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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로] 농촌총각 결혼이야기
들꽃향기 2006-01-18 15:42:57 | 조회: 6758
아직 장가를 못간 후배가 있습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 결혼의 조건 세 가지를 제시했답니다.
주변 분들은 세 가지 요구사항을 듣고 장가 가기는 틀렸다고 구시렁거립니다.
그 내용이 참으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굶어 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로 살았던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처럼
살벌하지는 않지만 어떤 여자도 이런 조건을 듣고 선선히 결혼을 결심하기는
어려울 성싶으니 하는 말입니다.




돈 많이 벌지 못한다고 투정하지 말 것,
아내보다 동지를 더 사랑한다고 질투하지 말 것,
농촌을 떠나자고 보채지 말 것입니다.

정색을 하고 전후사정을 해설하는 후배를 보는 우리의 눈이 따뜻하고 촉촉합니다.

서른다섯 해 동안 살아오면서
지난 5년이 가장 행복했다는 후배는 당장 신용은 불량해도 인생은 우량하다고 자위합니다.
농고를 나와 농삿일로 군복무를 대체하고 소를 키우고 비닐하우스를 하고
마을의 모든 논을 자신의 기계로 경작하는 후배는 우리들 중 가장 많은 빚을 지고,
가장 많은 일을 하고, 가장 많은 술값을 냅니다.
그이의 인생은 통장 잔액과 올 한 해 총수익과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경제 성장률과 무관하게 깊고 넓습니다. 가을처럼 말입니다.




-무모한 3가지 결혼조건 제시-




단풍이 산을 내려옵니다.
개울을 건넌 산 빛이 들판을 물들입니다.
씨를 머금은 생명들이 부끄럽게 낯을 붉힙니다.
철 이른 결실을 맺자고 추석 때 후배가 처자 집을 쳐들어갔습니다.
월등히 많은 나이를 묻자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잡아뗍니다.
간호사 선생을 맞이하기에 고졸학력이 좀 부담스럽지만
세상 알 것은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합니다.
빚은 빚이지 사람 등급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계획을 묻는 부모님에게 농민운동을 이야기했답니다.
우리는 한편 시원했지만 한편 걱정스럽습니다.
현실에는 줏대보다 사회적 잣대가 더 위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지만 있는 것을 잘 포장하여
자랑하는 것은 흠 될 것이 없다고 충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네 농사를 네가 다 짓고 있다’
'가을이면 몇천만원이 통장에 왔다 갔다 한다’
'소값이 지금 하늘을 치고 있다’ 등등 말입니다.




진실은 아니지만 거짓도 아닌 선전은 용서된다고 했지만
그는 무모한 정면 승부로 결판을 보고자 했습니다.
결혼은 당장 생활 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담보로 합니다.
사람 하나 보고 살다가는 쪽박차고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사랑 타령’이 됩니다.
농촌총각의 경쟁력은 늘어나는 수입농산물보다 떨어집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는 것보다 농촌총각이 결혼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가난합니다.
동네 논을 다 짓지만 자신의 논은 별로 없습니다.
가을 수확을 마친 통장에 오고 가는 돈은 많지만 남는 돈은 많지 않습니다.
소값이 하늘을 치지만 하늘을 보고 자랄 소가 몇 마리 없습니다.
올 가을을 위해 여름 뙤약볕을 버티고
마른 침을 논에 뱉는 심정으로 나락을 키우지만 입에 담을 수 없는 가격이 회자 됩니다. 후배와 처자의 현실 차이만큼 가을을 맞이하는
농민의 기대와 농업이 처한 현실의 차이는 엄연합니다.




-뜻밖의 화답에 모두들 축하-

‘그냥 그들을 사랑하게 하면 안 될까요 아침 이슬만 먹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라고 처자 부모님께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돈 있으나 불행한 사람도 있지만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사람도 많습니다.
며칠 지나 후배가 젊은 회원들을 소집했습니다.
우리는 긴장했고 다 한마디씩 위로와 걱정의 말을 준비해 왔습니다.
뜻밖에 처자가 세 가지의 결혼 조건을 제시했다고 소개합니다.
자신이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시기하지 말 것, 자신과 동지를 같은 깊이로 사랑할 것,
농촌에 산다고 막 살지 말 것,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했답니다.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 말 것입니다. 우리는 좋아하며 성공의 비결을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필시 그가 나락농사 말고 다른 농사를 지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는 웃기만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것은 긍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는 그냥 계속 웃기만 했습니다.



〈강광석/전농 강진군농민회 사무국장〉
2006-01-18 15: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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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4
  • 사랑이 2006-01-20 10:27:37

    그러게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라도 시골로 가야 하나~~
     

    • 호두나무 2006-01-19 11:18:14

      시골서 지내보니 정말 힘들더군요.  

      • 우랑발이 2006-01-19 09:10:00

        농촌의 결혼률이 확실히 전세계적으로 어렵군요...  

        • 들꽃향기 2006-01-18 15:49:12

          일본도 농촌의 총각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 중국, 필리핀, 베트남의
          여인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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