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일, 낙안 이곡리에서 무농약으로 배와 오이 농사를 하시는 박성근님의 ‘가고픈 이레농장’을 찾았다. 승주에서 굽이굽이 고개를 돌아 금전산 자락에서 내려다보는 낙안 들녘은 ‘樂安’이라는 지명이 그냥 지어진 게 아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난다. 그러나 처음 뵈는 박성근님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 드리운, 어딘지 지쳐 보이는 모습에서 결코 편안할 수 없는 농사 현실이 읽혀진다. 저농약 5년 차에 올해 처음으로 무농약 배 재배에 도전하셨는데 작황이 좋지 않아 낙심이 크신 모양이다.
낙안이 고향인 박성근님은 35년 전부터 오이 농사를 하셨단다. 그러던 중 천식 기운이 있으셨던 부인의 병이 하우스에서의 농약 중독으로 더 악화되자 80년대에 복숭아밭을 구입해 업종전환을 꾀하셨는데 3년차에 과수의 90% 이상이 태풍에 뽑혀나갔단다. 그래서 배나무를 심으시고 나무가 자랄 동안 소득은 있어야겠기에 다시 하우스 오이 농사를 하시면서 친환경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신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관심은 자연농업협회에서 기본연찬과 과수전문 교육을 받으시면서 진전되어 올해 배 무농약재배로까지 이어졌다. 창고에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천연자재와 토착미생물, 이를 활용한 섞어띄움비가 가득하다. 박성근님이 쏟아온 자연농업에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오이 하우스엔 내년 농사를 대비해 소독한 호밀 대신 강원도에서 구한 토종 옥수수를 심고 갈아엎어 지력을 높이신단다. 신고 품종이 대부분인 4,500평 배과수원엔 부족한 배 수분을 위한 수분 가지 꽂이용 수분통이 여기저기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러나 무농약에 대한 고집만큼 배 작황이 뒤따라주지 않아 고민이 많으신 모양이다. 더구나 이곳 낙안에서 선도적으로 몇 농가와 무농약 시험을 하고 계시는데, 관행농가에 비해 일은 많은데 작황마저 좋지 않으니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올곧은 님에게 심적 부담이 되는 듯하다.
오이는 오랜 인지도로 생협 등을 통해 판로를 열었지만 이번 무농약 배는 판로가 없어 홈페이지를 만들어 직접 판매를 시도하신단다. 때문에 바쁜 농사일에도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하고 올리는 일에 열심이시다. 올해 작황이 좋지 않은데 계속 무농약을 하실 거냐는 질문에 한동안 뜸을 들이시더니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답하시곤 멋쩍어 웃으신다. 고민과 아픔을 잠시나마 접어두고 카메라 앞에서 부인과 천진한 웃음을 지어보이시는 박성근님에게서 과연, 농부는 무엇으로 사는지 내 자신 반문해 보게 된다.
유걸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09.2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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