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퇴근길에 일어났던 이야기 한 토막 올려봅니다. 여느 날처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지요. 목적지 역에 열차는 도착하였고, 저는 열차에서 내려 사람들 틈에 섞여 개찰구를 향하여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은 다시 출발하여 막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던 그 순간, 계단 위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내들은 이미 출발한 열차를 향해 소리를 치면서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저는, 아쉽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열차는 5미터 이상을 출발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레일 위를 굴러가던 열차 바퀴가 끼익, 하는 브레이크 음과 함께 자리에 멈춰 서는 것이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그 모습을 지켜본 저는 순간적으로 엉뚱한 상상을 하였습니다. 열차를 세운 기관사와 사내들이 멱살잡이라도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사내들은 놓친 열차를 향해 꽤나 소란한 음성과 거친 몸짓을 보였으니까요. 혹, 팔뚝질을 한 이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기관사로서는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만은 분명했지요.
적지 않은 이들이 저처럼 멈춰 선 지하철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 기관사실로 통하는 쪽문이 안에서부터 열리더군요. 그리고는 기관사가 나오더니 달려오는 사내들을 그것으로 불러서 태우는 거였습니다. 세 명의 사내는 연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었고, 기관사는 빙긋 웃으며 손짓으로 그들을 안전하게 태웠습니다. 비좁은 기관사실이 순간 들이닥친 세 명의 사내들로 꽉 차더군요. 그리고 열차는 다시 출발을 하였습니다. 사라지는 열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제겐 여간 신선한 충격이 아니었지요. 지하철 경력 20년만에 처음 대하는 풍경이었으니까요.
저는 하루에도 마을 버스를 서너 차례를 타고, 지하철도 몇 번씩 갈아탑니다. 그런데 매번 느끼는 것은,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가끔은 친절한 분들도 만나긴 하지만은요. 마을 버스는 정류장을 정차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자주 대하고, 출발한 버스가 멈춰서서 손님을 태우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요. 버스들이 이러한데 하물며 이미 출발한 지하철은 오죽하겠습니까
왜 버스나 지하철은 한번 출발하고 나면 좀체로 서지 않을까요? 배차 시간을 엄수함으로써 자신이 맡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프로의식 탓일까요? 아니면 그저 귀찮아서일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운전대 잡은 자의 보이지 않는 폭력성' 이라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정답이랍니다.
그들은 손님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놓칠 때, 마음 한편에서는 쾌락을 느낀다는 겁니다. 상대방의 고통을 나의 즐거움으로 느끼는 일종의 새디즘인 것이지요. 교도관이나 경비 같은 이들처럼 제복을 입고 생활하는 하급관리직들에서 이런 새디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직종의 사람들 중에는 자신보다 밑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고압적이며, 상부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굽신거리는 성향을 동시에 보이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군요.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직종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닙니다.)
'지하철도 멈춰설 수 있다.' 젊은 기관사는 함께 사는 우리 세상을 훨씬 살맛나게 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어느 직종이든, 나의 마음 자세에 따라 세상은 지옥일수도, 천국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