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책 한권.
지난 봄에 부산항에서 아라비아반도 두바이까지 현대하이웨이호를 타고 다녀온 승선기를 책으로 묶었습니다.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실천문학간행
부산에서 두바이까지 바닷길 3만 리―대양으로 나선 작가들
박남준, 유용주, 안상학, 한창훈. 문단에서 흔히 두주불사의 '죽음의 사인방'이라 불리는 이들이 한 배를 탔다. 올해 4월, 정말로 한 배를 타고 남지나해와 인도양을 항해했다. 현대상선의 2200TEU급 컨테이너선을 타고 부산에서 저 머나먼 아라비아반도의 두바이까지, 꼬박 스무하루간의 대장정이다.
개성 넘치는 네 작가의 별난 여행기
이들의 면면을 보자. 오십이 다 된 나이이지만 아직 총각인 시인 박남준은 모악산 골짜기에서 십수 년간 홀로 산중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서 칩거하고 있는 다소 특이한 인물이다. 네 명 중 맏형 격이지만 덩치로 보자면 다른 우람한 세 작가에 비해 작고 가벼워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다. 이 여행을 "어린 날의 소풍처럼" 손꼽아 기다렸다는 그는 이번 여행을 담백한 산문과 몇 편의 시로 풀어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유용주는 단상(斷想)과 단문(短文)으로 짜여진 산문의 묘미를 보여준다. 「물방울들」이란 이 꼭지는 얼마 전 출간된 『쏘주 한 잔 합시다』에도 '아름다운 것은 독한 벱이여'란 제목으로 실린 바 있다. 중복 수록의 문제가 있지만, 네 작가가 함께했다는 점에도 큰 의미를 둔 이번 여행의 취지를 감안, 분량을 조절하여 싣게 되었다.
안동에서 일평생을 보낸 '산골 촌놈' 안상학 시인은 여덟 편의 시와 편지글 같은 여덟 편의 산문으로 바다 비단길 3만 리 이야기를 펼쳤다. 특히 여행의 끝자락, 두바이 도착 후 다녀온 사막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여행을 주도한 한창훈은 역시 섬사람들과 바다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표한 이답게 선박과 항해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외모만큼이나 투박하고 걸쭉한 입담으로 스무하루간의 여행일지를 작성해놓았다. 입출항에 따른 선원들의 급박한 작업도 현장감 있게 묘사했다.
바다와 하늘과 사막, 여행이 이들에게 남긴 것
선원들과 함께 보낸 나날, 땀 냄새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들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가족들 친구들과 떨어져 외롭고 고된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잡아맨다. 하이웨이호의 선원은 모두 22명. 모두 남자다. 네 작가는 이 중 미얀마에서 온 선원 일곱을 제외한 15명의 선원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했다. 선장에서부터 20년 젊음을 배에서 보낸 갑판수까지, 승선경력 21년의 백전노장 조기장으로부터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인 스물두 살 실습생까지, 바다 사나이들의 눈물과 웃음, 회한과 부푼 꿈이 어린 진솔한 이야기들에는 사람살이의 냄새가 가득하다.
늘 붙어 다니는 네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실행한 이 유쾌한 여행은 지켜보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
"세 사내는 큰 덩치에 목자 불량하게 생겼는데, 그 값을 하느라고 입담 걸기가 걸쭉한 탁배기 맛이고, 그 탁배기들 사이에 청주같이 맑은 표정의 한 사내는 약골로 보이긴 하나 역시 술이 세고 입담도 좋다. 그리하여 이 네 사내가 각기 특유의 입담을 통해서 들려주는 대양 체험의 이야기는 뭍에만 묶여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여름날 터진 북창문처럼 탁 트이게 해준다."(소설가 현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