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인 조지훈의 ‘승무’가 잉태된 용주사.
지훈은 젊은 시절, 어느 가을 수원의 용주사에서 벌어진 승무를 처음 보고
깊은 감흥에 젖는다. 이듬해 미술전람회에서 김은호의 승무도를 보고
장문의 문장으로 시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영산회상 한 가락을 듣는 계기를 거쳐
18줄로 된 시를 완성한다. 구상 10개월, 집필 7개월만이었다.
시인이 승무를 감상했을 법한 너른 뜰엔
승무를 추던 고승도, 시인도 가고 없고,
고목 한 그루 봄비를 맞으며 고즈넉이 서 있다.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융능과 건능을 차례대로 돌아보고 나오는 길, 봄비가 추적거리며 내린다.
사도세자의 비애와 정조의 효심에 대해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빗속을 걷는다.
이런 깊은 역사가 배인 자랑스런 내 고장이라는 말도 한 마디 덧붙이면서.
봄은 이미 왔고, 또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노래 / 봄날은 간다(한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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