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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닮 게시판  [ 모두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초저비용농업의 해법! ]

부모되기의 어려움
해거름에 2004-05-08 10:03:34 | 조회: 9501
연이틀 뒤숭숭한 꿈자리.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탓이려니,
일손 놓게 되어 몸이 한가해진 탓이려니 했었다.
강남에서 자농모임이 있으니 좀 일찍 나가봐야겠다고
부지런을 떨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어수선했다.

학교운동회가 끝나고 친구집에서 놀다오겠다던 작은아이가
때이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막 나들이 준비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부른다.

엄마, 나 오늘 운동회 하는데 팔다리가 빨갛게 되었어.

무슨일인가 싶어 아이의 몸을 살피는데, 아찔하다.
짧은 운동복을 입고나간 탓에 노출된 팔다리 부위가
온통 빨갛게 반점이 생겨 부풀어 올라 있었다.

직감적으로 식중독이나 그런 흔한 증상이 아니다 싶었다.
가슴이 마구 뛰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의료보험증을 챙겨들고 다니던 동네병원을 찾아간다.
의사도 쉽게 진단을 내리지 못한다.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해보잔다.
아이는 혈소판이 정상치보다 부족하다.
또래보다 늦은 발육
그리고 햇볕에 의한 반점과 부종.
짧디짧은 의학상식으로 줏어들은 단어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검사결과는 화요일에나 나온단다.

다시 종합병원 피부과를 찾아간다.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어도
몇가지 의사의 추측만을 들을 수 있을 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두려움과 무력감.
아이의 붉은 반점은 가라앉지 않는다.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지나간다.
온갖 나쁜 상상은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자꾸만 눈앞이 흐려진다.

의연한 부모되기의 어려움.
혹여라도 아이에게 발생할 모든 나쁜 것들을
내가 대신 받을 수는 없을까
살아생전 일곱이나 되는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했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별소용도 없을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아간다.
항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제 연고.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처방해준 약일텐데,
아이의 증상진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받아오기는 했어도 약을 쓰지는 않는다.
현대의학의 무력감을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알아버린 탓이다.

찬물로 아이를 씻기고,
기온이 내려가자 빨갛던 부위가 미세하게 가라앉는다.
그래도 열이나 다른 증상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이는 밝다.

엄마는 내가 아프면 왜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해?

또랑하게 묻는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억지로 웃어준다.

엄마가 채린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니까.

어느덧 모임이 시작되고 있을 시각이다.
함께 있어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으리라.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다만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냉정해지자. 냉정하게 사태를 인지해야
그 다음의 상황을 올바로 대처할 수 있지않겠는가.

아이들 잠자리를 챙겨주고 모임장소로 향한다.
자농이 내게 있어 무슨 의미인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삶의 변화를 꿈꾸고 계획하는 내게
그것이 하나의 단초가 될 수는 있지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 것이다.
2004-05-08 10: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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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댓글과 답글 12
  • 해거름에 2004-05-09 09:22:42

    행복배님, 저는 농사를 짓지 못한답니다. 그냥 삭막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죠. 음, 7평짜리 주말농장은 있지요.^^기회가 되면 행복배님 농장에 다니러 가고 싶네요.

    오렌지 제주님,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찾아볼께요.
     

    • 오렌지제주 2004-05-09 00:24:27

      해거름에님
      마이너스 클럽에 문을 두드려 보세요.
      많은 분들이 경험담을 올려 놓으셨던데 도움이 될런지....
       

      • 행복배 2004-05-08 23:06:32

        해거름에님댁이 일산이세요?
        농사는 무슨농사를 지으시나요?
        옆집아줌마님!
        번개모임이니 사라질때도 번개같이 가는 줄 알고 그냥 왔습니다.
        인사 못드리고 와서 죄송~~^**^
        다음에 양주로 출타하세요....
         

        • 해거름에 2004-05-08 21:52:57

          앵두님의 활기참이 참 좋았습니다. 옆자리 지켜주시는 분이 계셔서 더 행복해 보였구요. 오랜세월 지나고도 초등학교적 동무들을 만나 놀 수 있다는 것, 정말 부러웠습니다. 저도 I love school에 친구찾기 해볼라구요.^^ 모두들 언니, 오빠들처럼 따뜻하고 정겨웠답니다. 일산에 놀러오시면 좋은 찻집,술집으로 안내할께요.^^  

          • 앵두 2004-05-08 16:08:49

            해거름에님 만나뵙게 되서 정말 반가웠어요.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글을 이처럼
            끈끈하게? 쓰실까? 무척 궁금했었더랍니다.
            끈끈하다는말로밖에 표현할수없음이 안타깝네요.
            이해해 주세요.

            어제 그런일이 있으셨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차분하시던지..
            옆에서 아무것도모르고 마냥 팔랑댄거같아 민망하네요.
            기회 있을때마다 우리 열심히 보기로 하죠!! ^^
             

            • 서울농부 2004-05-08 14:08:52

              급한 일이 있어서 인사도 못드리고 그만 실례.죄송. 그리고 좀 아쉬운 건 신문지 하나 말아 갈걸 옆사람 얘기도 않들리니....릴레이식으로 초대를 해서 차분히 만나면 좋을것 같은데...저의 밭은 경부선 안성.평택 나들목에서 10분거리이니 회원님들,용두동팀들 한번 놀러오세요  

              • 해거름에 2004-05-08 14:03:05

                위안주셔서 감사하구요, 아이는 어제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옆집아줌마,(아줌마님이란 호칭은 좀 어색하죠? 그냥 아줌마~가 정겨워서요^^) 콜하시면 신촌,영등포 언제나 좋습니다. 어제도 잠을 설쳐 오전내내 멍하네요. 씩씩하게 집도 치우고 애들 간식거리도 만들고 해야겠습니다.

                들꽃향기님, 숨결님이 술을 많이드셨던데 괜찮으시죠? 보내주신 물건은 잘 받았습니다. 책 5권 다 읽고나면 나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라나...
                 

                • 옆집아줌마 2004-05-08 13:45:15

                  행복배님, 이장집님, 마실님, 서울농부님, 화천에 계신님
                  갑자기 제 시야에서 사라지셨더군요.
                  잘 도착하셨지요
                  포도시인님은 모시고갈 백마가 금방 오셨는지요
                  이제는 순례를 해야 하겠습니다
                  양주로 일산으로 남양주로 화천으로..........
                   

                  • 옆집아줌마 2004-05-08 13:25:48

                    산내음님, 소세마리님, 여물주는이님, 오솔길님과 그 옆지기님, 백두대간님
                    잘 도착하셨지요
                    어제 만나뵈서 너무 반갑구 아쉬웠습니다.
                    멀리 오셨는데 금방가셔서.....
                    항상 밝음에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 옆집아줌마 2004-05-08 13:18:40

                      해거름에님 잘 가셨군요
                      채린이 반점은 많이 가라 앉았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햇빛알러지 일수도 있거든요
                      우리 영등포나 신촌에서 접선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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