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지도자는 아랫사람이 그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그 다음 지도자는 가까이 모셔 받들고 그 다음은 두려워하고 그 다음은 경멸한다.
신용이 없어서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다. 조심할 일이다, 말을 귀하게 여기고 공을 이루어 일을 마치되 백성이 모두 말하기를, 내가 그렇게 했다고 한다.
太上(태상)은 下知有之(하지유지)요 其次(기차)는 親之譽之(친지예지)요 其次(기차)는 畏之(외지)요 其次(기차)는 侮之(모지)니라.
故信不足焉(고지부족언)하여 有不信(유불신)이로다. 猶兮(유혜)여 其貴言(기귀언)하여 攻成事遂(공성사수)로되 百姓皆曰(백성개왈) 我自然(아자연)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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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감정이나 계산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지도자를 누가 우습게 보지 않겠는가 그런 지도자를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이장(里長)이 마을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여 처신한다면 누가 그를 경멸하지 않겠는가 농부가 땅을 경멸하지 못하는 까닭은, 땅이 제 실속부터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법을 정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지도자는 아랫사람이 경멸하거나 불신하지 못하는 대신 두려워한다. 그러나 다만 두려워할 뿐, 그를 가까이 모셔 받들려고는 하지 않는다. 만사에 “법대로”를 외치며 고집하는 지도자는 백성한테서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없다. 그에게 법은 잘못한 자를 벌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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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한 단계 높은 지도자는 ‘따스한 온기’를 소유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이 그를 가까이 받들어 모신다. 그의 지도에 사람들이 따르는 이유는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고 싶어서이다. 그에게 법은 형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백성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이다. 이쯤되면 훌륭한 지도자다.그러나 아직 최상(最上)은 아니다.
가장 높은 지도자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 정도 알 뿐이다. 일부러 가까이 모시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마다 말하기를, 지도자 따위 없어도 내가 다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자기를 감추는 지도자, 그게 가장 높은(太上)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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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빛과 비를 내려 온갖 작물을 키웠으면서도, 이 쌀은 농부 아무개가 지은 쌀이라고 말해도 그냥 내려다 볼 뿐이다. 땅이 물과 양분을 모아 온갖 곡식을 자라게 했으면서도 이 감자는 농부 아무개의 작품이라고 선전해도 그냥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있으면서 없는 듯이 존재하는 지도자가 가장 높은 지도자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볼 것인가 한 사람을 두고 어떤 자들은 경멸을 하고 어떤 자들은 두려워하고 어떤 자들은 가까이 받들어 모시고 어떤 자들은 그가 있는 것을 알 뿐이다. 예수의 경우가 그렇다. 세상에는 그를 경멸한 자들도 있고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고 가까이 받들어 섬기는 자들도 있고 그냥 곁에 있음을 알고만 있는 자들도 있다. 예수만 그런가?
이현주,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11.0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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