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골 전면입니다.
지리산 구제봉에서 찍었습니다.
섬진강이 흐르고 가운데 넓은 약 70만평의 논이 평사리죠.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주무대입니다.
평사리 벌판 안쪽으로도 상당히 큰 면적의 경작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총 경작지가 360만평되구요. 전체적으로는 아마 천만평정도 될
것같습니다.
곡성으로 구례를 걸쳐 내려오는 섬진강 줄기가 보입니다.
앞으로는 백운산이 있죠. 아직도 물이 맑습니다. 어쩜 이렇게 강이 맑
을 수 있을까 감탄을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섬진강변을 지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
된 곳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형제봉(1115m)보입니다.
이곳에서 보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입니다.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악양!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악양이란 이름의 유래는 중국인데 중국에서 풍수지리가 가장 완벽한
곳으로 손꼽히는 중국의 악양을 이곳이 빼어 닮았다고 해서 신라시대
때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곳 악양골은 70년대 인구가 약 1만 5천명이 었답니다.
그러나 불과 20~30년 사이에 인구는 1/6정도인 2,500여명으로 줄었구
요.
초등학생은 3,000명에서 150명으로 1/20일 줄었습니다.
초등학교는 3개가 있었는데 2개는 폐교가 되었죠.
더욱 가슴아픈것은 출생신고가 거의 없어 앞으로 10년 사이에
현재 인구의 반이상으로 줄어들 것이란 예측입니다.
악양골은 악쪽으로도 상당히 많은 면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면소재지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더욱 인구가 고령이어서 55세 정도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층에 들어갑
니다.
지리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다랭이논들이 최근들어
급격히 휴경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다랭이 논이 5년 사이에 거의
없어질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악양초등학교, 중학교, 우체국, 면사무소, 농협이 모여있습니
다.
참 눈물겨운 것은 현 초등학교 학생중에 상당부분이 결손가정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반원 24명이 소풍을 가는데 10명이서 24명의 도시락을 싼적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14명의 아이들이 부모가 없거나 할머니에게서 자
라고 있기 때문이죠.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도시의 삶을 실패하고 결국 이혼을 하여 아이를
고향의 노모에게 맡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아름다운 악약골에
우리 미래인 아이들의 깊은 슬픔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에
눈물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름다워 더욱 눈물겨운 악양골!
수십년간 악양의 발자취를 보면 이제 얼마되지 않아 소멸될지도 모른
다는 위기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곳의 농민들이 희망을 만들어 내야하는데 농산물 수입개방에 앞에
서, 누적된 빚더미 앞에서 퇴색이 짙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상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죠. 일어서야 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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