은
이 얘기는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혹자는 자기의 소유(?)를 구름에 등기해 두는 다람쥐의 행위를
어리숙하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겠지만,
그것을 어리숙하다고 판단하는 인간은 우주의 조화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 것일까.
염주알 같은 눈으로 구름에다 점찍기,
그것은 곧 자기 비움을 잘 보여주는 멋진 상징이다.
그렇다. 이 얘기는 우리에게 넓디넓은 여백을 보여준다.
그 여백이 사랑과 생명의 새싹을 틔우는
신비로운 모태라는 것을 또한 일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