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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에는 두 가지의 큰 조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화입니다. 처음 세계화가 전면에 부각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표면적인 의미의 세계화, 다시 말해 평등이나 인권, 민주주의나 복지 등 긍정적인 요소들의 세계화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테러, 자본, 양극화 등의 험악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세계화에서 핵심적인 것은 미국적 가치, 미국적 사회체제, 질서, 힘의 논리 등과 같은 미국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세계화(Globalization)를 미국화(Americanization)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미국의 힘이 절정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열망이 극도인 이 때, 그와 함께 반미주의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미국화와 반미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현상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미국은 일정한 진보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인권이라든가 민주주의라든가, 시장경제에 있어서 미국적이라 함은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표면적으로는 유엔을 통해 세계적인 동의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화 이후, 유엔과 미국은 갈등관계를 형성하고, 세계적으로 미국적 가치의 상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던 사회주의 체제나 이슬람 세계와는 다른 것이면서도 미국적 가치와 유사한 사회적 가치들이 미국과 대립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사회주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세계의 동의를 얻어가고 있는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는 미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고, 유럽적 사회체제와 가치들이 미국적 가치보다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반미의 형태를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과거의 반미는 이념적인 반미였습니다. 여전히 북한, 쿠바 등이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역사적, 문화적 반미입니다. 서구문화 자체와 다른 형성과정과 문화를 갖고 있었던 이슬람국가가 있습니다. 셋째, 사건 중심의 상황적 반미가 있습니다. 광주학살이라든가 여중생 사망사건 등 사건별로 반미화가 진행되는 재미있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념적 반미는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망하면서 무너졌고, 문화적 반미는 약화되고 있는데 반해 세 번째 반미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상은 주로 과거에 미국이 중요한 동맹국가라 여겼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반미는 유럽의 반미에 비하면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폭력 행사도 약하죠. 그러나 세 번째 반미가 중요한 이유는, 구체적 삶과 관련된 생활상의 반미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미군이 주둔하면 자국의 안보를 지켜준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에서 환경문제, 여성문제 등으로 인해 생활상의 안전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더이상 국가안보가 위협 받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생활안보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반미도 의정부, 동두천, 평택이나 대구 등 미군기지가 주둔하는 지역에서(물론 특정한 이념적 성향 가지고 있는 분들이 큰 영향 끼치기도 하나) 많은 분들이 반미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미군과 미국적 가치에 반하는 흐름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미관계를 이해할 때 한국은 세계화(미국화)와 반미화의 격렬한 충돌의 핵심적 접점에 놓여있다는 큰 조망을 갖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미관계를 한미관계로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살펴보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세계화는 표면적 현상이지만, 반미화는 뿌리깊은 현상입니다.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 미국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경제, 생활에서는 반미가 거대하게 일어나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정당 정책을 결정하는 토론을 보면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관계설정 문제가 외교문제가 아니라 국내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화와 반미화의 충돌은 한 나라의 내부 정치, 재정편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의 특수한 역사
한미동맹은 아주 특별한 형태입니다. 먼저 한미동맹의 역사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근대의 시기, 현대의 시기, 탈냉전 이후 시기로 나누어 봅시다. 근대의 시기는 1918년부터 1945년까지입니다. 이 시기에 한미관계에서는 일본과의 가쓰라-태프트 조약으로 한국을 버렸던 미국이, 일본이 미국에 도전하며 세계전쟁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가 급속히 복원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일본이 서로 전쟁을 했다는 사실로 인해 미일관계를 정확히 못 보고 있습니다. 미일관계는 태평양전쟁의 시기만 빼면 아주 강력한 동맹의 축입니다. 현재 미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유럽에서는 영국과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세기에도 미국, 영국, 일본의 동맹의 축이 세계사를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의 축이었던 가쓰라-태프트 조약이 태평양 전쟁으로 깨졌습니다. 그러나 전후 미국은 자신들의 세계전략 하에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해방 전 후 과정에서 인공뿐만 아니라 임시정부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강력한 미일동맹의 축이 작용한 결과였고, 이후 한일관계에서 독도문제를 비롯한 많은 갈등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미일 동맹은 매우 강력했고 미영일 동맹의 주된 목적은 중국 봉쇄였습니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미일영 조약 때문입니다. 미국의 이중적 역할 – 민주주의의 후원자, 권위주의의 보장자
현대의 시기는 1945년 이후입니다. 처음에 미국은 분단을 결정하거나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거나 한국전쟁에 참전할 때까지는 한반도를 어떤 곳으로 만들 것인지 질서의 창조자이자 건설자였습니다. 만약 미국이 38선을 제안 안 하고 주한미군 철수 안 하고 한국전쟁 참전 안 했으면 한국 질서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두 번째 역할은 후원자(patron). 일단 미국이 한국을 자유민주주의든, 시장경제국가든 뭘 건설하든 가장 강력한 후원국가였습니다. 해방직후 미국이 진주했을 때 한반도는 혁명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에 공산혁명정권이 들어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공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좌파들과 반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파정부의 수립을 돕기 위해 대의제 정부를 도입하고, 농민들에게 경작권을 주는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여성 선거권을 쟁취하는 등 서양에서 100-200년에 걸쳐 이루어낸 것들을 불과 몇 년 사이에 성취해 냅니다. 그렇다고 마냥 이승만 정권을 지지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승만 정부의 독재, 인권탄압 등을 비난하면서 우익정부와도 갈등을 겪게 됩니다. 개념화를 하자면 미국의 범위(American Boundary)라 하는데, 좌파의 집권을 막으면서 공산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저지하는 한편 이승만을 감금시킬 계획을 세우는 등 우익정부의 비민주적 정치행위에도 제동을 걸었습니다. 미국은 4.19라든가 5.16, 유신정권, 6월 항쟁 등 결정인 순간에 한국인민들의 동향에 굉장히 주목했습니다. 1957년쯤에 미국에서는 이승만을 교체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휴전협정에 반대하면서 미국에 맞서는 이승만을 감금시키려는 계획을 접고, 반공투쟁을 국가정책으로 밀고 나갈 지도자로 이승만한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유임하였습니다. 결국 미국은 이승만, 박정희의 권위주의 정권을 지지하지만 민주정부도 지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국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박정희 정권을 압박하면서도 원조를 통해 박정희 정부를 지탱시켜주는 등 권위주의의 보장자이자 민주주의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합니다. 미국의 이중적인 정책으로 많은 나라들이 권위주의 정부에 그대로 주저 앉거나, 이를 막으려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권위주의 정부의 붕괴를 시도하려다가 국가 자체가 실패해버린 나라들도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권위주의를 퇴출시키면서도 국가는 계속 성장시킨 드문 사례로 기록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틀은 미국이 잡았지만, 그것을 토대로 사회적 실천, 민주적 실천, 삶의 실천은 우리 스스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권위주의 정권을 중단시켰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박정희가 없어도 경제성장은 지속되었고, 전두환이 없어도 사회는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이러한 한국민들의 저력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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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일차적으로 한국전쟁으로 인한 남북적대의 쌍생아입니다. 남북은 주체, 적대는 관계입니다. 한미는 주체, 동맹은 관계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적대에서 화해로 가면 북한의 위협을 저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한미동맹이 균열되고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동시에 과거의 한미동맹은 소련, 중국, 일본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과 수교를 하고, 우리를 식민지배 했던 일본에 대적할 만큼 우리가 성장한 이때 동북아시아의 지역적인 갈등에서 균형역할을 담당했던 한미동맹은 당연히 변화해야 합니다. 가장 첨예한 문제는 주한미군입니다.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주둔목적은 국가 안보이고,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주둔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과거 주한미군은 비용 대비 효과가 비교적 큰 편이었습니다. 한국전쟁 후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고 강국에 둘러싸인 한국적 지형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용과 효과가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탈냉전시대에 우리가 주한미군을 통해 얻은 가장 큰 효과는, 한중, 한미관계보다도 일본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만약 주한미군이 없어지고 주일미군만 있다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발언권이 급격히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우리의 발언권은 현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거의 일방적으로 일본의 편만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에서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변화하는 시점에서 주한미군의 주둔방법은 변화해야 하고, 그 핵심은 바로 지휘체계입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한국사회의 주요 이슈였는데, 언론이 호도하는 것처럼 단순히 병력의 효율성 문제만은 아닙니다. 만약 전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것이 효율적이라면 미군이 주둔하는 모든 나라가 그러해야 하지만, 실제로 전시작전통제권을 남에게 내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미국에 종속적이라는 것입니다. 한미관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은 한미연합사 문제입니다. 흔히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한반도 안보가 해체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한미연합사가 생기기 전인 1978년 이전에는 어떻게 한반도 안보가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1958년에 일본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우리나라로 건너 왔는데, 한미연합사 해체되어도 한국전쟁 당시 정전협정의 체결당사자였던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체제가 평화협정체제로 바뀌기 전까지는 바로 해체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큰 오산입니다. 한미연합사와 주한미군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북핵이 그대로 있는 한 미국은 쉽게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어디에도 한미연합사에 대한 근거가 없습니다. 한반도 안보와 관련된 핵심적인 요소들은 연합사의 지휘체계와 관계없습니다. 네 번째 쟁점은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저는 우리의 헌법과 충돌하고 있는 상호방위조약은 평등한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라크와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병한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파병은 위헌입니다. 우리 헌법은 군인의 정치개입을 막기 위해 국군의 역할을 규정해놓은 유일한 헌법입니다. 한국군의 역할은 우리의 국토방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제기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군이 다른 나라나 지역의 전쟁에 연루될 가능성을 갖고 있는 위험한 것입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겠다고 우리를 협박하면 그때마다 우리는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파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묶어두는 대신 국군이 파병되어 중동에 가서 전쟁을 하고 이슬람 민중들과 전투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개정되어야 합니다. 위 네 가지를 잘 살펴보면 아주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남북관계의 평화화가 우리의 자주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북관계를 평화체제로 진전시켜 외부의 개입 여지를 줄여나가면 북미적대, 한미종속관계도 완화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북한의 고립이 해결되면 북한 민중들의 생활이 나아지고 군비가 복지로 투입되면서 평화화가 곧 사회화, 복지화로 연결됩니다. 물론 더 말할 필요도 없이 평화화는 탈군사화로도 이어집니다. 단순한 민족공조의 차원이 아닙니다. 한미관계의 변화와 동아시아 평화
한미관계를 재조정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의 한반도의 위치와 남북관계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에 한반도 평화의 본질이 다 숨어있습니다. 남북관계가 개선된 만큼 한미관계도 개선될 수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 남한과 미국관계가 적대, 적대, 동맹의 삼각관계에서 개선, 정상화, 평등화로 나아갈 때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가 보장될 것입니다. 한미관계를 조정변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화와 반미화의 이중과정을 이용해서 시민사회의 반미와 정부의 친미가 결합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기본적인 입장을 친미적으로 하고 시민사회의 반미를 협상력으로 활용하여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적절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반미는, 생활상의 반미가 주류가 되면 힘이 생깁니다. 두 번째는 북한이 자국의 세계화와 국제화의 징검다리로 우리를 활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북송금과 같은 경제적 지원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초기의 시도에 대한 코스트로 여기고, 북미 간에 직접 해결 구도를 만들어서 북핵 문제에 우리가 당사자로 들어가, 북한이 우리를 활용해서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면 그 이득은 엄청난 수준에 이릅니다. 그 중 하나가 경제협력이고 실례로 개성공단을 들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지금은 작은 규모에 그 액수도 미미하지만, 개성공단을 시작으로 남포, 신의주, 금강산까지 확대되고, 북한의 값싼 임금과 우리의 기술력이 결합되면 한국경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북한이 진정한 민족공조를 하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의 역할 인정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나눔 문화 : http://www.nanum.com
제공 : 나눔문화,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7.03.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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