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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화석연료 사용 이래 문명의 양상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우린 어떤 일을 수행함에 드는 에너지와 얻는 효용 사이의 비교를 멈췄다. 소요 에너지는 늘 너무 싸고 쉽게 얻을 수 있으므로 더 계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여 우린 말 그대로 석유를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지경까지 들어왔다. 현대 과학 영농이란 것이 1칼로리의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10칼로리의 연료를 연소한다. 무한의 지평선을 달리고 또 비행하는 기계들을 보라. 정녕 우린 과거의 태양광을 캐먹는 오늘의 승냥이들이다.
 
이런 상황은 문명사적으로 없었다. 인류에게 처음 있는 일이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 이 고에너지체 자원의 채굴은 과연 인류에게 축복이었을까.
 
석유 시대에 우린 에너지가 당연히 풍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단 1칼로리가 부족해서 굶어죽고, 땔감 한조각 구하지 못해 얼어 죽던 과거를 너무 쉽게 잊었다. 수천 킬로를 날아 다른 대륙을 가는데 수백불이면 된다. 걷거나 짐승을 타고 움직이던 인간에게 다른 대륙은 평생을 걸고 왕복해야 하는 곳이었다.
 
현대사회에 어떤 일이 생기면 우린 기계나 기술이나 컴퓨터 등의 무언가 투입돼서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다. 문제는 기계를 작동하려면 연료가 필요하다는 것. 산업혁명 이래 화석연료가 무제한의 값싼 연료를 공급해왔다.
 
화석연료 고갈 담론이 나온 지 꽤 됐다. 내 눈에는 그 자원이 실제 고갈될지 여부 담론보다 더 중요하고 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지금까지 그토록 유한 지하자원에 의존해서 쌓아 올린 부와 번영을 반성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그걸 통해 부와 번영을 쌓아 올리는 자들에 의해서 그리되었겠지만…
 
저렴한 에너지는 조상들이 상상도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능을 우리에게 줬다. 권능의 부속물은 자만이오, 우린 결코 신을 능가하는 우리 잘남을 반성한 적이 없다.
 
바로 그 지점, 인간의 자만에서 인류의 몰락이 시작된다.
 
Soil not Oil 이라는 대회를 다녀왔다. 석유의 시대를 넘어서자는 취지. 화석연료로 발생한 온실가스를 토양 유기물 증가로 흡수하자는 그런 취지의 행사다. 인도의 유명 환경운동가 반다나 쉬바도 기조연설을 하고 갔다. 여러 유명 인사들, 유튜브에서 보던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밴쿠버에 사는 나는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다. 공항에서 행사장까지 가기 위해 다시 자동차를 렌트했다. 행사장에 모인 수백명 가운데 석유를 사용하지 않고 거기까지 온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물론 우린 석유를 태워 돌린 공장에서 만든 옷을 입고, 가공한 음식을 먹고, 석유 사용 중장비가 만든 건물을 점했다. 석유가 얼마나 우리 일상 속에 깊이 파고 들었는지, 우리가 이 시스템 속에 얼마나 깊이 얽혀있는지, 그 얽힘은 풀릴 수 없을만큼 치밀하다. 우리는 결국 알건 모르건 공범자이자 수혜자이자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석유를 넘어 토양의 시대를 열자? 좋은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 얘기가 어느 정도 심각한 함의를 갖는지 이해하는가? 석유는 우리 교통, 난방, 냉방, 가전, 산업, 온갖 분야를 지탱해주고 있다. 덧붙여 대개 잘 모르는 사실 하나 얘기하겠다. 정말 무서운 얘기.
 
대기중 질소는 워낙 견고하게 결합돼있기에 고압 고열 처리가 아니면 깨지지 않는다. 이게 깨져야만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가 되고, 식물이 흡수해야만 동물이 먹고 섭취하는 "단백질"이 된다. 질소의 고온 고압 처리를 하는 것이 하버-보쉬 공정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하버-보쉬 공정이 있었기에 20세기 인구 증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천연가스 생산 총량의 5%,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2%가 이 공정에 소모된다. 화석연료가 없으면 하버-보쉬 공정이 성립되지 않고, 매년 인류가 생산하는 5억톤의 질소비료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질소비료의 공장 생산이 있었기에 식물의 폭발적 생산이 가능했다. 현생 인류의 몸을 구성하는 질소의 80%가 질소비료에서 온 것이다. 그 질소비료는 하버-보쉬 공정으로 생산됐고, 그 공정은 화석연료로 가능했다. 우리 핏줄 속에는 석유가 흐르고 있다. 화석연료의 시대를 끝내자는 말은 인류의 80%가 사라지자는 말과 같다. 우리는 얼만큼 각성하였고 얼마나 준비되었나?
 
나는 근본적으로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에너지 소비는 계속하면서 그걸 토양이 다 흡수할 수 있다거나, 흡수하길 기대하는 그 심리가 어리석은 것이다. 왜 토양이 주목 받는가. 온실가스 흡수의 잠재력 때문이다. 그러면 왜 온실가스가 증가하는가? 화석연료 연소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온실가스가 문제라면 화석연료의 연소를 멈추는게 맞다. 왜 연소는 놔두고 연소를 통해 발생한 가스(인류의 배설물)를 토양이 치워내는 능력만 찬탄하고 있는가? 공짜 연료의 소모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문명적 편리함이 너무 너무 달콤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온실가스, 기후변화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화석연료의 폐지밖에 없다. 이는 과학도 필요 없는, 논리적 귀결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미 공짜 에너지 풍요의 단맛에 찌들대로 찌들어 조금의 불편도 감수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추우면 난로를 켜고,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을 켠다.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자동차를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비행기 없이 어떻게 현대의 국제적 활동들이 가능하겠는가. 정직해지자. 우리는 자연을 위해, 생태계를 위해, 동식물을 위해 땀 한방울 흘리거나, 하룻밤 추위에 떠는 고통도 감수할 의지가 없다.
 
답답한 것은 양심을 자처하는 활동가의 모임이나 진보인사의 집회를 가보면 석유회사의 탐욕을 욕하거나, 신재생에너지의 환상을 강변하거나, 토양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포집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초저 에너지의 삶을 살아야 한다거나,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용하던 에너지의 몇배를 사용하고 있을까?
 
질문이 잘못된 것이다.
 
모두가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화석연료 연소가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데 식물 광합성을 통해 토양 유기물 함량을 증가시키면 우리가 배출하는 가스가 흡수되지 않을까?" 이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싼 배설물을 누군가 치워주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 즉, 내가 싸대는 똥오줌의 양을 줄이기보다 그걸 다 치워주는 인부를 찾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누리던 풍요를 계속 누리고 싶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그러나 현재 형태의 풍요는 결단코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첫째, 인류가 배출한 및 배출하고 있는 가스의 양이 도저히 인위적 식물량 증가로 감당되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가스가 증가했다면 식물량이 증가해야 해소된다. 그러나 2천여년 전 문명의 발생 이래 지구에서 총 나무의 절반이 사라졌다. 소멸 속도는 현대로 오면서 가속화되었다. 화석연료 연소로 발생한 가스를 먹어치우려면 이미 사라진 나무의 회복에 더해, 그 가스를 먹을 식생이 더 확보되어야 한다. 원시 지구보다 더 푸르러져야 인류가 발생한 가스를 치울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게 농지 늘리고 유기농 좀 진작한다고 될 일인가?
 
둘째, 현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지속할 수 있는가? 이는 석유건 석탄이건 수력이건 원자력이건 신재생이건 관계없다. 이 미친 가스 및 열기 방출을 계속할 수 없다. 수만년간 원시 인류가 추위에 떨고, 칼로리 하나를 더 얻기 위해 썩은 고기도 먹던 상황을 우리는 야만, 미개, 열등, 저개발로 보지만 최소한 그 방식은 인류를 수만년간 (생태계 파괴없이) 존속시키는 데 성공시켰다. 오늘날 현대 과학적 선진 문명적 삶의 방식은 인류를 얼마나 존속시킬까? 수만년은 커녕 수십년 앞이 불안한 현실이다. 우리 죄의 깊이와 크기를 바라볼 수 없을만큼 비겁해진 우리는 핵이 되었든 환경 대재앙이 되었든 우리가 뿌린 씨앗이 언제 열매 맺을까 공포에 떨고 있다.
 
인류 멸망이란 말이 현실성을 가진 우려로 등장한 것은 산업혁명(기계), 녹색혁명(화학) 이후 얘기다. 이제는 생명까지 조작 창조 소유할 수 있으니, 진정 생명에 대한 지배가 완성되었다. 무엇이 진보란 말인가? 에너지 풍요가 당연시되고, 부족함이 없고, 항상 넘쳐나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는 상황은 인류 역사에 없었다. 기막힌 아이러니 아닌가? 전지전능을 꿈꾸는 인간이 무한 에너지, 무한 식량, 무한 편의의 권능을 손에 쥐자마자, 앞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의 이름은 종말이다.
 
셋째, 우리는 화석연료 없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양심 세력조차도 이 부정의한 시스템에 우리 발이 얼마나 깊이 빠졌는지, 뼛속깊이까지 얼마나 깊이 담겨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공동의 수혜자다. 우리 피는 석유, 숨은 천연가스, 뼈는 석탄이다. 그걸 없애버리겠다? 석유 회사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넷째, 우리 인류는 미래세대의 안녕을 위해, 생태계의 평안을 위해 얼만큼 행동할 것이며,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희망은 여기밖에 없으나 여기에 희망이 없다. 인간은 전체 종으로서 인류 또는 전체 동식물의 공동 거주공간으로서 지구를 생각하고 책임지기에는 한없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에 내려오는 햇빛이 그 인간에게 허용된 최대의 에너지라 본다. 그러나 그걸 누가 따르겠으며,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겠는가? 위대한 자는 질 수밖에 없는 전쟁에도 나선다고 했지만, 어리석은 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간다. 
 

윤승서,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7.09.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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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환경#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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