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발, 철원을 지나 금강산을 거쳐서 원산을 가는 철도가 경원선입니다. 지금 그 경원선은 분단의 비극으로 철원도 아닌 겨우 연천의 신탄리가 종착역입니다 우리 집이 가까워 내가 서울나들이 때마다 기차를 타고 내린 곳 신망리역은, 연천역 다음역으로 신탄리역의 전전에 있는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작은 간이역입니다. 이용객이 많지 않는, 그래서 몇 번만 오르내리다 보면 모두가 금방 구면이 되는, 항상 시골의 소박한 인정이 느껴지는 곳이지요. 간이역사의 대합실은, 몇 사람만 모여도 비좁게 느껴지는 작은 공간이지만, 벽에 바짝 붙어선 책장에는 책들이 빽빽히 가득차 있고, 향토시인의 정성스레 그린 시화액자도 서너 점이 걸려 있으며, 바닥 한 켠에는 작아서 깜찍한 화분도 몇그루 놓여 있습니다. 신망리역은 낡고 허술하며 소박한 작은 역사이지만, 어설픈 강남의 졸부집 거실보다 품격의 문화가 돋보이며, 외출 나들이의 나이 지긋한 촌노들과 젊고 씩씩한 휴가 장병들의 풍성한 정담 소담들로 왁자지껄 화기가 넘쳐나기도 합니다. 시를 쓰며 농부인 ‘이재성’이라는 향토시인은, 자작시에 정성껏 액자를 만들어 걸며 가끔씩 바꿔 주기도 하며, 책꽃이에는 그의 시집도 한 권 꽂혀 있습니다.
[도농(都農)이 숨쉬는 신망리에서 푸른 복음자리 틀었네.
놀이도 절반 일도 절반 밤이 어둠 털어내듯 번거로움과 외로움 걷어가리니..
꿈은 저만치 들꽃은 이만치서 저리도 손짖하는 구름사이로 천수(天壽)의 미소 황홀하여라.]
지금 대합실 벽에 걸려있는 “이재성”님의 “중용의 노래”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신망리에서 서울까지는 두,세 시간이 소요되는 출퇴근 하기엔 좀 벅찬 거리를 나는 일 주일에 너뎃 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다니느냐’는 동정어린 걱정들을 많이 듣고 있지만, 삼 년을 넘게 살면서 나는 아직까지 불편을 모른 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경원선의 시발역은 원래 서울역이었으나, 청량리역, 다시 의정부역으로, 지금은 소요산역까지 전철이 연장되면서 동두천역이 시발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5대 철도의 하나인 경원선이 지금은 한 개 군만의 가장 짧은 거리를 달리는 완행열차 입니다. 새삼 세월따라 변하는 세태를 느끼기도 합니다. 아침 6시부터 매 시간마다 하루 17회를 운행하는 경원선 열차는 언제나 혼잡스럽지 않아 조급함도 서두름도 없는 여유로움이 있어 좋습니다. 철새들의 도래지요 넓게 펼쳐진 연천평야를 달리며, 굽이도는 푸른 물줄기의 한탄강을 지나고, 소요 불곡산을 바라보면서 책도 읽고, 때로는 잠깐 졸기도 하며, 가끔은 세상잡사의 담소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여유롭고 편안한 상경길을 ‘지루한 먼 길’이란 염려는 천만에 올시다. 나의 두어 시간이 소요되는 서울나들이 길은,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면서 관광을 즐기며, 책을 읽으면 아늑한 도서실이요, 졸려 잠깐 눈을 감으면 안방같은 포근한 요람에, 옆사람과 담소라도 나누면 아늑한 열차까페로써 유용한 다용도의 분위기있는 생활공간입니다. 거기에 서울까지의 이용 요금이 단돈 500원(일반 1000, 경로500)이라니! 결코 지루함이 아닌 아주 고맙고 행복한 나들이 길이지요.
대합실에서는, 지금처럼 추운 겨울철엔 난로에 언 손을 녹이기도 하고, 낮익은 이웃과 세상 물정, 농사 정보, 근황을 듣고 나누는, 매말라 각박한 세상에서도 후덕 소박한 인정을 나누는 곳입니다. 육이오 전쟁전에는 이북 통치지역이였던 신망리 마을은 격전의 상처가 겪심했던 지역으로, 집도 없이 떠도는 헐벗는 난민들을 위해, 주둔했던 미군들이 백여 호의 집을 마련 정착촌을 만들고, 희망을 갖고 살라며 new hope town이라 부르는데서 유래한 이름이라 합니다. 이처럼 연천은 휴전선 인근에 있어 지금도 군부대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대부분이 군사지역으로, 격전의 뼈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고장이었으나 지금은, 시골정취를 잘 간직하며 평화롭고 한가로운 농촌마을입니다.
주위엔 동두천 전곡과 같은 소읍도시가 있지만, 큰 건물이나 공장도 눈에 잘 띄지 않으며, 대부분이 농촌인데도 들판에는 흔히 난립된 농사용 비닐하우스들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이곳의 농사는 특용작물 보다는 일반 작물인 논에는 벼 심고, 밭에는 콩 갈고, 가을이면 무 배추 고추 참께 율무등이 주된 작물입니다.
신망리역에서 3km쯤 떨어져 우리 집이 있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한적한 외딴집으로 어쩌다 군용트럭이나 인근 마을에 상품을 나르는 배달차 뿐, 통행하는 차량이나 인적이 드물어 더욱 호젓합니다. 봄 여름 가을이면 새소리 벌레소리로 요란하지만, 겨울철엔 까마귀 까치 소리에 가끔씩 개 짖는 소리뿐 그야말로 적막강산입니다.
그러나 자연으로부터 과분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밤하늘엔 휘영청 달이 밝으며, 별빛도 유난히 반짝입니다. 맑은 공기가 산마루를 휘감아 시원한 바람이요 따뜻한 햇살에 곡물이 풍성한 기름진 옥토. 치솟는 샘물에 강물이 넘쳐 흐르는 곳. 침묵에 잠긴 고요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지천으로 널려있는 들풀 들꽃들, 조석으로 우짖는 새들의 노래소리. 겨울이면 산중의 소나무가지 껶이는 소리, 개울의 얼음 터지는 해맑은 청아한 소리... 이것들은 모두 나와 함께 의지하며 삶을 즐기는 동반자요 가까운 이웃들입니다.
입춘이 지나 우수경칩인 봄의 문턱인데도, 요즘 늦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벌써 태양이 서산에 걸려 있습니다. 삭풍이 몰아치는 긴 겨울밤을 위해, 심심찮게 읽을 꺼리와 고구마는 잔뜩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제 아궁지에 군불이나 잔뜩 피우며 고구마도 굽고 구들장을 달궈야 겠습니다. 찬 날씨에 모든 가정 가정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늘 행복하십시오.
도시보다 시골이 좋은 이유는 공기에 향이들어있고 시끄러운 소음보다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리2008-04-21 09:01:14
언제나 열려있단 말이 참 좋네요. ^^
서울살이 잘하고 있는 지인들보다 더 시골에서 행복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강물처럼2008-04-20 20:52:50
서울살이 밀리고 밀려서 지금은 최전방 연천에 살고 있는 저에게, 서울살이 잘하고 있는 지인들이 자꾸 나의 시골을 궁금해 하며 관심들을 보입니다. 대답도 귀찮고 살짝 약이 오르기도. 그래 지난 겨울 한가한 틈을 이용, 그들의 메일이나 창에 올려 보게 만든 글입니다. 좀 부풀려 적은 글로 관심이 지나쳐 몇 분의 방문자들 실망스러워 돌아선 모습이 떠 오릅니다. 우리 자농 가족들은 잘 아는 그 기분. 혹 지나는 길이 있으시면 언제나 저희집은 열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