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봐도 발자국 하나 없는 썰물 진 모래밭에 이름 하나 써서 밀물에 쓸려 보내고그 허무함에 진저리치며 돌아서서 발길 닿는 데로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며칠을 이 구석 저 구석 헤매고 다녔다. 한반도에 100년만에 내렸다는 폭설과 그 매서운 바닷가의 꽃샘바람도 섬에서 봄을 몰아 내지는 못했다. 섬은 온통 봄에 취해 헐떡이고 있었다. 구비진 돌담 끝에서 만난 해녀의 눈에는 바다의 눈매를 닮은 슬픈 그늘과 유채꽃을 닮은 그리움이 노랗게 있었다.
섬에서 만난 하늘, 구름, 바다, 오름, 바닷가의 작은 돌탑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바람에 흔들리는 팽나무, 갈대, 들꽃, 우표 만한 작은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그 모든 것이 감동 아닌 것이 없었고, 그 아름다움은 순간 순간 나를 가슴 벅차게 했지만, 들꽃은 들꽃끼리 피어나고 물은 물끼리, 구름은 구름끼리 흐르고 바람은 바람을 부르고 갈대는 갈대끼리 모든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흔들리는 곳에서 그 경이로운 울림을 혼자만 느낀다는 것이 이내 아픔으로 다가왔다. 함께가 아닌 혼자라는 것이…
자연의 흔들림을 작은 카메라에 담으며 더불어 나 또한 흔들리며 섬을 헤매다 만난 사람, 나보다도 더 아주 작은 미세한 흔들림까지 볼 줄 아는 사람, 사진에 미쳐 혼자 전국을 돌며 사진을 찍다 제주도 풍광에 홀려 20년 동안 제주도의 산과 들, 바다를, 무어라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을, 감동을 필름에 담아 표현하는 사람,가족도 없이 혼자 살며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을 한다는 궁상맞은 50이 다 되어 가는 남자, 그렇게 혼자 살다 불치병인 루게릭에 걸려 온몸의 근육과 살을 빼앗겨 고목처럼 굳어가서 이젠 사진을 찍는 것은 고사하고 거동조차 불편하고, 음식조차 제대로 씹을 수 없는, 생명의 불꽃이 언제 꺼질지 모를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 그를 만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게는 참 행운이었다.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의 폐교를 임대하여 팔의 근육이 녹아버려 한 손으로 휴지 한 장 들어올릴 수가 없는 버거운 아픈 몸을 이끌며 직접 돌멩이 하나 하나를 옮기면서 2년여의 작업 끝에 국제적인 수준의 아트 갤러리 ‘두모악’을 만든 미친 남자.
그러나 눈빛이 맑은 사진가 ‘김영갑’. 질기게 생을 살아 갈 줄 아는 들풀 같은 사람. 그가 그 섬에 있었다.
그날 구름이 많을지, 안개가 짙을지, 비가 올지의 날씨 변화에만 관심을 가지며 산과 들을 헤매온 사람. 그 누구에게 단 한번 사랑한다 말없이 그렇게 사진에만 매달려 온 그가 루게릭 병에 걸려 셔터를 누를 힘은 고사하고 온종일 누워만 지내기에 하루는 너무 길었고 더디 갔다.
갤러리 두모악은 산모퉁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명의 사진가가 힘든 몸으로 사진 갤러리를 열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와 내가 예술을, 문학을, 사람을 이야기하는 동안에 손님들이 찾아와 그의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그는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삐딱한 모습으로 공손히 인사하고는 힘겹게 두 손으로 겨우 겨우 사인을 해준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아팠지만, 미련한 나는 그와의 이야기에 빠져서 그를 장시간 붙잡고 있다가, 결국 그가 너무 힘들다면서 자리를 뜰 때서야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몰라 쩔쩔매었다. 애써 만든 갤러리를 무료로 운영하고, 작품도 팔지 않고 오로지 엽서와 작품집과 포토에세이를 팔아 근근히 운영해 나가는 그는 사진의 한 역사를 장식할 이 시대의 멋진 ‘꼴통사진가’이다.
그가 두모악에 데려다 함께 살고 있는 소나무, 갈대, 노란 수선화와 이름 모를 들꽃, 돌과 바람이 있는 정원속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이 여백이 가득하다. ●
사진사랑시사랑님 정말 제가 노래불러도 될까요?
저는 분위기 박자 무시하고 제 마음 내키는대로 부르는데...
사진사랑시사랑2004-07-20 00:21:38
사실을 말하자면, 저의 샌프란시스코 생활은 처음엔 두려움 그 자체였답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그러한 두려움도 감정의 혼란도 느낄새가 없었어요. 매학기마다 성적 순으로 30%씩 도태되는 그곳의 학교 규칙때문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하루에 2~3시간씩 잠을 자면 죽어라 한 공부, 이제와 생각하니 아무 쓸짝에도 없더라구요. 그 당시의 내감정 내오만 뭐 그런거였더라구요. 뭐이 그리 대단한거라고 가족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목숨 바쳤는지......
지금은 모든 것에 여유를 가지고 둥글게 둥글게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리고 오늘,
이글 올리면서 아차 싶은게 있더라구요
이 글의 주인공이신 김영갑님과의 약속을 한번 딱 지키고 까마득히 잊었었는데, 내일 당장 우체국으로 달려가야겠어요. 그 분은 일체 모든 음식을 씹을 수가 없어 제가 대체 음식을 매달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그만 6월달 깜빡 잊고 그냥 지나쳤네요. 그분한테 정말 죄송하군요~
휴~
그저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노래하는별님, 나중에 악양 놀러가면 노래 불러주세용^^*
구름나그네님,
봄날의 구름은 산이라야 걸맞고,
여름 구름은 나무라야 어울린다.
가을 구름은 흐르는 물 위에,
겨울 구름은 드넓은 들판이라야 제격이다.
春雲宜山, 夏雲宜樹, 秋雲宜水, 冬雲宜野. 《小窗自紀》
아지랑이 봄날에 산위로 피어나는 구름이 곱습니다.
나무 끝에 걸린 여름 구름은 시원한 소나기의 예감을 일깨우는데.
푸른 강물 위로 떠가는 구름, 하늘도 강물도 모두 파란 빛인데 구름은 도대체 어디서 뜬 것인지요?
구름나그네님, 아이디를 보니 옛시가 생각나 한 수 읆어봅니다.
세상사 구름나그네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들꽃향기님의 향기가 자농 구석구석 배어 있음을 느낌니다~^^*
모든님들, 비록 장마철이긴 하오나 뽀송뽀송한 날들이시길 바라옵니다^^*
들꽃향기2004-07-19 21:42:25
수선화와 이름 모를 들꽃이라~~~~~~~~~~~~
둘다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요. 히히히히
사실 저는 수선화도 들꽃도 참 많이 좋아합니다.
그 단어만 보게되도 가슴이 콩닥콩닥~~~~~~~~~~~~
고맙습니다. 잘 읽고 잘 새기고 잘 듣고 갑니다.
구름나그네2004-07-19 20:40:39
좋은 사진과 글, 훌륭한 음악이 있어 입체적 즐거움을 안겨주시네요...
노래하는별2004-07-19 18:20:29
저는 만감이 교차한다는 한마디로 밖에 표현이 안되는데
이렇게 헤아려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것 보다는 익숙한 느낌이어서
굳이 적응한다는 생각을 하지않고 지내고 있고 또 그러려고 합니다
한번 놀러오세요~
사진사랑시사랑2004-07-19 15:46:23
노래하는별님, 악양 내려가신지 얼마 안되신것 같은데,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 어떠신가요? 어쩐지 옛날 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발디뎠을 때의 그 때의 그 호기심과 두려움, 기대감같은 여러감정들이 뒤엉켜 있으시리란 생각이 드네요.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후 작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때의 그 낯설음, 그리고 또 맞이한 순간의 기쁨, 순간의 혼란등 그 복잡 미묘한 감정들.....
아마도 제가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몇마디 말걸어 봅니다.
아무튼, 뜻하시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