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ww.jadam.kr 2005-03-07 [ 조영상 ] 조한규 명예회장이 진행하는 자연농업 연찬광경

농민에게 자기반성을 주장하는 정치가와 지도자들을 보기 어렵고 농민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담은 언론매체 또한 볼 수 없다.

어느 곳에서나 농민은 절대 신성불가침이다. 이러한 풍조가 주류를 이루게 된 배경에는 농업이 안고 있는 중요성과 근원적 가치를 존중해 왔던 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정치가, 지도자들과 언론담당자들은 개인적으로 농민도 문제임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중앞에서는 농민을 적극 옹호한다. 그런 과정 가운데 농민은 자기비판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보편타당성도 없는 억지논리로 자기를 합리화시켜나가기 쉽게 된다. 이런 시대적 풍조가 더욱 농민을 병들게 했다. 농민은 농업 그 자체로써 당당했고, 우월감마저 느끼고 산다.

당당함과 우월감, 좋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자기 겸손’을 잃어버렸다.

시대적으로 농업은 쇄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고 그 속에서 농민들은 부채에 짓눌려 신음을 하고 있다.

어떤 작목이든 확실한 경제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없어 희망마저 꺼져가고 있다.

한 몸 바쳐 키워 대학을 보낸 자식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몇 년을 도시에서 버둥대고 있어 그나마 마지막으로 건 자식에 대한 기대마저 이제는 불확실로 남아 있다.

농민은, 농촌은 힘들고 어렵다는 일상화된 관념으로 그 심각한 현 상황이 더 이상 언론에 주목을 받지 못한채 정보의 홍수 속에 갇혀버렸다. 여든 야든 농촌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그리고 농정담당자들은 뚜렷하고일관성 있는 비전조차 찾지 못해 일상적인 사안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부채탕감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농민은 부채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상황에 무릎을 꿇고 목을 메고 만다.

농민을 위해 큰 힘을 실어 줄 만한 실세 정치집단들은 첨단산업화된 도시국가를 비전으로 세계화에 대한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있어 농업은 이를 위한 보조적인 산업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국제 농업협상이 열리면 매번 농민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만 왜 생기는가 그들, 정치엘리트 집단에게 농업을 바라보는 국가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세계화로 매진을 하는 과정은 끝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끊임없는 범세계 경쟁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살벌한 전쟁과도 같아 세계화는 실현의 단계가 있을 수 없는 영원한 가속(加速)이요, 미궁(迷宮)이다.

국가가 세계화를 정책 중심기조로 삼는 한, 국내 농업은 세계 경제적 조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엄격히 재단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에 부가 축적되면 그 때 여유있는 재정으로 농업을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선 희생, 후 보상식의 정치논리는 거짓이다. 농업을 바라보는 살벌한 이면(裏面)이 존재하는 정치가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그런 정치가 어떻게 농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도시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우리 농산물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농민들도 있지만 그런 것도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어 경제정책가들의 최대 현안중에 하나는‘어떻게 하면 도시인의 생활비를 적게 유지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기 위해서 생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조정이 용이한 1·2차 농산물의 가격을 낮추는데 정책의 힘을 모으게 된다. 따라서 값싼 농산물의 수입은 그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고 바람직한 정책사안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농업은 이러한 세계적, 국내적 한계상황 안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홍보차원의 농업정책과 이면에 깔린 정책의도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는 현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세계화가 촉진되면 될수록 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농업정책적 영역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힘겹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안타깝고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구 한복판에 홀로 서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한다.

대중 농업언론매체들의 정책비판 일색의 기사를 보고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면 이제는 접을 때가 되었다. 그들은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한계에 있는 봉급생활자들이다.

현실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는 기반 위에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외부로만 돌렸던 비판의 화살들을 자신의 내부로 돌려 자신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정신적 대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대로 있고 네가 변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사고방식으로는 현 농촌에서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농민 스스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자기 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

고품질, 고부가가치를 농정의 표제로 삼고 전국의 농정이 움직이고 있다. 그 담당자들은 그 길밖에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들도 그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의문을 표시한다. 과연 그 길만이 옳은 길인가?

나의 판단으로는 이런 정책의 흐름은 극히 소수의 성공한 유명 농민을 만들어 낼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농업을 다시 한 번 더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본다.

현 국가 경제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농업부분까지 연장시켜 적용하려는 것은 그 실현 가능성을 확신해서가 아니고 농민에게 허상의 희망이라도 제공해야 하는 정치적 고육책이라고 본다.

고품질, 고부가가치를 내세우면서 지도되어온 농촌 현장들을 가보라! 어느 한 곳 엄청난 투자비용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리고 수익성을 확보해 부채상환에 문제가 없는 현장이 어디에 있는가?

고비용이 전제되는 고품질, 고부가가치는 농민에게 다시 한 번 회복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농산물의 유통시장을 확대하여 농민에게 보다 넓은 마당을 제공하는 정책은 뒷전으로 하고 농민들 간의 경쟁을 가속화시키는 정책은 절대 다수의 패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될 것인가?

우선‘생활양식’이 변해야 된다고 본다. 많이 벌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는 고정관념에서 탈피, 적게 벌고 여유있게 사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경제적 수입을 늘려 지금의 농촌을 살리고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상상은 이제 접어야 한다. 도시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농촌에서도 잘살 수 있다는 예전의 정책 홍보에 연연하여 아직 그런 희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희망 때문에 고통받고 절망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자급과 자생을 주 기반으로 했던 예전의 농촌의 모습을 더욱 닮아가야 만 농촌이 존립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폐의 의존에서 최대한 떨어져 나와야 한다. 서로 경쟁을 하여 피박이 터질 수밖에 없는 외부적 환경 속에 서 있더라도 ‘생활양식’만큼은 철저히 변해야 한다.

경제적 수입을 늘려 생활의 질을 높여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생활의 물질적, 문화적 수준을 끌어내려 내 안의 여유를 늘려 나가는 길이 보다 많은 농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이 길이 자신과 가족에게 심리적 위축과 고통을 주겠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희망과 행복을 얻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명분·체면 때문에, 대인관계 때문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생활소비수준을 철저히 줄여가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기업들이 자기몸집을 줄여 나가 듯 농민들도 자신의 몸집을 철저히 줄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트랙터가 필요하다면 먼저 빌려쓸 생각을, 집에 자가용이 있다면 이것을 처분하고 지출을 줄일 생각을, 텃밭을 가꾸고 육류와 가공식품의 소비는 줄여 돈이 거의 없어도 먹을 걱정이 없는 생활을, 꼭 필요하지 않은 신용카드나 핸드폰, 정신을 도시문화로 미혹케 하는 TV 등을 과감히 버려 버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나아가 자녀교육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자기 능력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농업을 하면서 자녀에게 대학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농민을 더욱 깊은 시름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녀를 위한 비용 지출은 고등학교나 대학 입학급까지면 족하다. 그리고 결혼은 자기 본인의 문제로 남겨 두어야한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선뜻 어렵겠지만 그 길이 살 길이다. 당장 한 해 이자를 갚기 힘겨워 경황이 없더라도 철저히 자신의 생활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생활양식이 변해 철저히 소비수준을 낮추어나가는 데서 농업의 가능성과 희망이 시작된다.

농업에 있어서도 고투입이 고품질,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그런 환상을 버려야 한다. 최저투입이 우선이고 그 기반으로 고효율, 고품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자연농업은 이를 위한 좋은 안내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 절망 가운데 희망을 회복하는 길, 희망으로 가능성을 더욱 넓혀 가는 길,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주변의 조건이기보다는 농민 ‘마음가짐’의 새로운 변화일 수밖에 없다.

조한규 명예회장,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7.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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