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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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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집 안 간 만 서른 살 화가 육심원씨는 재미난 여자다.
“여자들 예쁜 척하는 모습을 제일 좋아한다”는 별취미의 그는 화폭을
온통 새침하고 내숭떠는 여인들로 채워놨다. “여자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여자”라는
그의 말을 오해할 필요는 없다. “여자들만의 타고난 감수성이 있잖아요.
여자들만의 표정·동작·선 같은 게 좋아요. 넥타이 매고 군복 입어도,
아무리 거칠고 씩씩한 여장부라도 여성 특유의 아름다움은 묻어나잖아요, 왜.”
그래서 자칭 ‘안티 페미니스트’다. 그는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양화가 아니다. 곱디고운 색깔들이 무지개처럼 펼쳐져 있는
‘색기(色氣)발랄’한 그림들. 물론 파격 시도를 가한 건 순전히 여자를 그리기 위해서다.
<그의 그림이 이야기하는 여자들 역시 만화처럼 재미있다.
‘일요일 오후 3시’는 맞선을 본 뒤 좌절한(?) 여자의 우울한 표정을 담았다.
‘쟤, 결혼한대’는 그 반대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를 골라 드디어 결혼하게 된
여자의 설레고 들뜬 표정. 중년 여성이라고 아름다움이 퇴색하는 건 아니다.
‘화장하는 여인’에 등장한 엄마는 누굴 만나러 가는지 두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열심히 메이크업에 몰두해 있다. 불량 소녀도 육심원의 화폭 속에선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이는 ‘엄마가 싫어하는 것들’로 온통 치장을 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눈가엔 파란 아이섀도를 덕지덕지 발랐다.
“모두 제 주변 여성들이에요. 엄마, 이웃집 아줌마들로부터 시집 안 간 제 친구들까지요.
쌍꺼풀도 없고 코도 납작하고 미간도 바보처럼 넓지만 표정이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나요
여자들 무리지어서 웃고 있으면 그 일대가 다 밝은 거, 그런 걸 그리고 싶었어요.”
학창시절부터 여자를 그렸다. “내가 여자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을 그리고 싶어서.”
여성으로서 자존감이 강한 건 엄마 덕이다. 서른이 다 되도록 ‘결혼하라’
소리 한 번 안 한 ‘의사 엄마’는 아버지를 잃고도 낙천적이고 씩씩했다.
육심원의 여성들이 못생겼으면서도 예뻐보이는 건 바로 그 자신감 때문이다.
수많은 오해를 낳았던 ‘공주’ 시리즈는 그 자신감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다.
“저는 표정을 무척 사랑해요. 만족하는 표정, 새침한 표정, 의기양양한 표정,
자유로운 표정, 사랑스러운 표정 등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표정을 담아내기 바빴어요.
찰나의 작은 행복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화폭 안에 붙잡아 분칠을 하고 아교로 고정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려 한 거죠.”
“‘너 공주병이지?’ 하는 소리 제일 많이 들었죠. 그런데 자아도취가 그렇게 나쁜가요?
페미니스트들도 카메라 앞에선 예뻐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나요 남자들도 마찬가지죠.
자기를 멋지게 표현하려는 욕망이 있다는 점에선.”
그래서 육심원 팬의 90%가 여성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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