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대표적인 식품회사에서 판매하는 두부마저 유전자조작(재조합)식품(GMO)으로 밝혀지는 등 지난해 7월부터 실시된 GMO표시제에 많은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시중에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제품임을 표시하지 않고 판매되는 제품 116종을 검사한 결과, 조작유전자가 들어 있는 GMO 제품이 약 7%(8종), GMO로 의심되는 제품이 6%(7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GMO로 의심된다는 것은 GMO 함유 원재료가 사용되었지만, 그 함량이 적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결과는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련)이 민간 연구기관인 코젠바이오텍(대표 남용석)에 의뢰해 4월29~30일 서울과 경기 고양시의 대형백화점 L, H, S와 대형 할인마트인 K, E, C 등에서 채취한 시료를 가지고 5월1~8일 실험한 결과 밝혀졌다. 이번 조사는 이제까지 국내의 민간 차원에서 조사된 실험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대표적 식품회사 두부에 사용
이 조사에 따르면 콩을 원료로 한 두부, 유부 등의 식품 49종 가운데 GMO가 7종(14%), GMO로 의심되는 것이 3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5종은 미국산 대두를 사용한 유부(가공두부) 제품이었다. 특히 자체 실험기관을 두고 유전자조작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풀무원의 유부 제품(2종)과 대림수산의 대림선유부, 삼호물산의 주부유부왕·주부초밥왕도 GMO인 것으로 판명됐다.
두부의 경우는 13종 가운데 2개사(산내두부, 초당두부) 제품이 GMO로 밝혀졌다. 국내산 콩을 원료로 만들었다고 표시한 산내식품의 산내두부가 GMO로 판명된 것은 국내 농산물의 경우도 유전자조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이는 물론 지난 99년 소비자보호원이 시판 두부 22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8종(82%)에서 유전자조작 콩 성분이 나왔던 것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이 밖에 정식품의 베지밀에서도 유전자조작 성분이 나왔다.
검사 대상 품목 가운데 옥수수를 원료로 한 제품 59종은 GMO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1종이 GMO로 의심되는 제품이었다. 감자와 콩나물에서는 GMO로 의심되는 결과가 각각 2건과 3건이 나왔다.
이번 실험에는 DNA검출법(PCR검정법)이 사용되었다. 이 방법은 유전자조작 성분의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데 이용된다. 검정한계는 0.01%까지. 이는 콩이나 옥수수 각각 1만 알 중 1알이 GMO라도 판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GMO 검출 방법에는 농림부에서 현장조사용으로 이용하는 단백질검출법과, 좀더 자세한 조사를 위해 쓰이는 DNA검출법 등이 있다. 단백질검출법은 삽입된 유전자 때문에 발생한 변형단백질을 검사하는 방법으로, 간편하기는 하지만 정밀도가 떨어진다.
이번 실험에는 GMO가 얼마나 섞였는지(혼입량)를 확인하는 정량검사는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환경련 생명안전담당 최준호 간사는 “실험 대상이 GMO표시제를 지키지 않은 ‘미표시’ 품목이었다. 그런 제품에서 유전자조작 물질이 검출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앞으로 계속 GMO 관련 모니터링을 하면서 정량검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환경련의 이번 실험 결과에 대해 ㈜풀무원 여익현 상무는 “뜻밖이다. 우리 제품은 제조 과정마다 샘플을 채취해 한국유전자검사센터에 의뢰해 GMO 유무를 판정받는다. 비(非) GMO 원료를 구입해 튀기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GMO 성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실험 결과를 두고 시행 단체와 공동으로 실험해 원인 추적을 한 뒤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전무는 또 한국유전자검사센터에서 확인한 결과 “정부에서 일괄 수입해 쓰는 미국산 대두의 경우 실험에서 GMO 성분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유통과정 등에서 비의도적으로 GMO가 섞이는 비율(비의도적 혼입치)을 정부에서 3%까지 인정하는데, 그 이하의 콩을 사용할 경우 정량검사에서 0.5% 정도까지는 GMO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비의도적 혼입치가 3% 이하인 원료농산물로 식품을 가공했을 때는 일부 유전자조작 성분이 발견돼도 적법한 것이 사실이다.
대림수산 삼호물산 산내식품 초당두부 정식품 등 이번 조사에서 GMO로 판명된 제품의 해당업체 관계자들은 “자체 실험기관을 두거나 한국유전자검사센터 등에서 GMO 검사를 거쳐 안전한 것으로 판단한 원료를 가공했다”면서 “수입콩의 경우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일괄 수입한 원료를 받아 쓰는데 그때 비GMO 원료임을 입증하는 인증서를 받기 때문에 이번 실험의 결과가 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들 업체는 이번 실험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각 제품의 매출감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초당식품의 송국환 실장은 “좀더 정밀한 장치를 개발하기 전 이 논쟁중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거나 업자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 결과 GMO표시제가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GMO 식품을 제대로 관리한다는 정부 정책에 배치되는 것으로 드러나, 제도의 미비점을 긴급히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GMO표시제에 따르면 콩 콩나물 옥수수 감자 등 4개 농산물과 이들 중 한 가지 이상을 5대 주원료로 사용한 가공식품(장류, 두부류, 스낵류, 콘류, 통조림류, 영·유아 조제식 등)은 반드시 GMO표시제를 따르게 되어 있다. 단, 감자 가공식품은 올 7월부터 표시제가 실시된다.
감자 가공식품은 7월부터 실시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한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전자조작 여부를 확인할 수 없을 경우 ‘유전자 재조합 포함 가능성 있음’이라고 애매하게 표시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사실이다. 분명 소비자들보다는 업체에 유리한 조항이다. 따라서 현행 표시제에서 허용하는 ‘미표시’ 또는 ‘포함 가능성 있음’의 항목은 없애고 의무표기 대상 농산물과 식품 모두에 ‘GMO’ 혹은 ‘GMO 없음’으로 단일하게 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표시 대상 식품(농산물)에 반드시 ‘유전자 조합’(GMO) 또는 ‘비유전자 조합’(NonGMO)으로 단일 표기하도록 돼 있다.
의무표기 농산물인 콩 콩나물 옥수수 감자를 식품의 5대 주원료로 사용하지 않으면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규정도 문제다. 식품가공업자들은 이 규정을 악용해 농산물을 5대 주원료가 아니라 후순위로 바꿔 가공하는 경우도 있다. 검사 결과 GMO가 검출되면 GMO 식품인데, 그것이 주재료로 쓰였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게 GMO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또 현행 GMO표시제는 표시 대상 품목이 외국에 비해 너무 한정적이고, 가축사료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빠져 있다. ‘비의도적 혼입 허용치’ 역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원료 농산물의 경우 ‘비의도적 혼입치’를 3%까지 인정하는데 유럽은 1%로 정하고 있다. 가공식품의 경우 국내에서도 ‘비의도 적혼 입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제조사는 원료를 GMO 3% 이하로 구분·유통했음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지녀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앞으로 가공식품의 정량검사 방법이 확립되면 혼입치 비율을 설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약청 박선희 연구관(식품미생물과)은 “GMO 종류가 너무 많아져 표시 대상을 전 품목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식품위생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개정안을 고시해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된 상태이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GMO의 안전성 문제는 아직 논쟁중이다. 박선희 연구관은 “콩 옥수수 등의 유전자조작된 단백질에 대해 소화성 독성 알레르기 등을 평가한 뒤 문제가 없으면 기존 농산물과 같은 안전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이나 미국 정부 등은 GMO가 식량문제를 해결해 주고, 식품영양을 개선해 주며,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GMO의 인체 유해 가능성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4일 영국학술원은 “유전자조작 작물의 안전성 검증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GMO가 조작 전의 자연상태 작물과 유전자 구성이 같을 경우 인체에 무해하다는 GMO 지지론자들의 검증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GMO는 인체에 치명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 또 지난 4월 말 영국에서는 GMO 옥수수의 안전성 실험에서 처음 알려진 것과 달리 이를 먹인 닭이 보통 옥수수를 먹인 닭보다 2배나 많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작물 안전성 검증 문제 있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권영근 소장은 “DNA 염기서열 속에 외부 유전자를 넣을 때 원하는 곳에 정확히 넣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잘못 넣게 되면 폐기물이 생기는데 그 폐기물은 없어지는 게 아니고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며 유전자 기술의 한계를 지적했다.
조작유전자가 꽃가루 등을 통해 외부의 다른 생명체로 전이될 경우 유기농산물에도 확산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와 생산자, 유통업체들을 네트워크화해서 GMO가 섞이지 않은 유기농산물과 식품을 보급하려는 회사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름부터 ‘Non GMO’인 이 회사 대표 차준원씨는 “2004년 뉴라운드 발효 이후 유럽 등지에서 밀려올 고급 유기농산물에 대처하려면 국내 유기농산물도 ‘비GMO’화해야 한다. 미국 국제상품규격위원회(CODEX)도 GMO는 유기농산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GMO 보급이 확산될수록 단품종 및 단작으로 생물종의 다양성이 파괴되거나 종자, 식량 등이 다국적 기업들에 종속될 우려도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한번 심어서 거두어들인 종자를 다시 심었을 경우에 수확할 수 없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터미네이터 기술’과, 작물의 성장단계별로 특정 비료를 뿌려야 하는 ‘트레이트 기술’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련의 이번 실험 발표는 해당업체와 시민들에게 GMO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주간동아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_donga/news335/wd335ee040.html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9.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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