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걸 농민신문 농정부장
앞서 보름 전 84개 농산물에 대해 관세환급 조치를 없앤 데 이은 후속조치다. 자국 내 곡물가격 안정과 물가안정 필요성 때문에 곡물 수출에 급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나비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게 골자다.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난다는 기상학 용어다.
현재 세계적으로 곡물값 상승세와 더불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 경제학자들은 그 원초적인 배경으로 지난해 7월 중국 장시성에서 발생한 돼지 집단폐사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에서 ‘청이병’이라는 돼지질병으로 적어도 50만마리 이상이 폐사하면서 ‘나비의 날개짓’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해 9월엔 중국 내 돼지고기값이 치솟고, 물가도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6.9%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곡물작황 불황에다 바이오원료 수급과도 맞물리면서 국제 곡물값도 덩달아 급등했다. 주요 곡물시장인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11일 옥수수·콩·밀 등 주요 곡물값이 일제히 하루 상한선까지 치솟았다. 연 9% 이상의 고도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경제가 지금의 세계적 인플레이션의 진원지로 작용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중국의 곡물수출 제한 조치는 연말연시 각종 큼지막한 소식들에 밀려 우리에게 별 관심을 주지 못했다. 기껏 농림부가 올 1월 곡물가격 상승에 대응하는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정도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전체 농산물 수입량의 3분의 1을 중국산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 미칠 후폭풍은 충분히 예견될 정도다. 식품 가격 안정의 한축을 그동안 값싼 중국산 농산물에 의지해 왔던 우리 정부의 물가정책도 위협받게 됐다. 현재의 추세로는 제때 필요한 물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 값비싼 농산물은 외국산 수입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경제부처 일부 관료들의 비뚤어진 인식도 여전하다. 배추값이 조금만 올라도 물가당국과 언론이 나서 야단법석이다. 세계 각국이 곡물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우리는 농지 조성을 주목적으로 만든 새만금간척지마저 ‘경제중심도시’로 만든단다.
더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기 전에 우리 국민의 먹을거리를 안전하게 확보할 방안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국내 생산안정 대책을 다시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 이 기회에 해외농업 개발분야도 점검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곡물별 최소한의 자급률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우리 국민들이 늘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어느날 갑자기 상공업의 나라로 변해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소중한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 중 한 대목이다.
참여정부와 새 정부 모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서두르고 있다. 엄동설한에 대형시장에 내놓기에는 우리 농업의 체질이 너무 허약하다는 것이 제대로 인식돼 농민을 포함해 온 국민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jgryoo@nongmin.com * 농민신문에 쓰여진된 글을 글쓴이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기사등록일시 : 2008.01.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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