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랫만입니다. 지난 글을 읽다 보니 작년 여름 이후네요. 세월이 유수라, 흐르는 물이라고 했던가요! 계곡에 가서 신발 한 짝 물에 떨어뜨려 주우려고 보면 저 멀리 떠내려가듯, 훌쩍 시간만 흐릅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거 없이...
저는 지난해를 아직도 못 접고 실은 두 달 넘게 이러고 있습니다. 행사를 하나 치러낸다고 사람들을 초대해 놓았던 날, 이틀 잠을 못잔 터라 마음은 생생했지만 몸은 고단해서 살짝 몸을 누이고 1시간쯤 달게 자다가 국장님으로부터 비몽사몽간에 전화 한통을 받았지요.
'희지야~' 참 따뜻한 목소리로 부르고는 그럽니다. '수향이 갔다.' 시간이 잠시 정지하더군요. . . . 잘 보내주자, 뭐 그런 말을 더 들은 것 같습니다. 나는 잠시 멍하니 누워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더군요. 그순간 왜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치 처음 부딪히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암이 재발해서 1년도 채 못살 거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지리산으로 내려와서 1년을 넘긴 후에 자신이 오래 못살거라는 알았어요. 그 말을 유쾌하게 하며 웃던 그녀가 생각납니다. "왠지 언니 오빠가 다 잘해주는 거야. 그 인간들이 내가 못살거라는 걸 지들끼리만 알고 호호호" 덩달아 웃으면서 "뭐든 다 해달라고 해봐, 그럼 혹시 다 들어줄지 모르잖아." "엄청 돈을 많이 달라고 해볼까?" 그렇게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천연덕스럽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그 자신감으로 저희 사무실에 와서 저와 함께 일을 했어요.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을 길고 짧은 것으로 말한 건 못되지만
저는 그녀와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어요. 우리는 서로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녀나 저나 아이로 인하여 삶이 변형되는 시간을 살고 있는 여자들이었기때문에...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만약 내가 아이로 인하여 살았다면 그녀처럼 병상에 누워 있지는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나는 그녀의 아픔에 그래서 담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12월 29일 2006년을 고작 이틀 남겨두고 가버렸습니다. 그날 나는 다른 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는데 말이에요. 행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갑자기 조울증에 걸린 여자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부산하게 움직이며 사람들과 유쾌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행사 준비로 피곤한데다 워낙 감정선이 복잡해서 그러는 여자인가,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니, 아무도 그날 내게 신경을 써주지 않아서 저는 혼자 울고 여럿이 떠들며 그날 하루를 정리했어요. 그건 다행한 일이였어요. 하지만 그날 행사 뒷풀이를 신경 쓰느라고 그녀의 빈소에는 끝내 가지 못했지요. 그날 이후 제 마음에는 작은 파장이 생기게 됩니다. 그 뒤로 저는 전쟁 같은 사랑과 싸움에 휘말려 버리게 되거든요. 그 얘기는 다음에 풀게요.
그녀는 2009년 12월 31일 아침을 제게 벽제 화장터에서 보내게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 결혼이나 돌잔치보다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진다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해 보는데 벽제 화장터도 처음은 아니였지만 새벽 6시 첫화장이어서 그랬는지 대리석으로 된 건물이 엄숙함으로 느껴지기보다 위압적이고 을씨년스럽고 그렇더군요. 참 추웠습니다. 턱이 덜덜 떨리고 몸이 오그라들고 그녀는 뜨거웠을 텐데 남아서 그녀의 흔적을 정리하려고 온 우리들은 모두 추워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키가 컸는데 구부정할 정도로 컸던 그녀가 두손을 옴막하게 오므리면 다 담아질 정도의 부피가 되어 우리 앞에 왔을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초월하기가 쉽지 않다면 이세상 이후의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지금, 여기, 이순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아프다는 건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고 죽음은 우리에게 전력을 불러일으키는 가 봅니다. 나는 그녀의 죽음으로 내 세포들을 살려야겠다고 이대로는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집착일까요 그럴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 생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잖아요.
메디컬다큐에서 그러더군요. 살고 싶다는 의지가 병을 고친다고, 사랑하고 싶다는 의지로 저는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돈없는 남자랑 사는 이야기 열두번째 여기서 이만...
* 오랜만이라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찬바람에 매화가 핀채로 얼어서 올해는 매화차가 별로겠네요. 다행히 바람이 불기 전에 따다놓은 매화송이가 좀 있으니 바람이 남쪽으로 불면 차 한잔 하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