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거제 해금강. 산 전체가 바위덩어리에다 암석 색깔이 보라색, 초록색, 갈색, 검은색 등 컬러풀하다.

 

종려나무와 팔색조의 섬 거제도.

 

산과 포구가 아름답고 서정적인 섬.

 

섬을 돌면서 어린아이들처럼 신기해하고 즐거워했습니다.
2006년 1월 초 어느 토요일입니다. 전날 밤에 비가 왔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날씨는 여전히 흐렸습니다. 춥지는 않았습니다. 갑자기 거제를 가게 됐습니다. 아침 식탁에서 누군가 “요즘 대구철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대구탕 맛있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그럼 거제도에 가자”... 일인 즉 슨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른 5명이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어른 다섯... 매표소 용어로만 이해해주십시오.

 

목적지는 거제도 장목 외포리입니다. 여행 목적은 대구탕을 먹고 오는 겁니다. 약간은 호사스럽기도 합니다. 자그만 승용차에 어른 다섯은 비좁더군요. 오전 10시 40분경이었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바다를 찾아 떠난 사람들.

 

19번 2차선 국도를 타고 하동읍을 향해 달렸습니다. 이 도로는 섬진강을 따라 완만한 곡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중 하나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오다보면 왼편은 피아골 형제봉 등 지리산 줄기가 이어지고, 오른편은 차와 배밭이며, 강물은 호리병 모양으로 넓어졌다 좁아졌다하며 쉼 없이 흐릅니다.

 

산머리 부근에 구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컬러는 다크그린입니다. 억새풀이 우거진 강변을 가리키며 일행 중 한사람이 “저기에 게들이 우글우글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동읍 외곽으로 돌아 하동 IC로 진입해 진주로 가는 고속국도를 탔습니다. 진교- 곤양을 지나 사천휴게소에 들러 뜨거운 커피를 한 잔씩 마신 후 오던 길을 계속 달렸습니다.

 

원래 하동에서 거제도까지 3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최근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한 시간 넘게 단축됐습니다. 진주분기점에서 새 고속도로로 갈아탔습니다. 4차선 시멘트길이 일직선으로 나 있습니다. 차량들이 뜸했습니다. 아직 과속감지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은 듯했습니다. 140km로 달렸습니다. 길이 좋아서 그런지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거제시내. 아파트와 승용차가 많다.

 

도로 한편에 순찰차 전용 주차라고 쓰여 있습니다. 별꼴입니다. 다른 차는 주차하면 안 되는가 봅니다. 그 곳에서 과속 차량을 감시하겠지요. 길 잘 닦았습니다.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만든 길입니다. 한여름 흙더미 속에서 길 닦느라 땀 흘린 인부들의 노고가 고마웠습니다.

 

오른편에 고성휴게소가 나타났습니다. 석조기둥에 기와를 얹었습니다. 깨끗하고 탄탄하게 지었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가랑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승용차로 여행하기 적당한 날씨입니다. 시야는 어둡지 않았으며, 숲은 윤기가 흘렀습니다. 적당한 습기로 피부가 뽀송뽀송하였습니다.

 

순간 통영이란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통영입니다. 남해 미조항 보다 아름답다는 통영.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본 이후 나이 50이 넘어서야 직접 와보게 됐습니다.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물으면 세월을 애돌아 늦었다는...맞나요 그런 가사도 있는가요

 

정말 왜 이제서야 통영에 왔는가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만큼 삶이 바빴는가 봅니다. 바빴던 만큼 이룬 것도 많아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닙니다. 허송세월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가고 싶은 곳을 가야겠습니다. 눈 감기 전에 다 가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장목 외포리. 티끌처럼 보이는 것들이 갈매기들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번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거제는 통영을 지나야 있습니다. 통영 방문은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거제 IC를 나와 거제 시내로 향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장목 외포리입니다. 외포리에서 잡히는 대구가 특히 맛있다고 합니다. 결국 먹는 거였습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도 합니다. 이 날이 꼭 그랬습니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먹거리 아닙니까. 먹어야 힘이 나고 볼거리도 찾아다니고, 돌아와서 여행기도 쓰고, 누군가에게 음식도 소개해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어디 가면 꼭 그거 먹어봐라” 아주 중요한 멘트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이 맘 때면 거제도에 가야 합니다. 거제도 외포에 가서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대구탕을 한 그릇 비워야 합니다. 대구철은 12월 말부터 2월초까지입니다. 대구는 태어나서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 소련의 베링해협까지 갔다가 거제도로 되돌아와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입이 커서 대구라고 합니다. 대구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가미는 아가미젓을, 창자로는 창란젓을 만듭니다. 젖이 적은 산모가 먹으면 쭉쭉 나온다고 합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외포 방파제를 걷고 있는 관광객들.

 

육지와 섬을 잇는 거제대교를 건넜습니다. 14번 국도를 따라 섬의 동쪽을 향해 달렸습니다. 기후가 포근했습니다. 계단식 밭이 보입니다. 색깔이 붉은빛이 도는 황토빛입니다. 다른 지방의 밭보다 색깔이 붉었습니다. 코닥필름 같습니다. 산도 높고 많습니다. 엷은 갈색 바탕에 침엽수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습니다. 겨울 풍경이 아니라 가을 풍경 같았습니다. 북에서 온 어느 귀순용사가 유행 시킨 “따뜻한 남쪽나라”라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거제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오후 12시 30분이 조금 지났습니다. 하동에서 거제 시내까지 2시간이 채 안 걸린 셈입니다. 새 고속도로 덕분입니다. 고속도로는 빠릅니다. 대신 정겨운 시골 정경을 손해 봅니다. 도로표지판에서 삼성중공업을 봤습니다. 삼성중공업, 주식 시세판에서 본 낯익은 기업입니다. 97년 IMF 당시 6천 원대 하던 이 회사 주가가 요즘은 1만6천 원 합니다. 그 당시 사두었다면 약 세배를 번 셈이네요. 1천만 원어치를 샀다면 3천만 원, 1억을 사서 묻어두었다면 3억이란 말이네요. 그러나 누가 그걸 알겠습니까. 물론 그보다 더 오른 종목도 많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대구. 11이란 숫자는 11만원에 낙찰됐다는 뜻이다.

 

이야기가 샜습니다. 아파트와 차량과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제는 우리나라 조선업의 메카입니다. 임금이 높은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역시 조선업계의 호황답게 경제적으로 여유로워보입니다. 차량들이 깨끗하고 비교적 신형입니다. 차를 보면 그 지역의 생활 수준이 짐작됩니다.

 

일행 중 한사람이 “아파트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싫어하면서도 또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게 아파트입니다. 어느 혼혈가수가 같은 제목의 노래를 히트시켜 돈방석에 앉기도 했습니다. 가사는 생략합니다. 우리 세대에 아파트를 빼면 말이 안 됩니다. 사람의 외형을 곧잘 아파트 평수로 가늠합니다. 미우나 고우나 아파트는 현대인의 생활 공간이자, 재산 목록 1호입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대구탕은 담백하면서도 뒷끝이 쫀득했다. 반찬으로나오는 대구알무침도 일미다.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도로 표지판에 난데없이 김영삼대통령 생가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우리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고 떠난 정치인의 이름이었습니다. 이 날 여행의 오점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가를 왜 표지판에까지 적시해놓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20년 이상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걸어온 노정치인을 만난 사석에서 물었습니다. “참으로 힘든 정치 역정을 걸어 오셨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노정치가는 “아닙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여당이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만 하면 됩니다. 입안을 위해 머리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극렬하게 반대할수록 이 땅에서는 존경 받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이 또 옆길로 샜습니다. 동백나무가 늘어선 2차선 도로를 따라 기분 좋게 달렸습니다. 마을 입구에 조오련 선수가 참여하는 수영대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해병대원들이 행사장으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유도했습니다. 다행히 외포로 가는 길은 뚫려 있었습니다. 산길을 오르며 오른편으로 행사가 진행되는 포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에머랄드빛 바다에 돛이 높은 요트가 서너 척 떠있습니다. 음악소리와 마이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상 깊은 풍경이었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한 관광객이 대구를 사들고 머리에 이고 오고 있다.

 

일행은 장목이란 표지판을 보고 달렸습니다. 얼마 안 돼 오른편으로 자그마한 포구에 닿았습니다. 오늘의 목적지 외포였습니다. 갈매기와 배들이 많았습니다. 관광객 몇 명이 한가롭게 걸어다닐 뿐 한적했습니다. 그물을 펼쳐놓은 공간 한쪽에 조심스럽게 차를 주차시켰습니다.

 

차에서 나와 식당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텐트 바닥에 대구를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텐트 안쪽에선 대구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내장을 깡그리 긁어냈습니다. 말린 대구는 한 마리에 2만 원이라고 합니다. 대구는 배가 불룩하고 머리가 컸습니다. 몸통 위에 11이란 숫자가 적힌 종이가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경매에서 11만 원에 낙찰됐다는 얘기입니다. 생선 한 마리가 10만 원이 넘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많이 잡히지 않을 때는 한 마리에 30만 원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들이 바다매기의 내장을 발라내고 있었습니다. 바다매기는 하나같이 플래스틱통에 빨판을 딱 붙이고 꽈리를 틀고 있더군요. 입이 무척 컸습니다. 가끔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크기의 입을 보곤 합니다. 입이 큰 사람을 보면 감정이 흐트러집니다. 큰 입에서 나올 커다란 목소리가 두렵기도 하고, 입을 통해 들고나는 음식물의 양을 작은 입으로는 감당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방파제 옆에 몰이란 해초가 자라고 있다. 처음엔 기름띠인 줄 착각했다.

 

방파제 위를 걸었습니다. 바다 쪽으로 등대가 서있습니다. 배 한 척이 포구로 들어옵니다.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방파제 아래 기름띠 같은 게 보였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기름띠가 아니라 몰이라는 해초였습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날아다녔습니다. 일행은 방파제를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대구탕을 4인분을 주문했습니다. 일인분에 1만5천 원.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워낙 고가의 생선이라서 그런 가 봅니다. 주인 말로는 4만 원짜리 대구 한 마리로 탕 4그릇이 나온다고 합니다.

 

일행 중 한사람은 채식주의자인 데다가 전날 과음으로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생선을 안 먹는다고 합니다. 독특한 식습관입니다. 고기와 생선을 거부하는 모진 마음과 인내심, 그리고 체력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런 사람이 화를 내거나, 앙심을 품으면 보통 사람들 서너 명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대구탕이 나왔습니다. 하얀 빛의 대구 살이 우유 빛의 국물에 담겨있습니다. 그 위에 몰이라는 해초를 살짝 덮었습니다. 침샘을 자극합니다. 밑반찬도 깔끔했습니다. 건새우, 대구알무침, 마늘쫑, 김치 등이 나왔습니다. 탕 국물도 맛있고, 살도 부드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치 아기 궁둥이 같았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처녀젖가슴이라고나 할까요.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바다메기를 손질하고 있다.

 

시인이 위의 단어를 구사하면 고상하게 받아들이고, 이런 여행기에 쓰면 야하다고 볼 것입니다. 쓰고 싶은 단어를 마음대로 못 쓰는 윤리 의식과 체면으로부터 떳떳해지고 싶습니다.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는 배짱처럼 말입니다. 그게 잘 안됩니다. 그런데 처녀 젖가슴이 정말 대구 살처럼 보드라운지 그것도 의문입니다.

 

대구탕 맛이 좋고, 돈도 아깝다는 생각에 그릇 바닥까지 싹싹 훑었습니다. 각자 음식 값을 지불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식당여자의 친절과 아름다운 미소가 뒷맛을 더욱 좋게 해주었습니다. 전날 주독이 확 풀리고 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더군요.

 

일행 중 한 사람이 부모님에게 드린다며 대구 한 마리를 사 머리에 이고 차로 갔습니다. 그 는 물건을 머리에 이는 습관이 있나 봅니다. 지난해 가을, 순천 허수아비축제마당에서도 늙은 호박을 사서 머리에 이었습니다. 참으로 토속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침 당시 사진이 있군요. 사심 없이 올려봅니다.(글 끝에 있습니다)

 

일행은 대구철이 끝나기 전 반드시 다시 외포를 찾아 환성적인 대구탕 맛을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외포 입구에서 좌회전 해 거제도 시내를 통과, 1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전망 좋은 언덕에 잠시 차를 세우고 일행은 차밖으로 나와 눈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향기입니까. 습기가 많은 날 냄새가 잘 맡아지지 않습니까. 촉촉히 젖은 나무들로부터 향기가 배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일행은 향기에 취한 채 승용차를 타고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거제는 해안도로 곳곳에 이처럼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있다.

 

잠시 후 장승포 표지판이 나왔습니다. 수년 전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대우조선 파업 당시 이곳에 남아서 노조원들을 설득, 파업을 풀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그 장승포입니다. 평범한 포구였습니다. 장승포를 지나 해금강으로 향했습니다. 채식주의자가 해금강이 보고 싶다고 해 그리로 차를 몰았습니다.

 

표지판에 거제포로수용소라는 단어를 보자 은근히 긴장이 됐습니다. 포로수용소를 제주도에서도 봤습니다. 제주도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가 어느 순간 음산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학살 현장이란 푯말을 보고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낮이었는데도 그 부근은 어딘가 음침했습니다. 왜 그 길로 빠졌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6 25 당시 거제에 인민군 15만, 중공군 2만, 여자 포로와 의용군 3천 명 등 최대 17만 3천 명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몽돌. 거제 해수욕장들은 모래 대신 이런 몽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동이란 곳에 들렀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모래가 아니고 작약돌만 있었습니다. 몽돌이라고 합니다. 검고 회색의 돌들이 납작하고 동글동글했습니다. 만져보니 부드러웠습니다. 사람들은 돌들을 손에 하나씩 쥐고 바닷가로 가더니만 냅다 바다를 향해 던집니다. 바다에서는 강처럼 물 위를 튕기면서 날아가지 못합니다.

 

학동해수욕장을 나와 산을 오르락 내리락거리며 달렸습니다. 창밖의 풍경은 싱싱한 종려나무와 황톳빛 밭과 진주같은 바다입니다.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일행 중 한사람이 “제주도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동감이었습니다. 제주도는 날씨가 나쁘면 육지로 나가지 못한다는 강박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조여옵니다. 거제도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경치는 제주도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학동몽돌해수욕장은 모래사장 대신 몽돌이란 작약돌들이 깔려 있다.

 

해금강으로 향하는 산길 입구 오른편에 작고 예쁜 모텔이 숲 사이로 보였습니다. 꼭 한 번 그곳에서 숙박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습니다. 옆의 일행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언덕을 올라서자 사방이 트이고 오른편에 폐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폐교 아래로 해금강이 보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한 젊은이가 수년 전 바로 이곳에서 방황했다고 합니다. 당시 폐교는 비어있어 젊은이는 폐교를 사들여 사업을 벌일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폐교가 정상이었을 때 그 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해금강을 매일 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폐교는 현재 레스토랑으로 바뀌었습니다.

 

폐교를 지나 산 밑으로 난 길을 따라 해금강으로 나아갔습니다. 해금강, 자연의 위대함을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거대한 암석이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겨 조각나고, 주름 잡히고, 변색이 되었습니다. 머리를 쳐 박고 자세히 암석을 들여다보니 그 색깔이 수십 가지입니다. 보라색도 있었습니다. 보라색 암석. 보석보다 멋지더군요.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해금강의 연인들.

 

높다란 암벽 위에 올라 바다 바람을 잠시 맞았습니다. 관광객들이 암석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 다닙니다. 40대의 한 부부가 바위 끝에 서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 젊은 연인이 앉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남자가 외국인이었습니다. 외국인은 일행이 자리를 뜰 때까지 한국 애인을 오른손으로 꼬옥 껴안고 있었습니다.

 

해금강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별장이 두 채 있습니다. 마치 외국 영화에 나오는 고급스런 별장 같았습니다. 대형 유리창이 있는 일층은 거실이고, 이층은 침실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거실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먹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랑을 나누고, 2층에서 잠을 자겠구나, 상상해봤습니다.

 

해금강 바위를 내려온 일행은 비탈진 계단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도로 위로 올라왔습니다. 가볍게 땀이 났습니다. 시간이 오후 4시가 다됐습니다. 돌아갈 시간입니다. 해안도로를 빠져나와 시내 외곽을 통과해 통영 IC로 나와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오던 길 역순으로 달렸습니다.

 

하동 악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조금 넘었습니다. 이 날 주행거리가 총 350여km는 됐습니다. 하루 종일 차를 타고 긴 거리를 여행했지만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풍경이 좋았고, 음식도 훌륭했고, 날씨도 적당했기 때문입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강원도의 해금강 못지 않다고 해 붙인 이름이다. 원래는 갈도였다.

 

거제도는 도로 곳곳에 자그만 포구들이 있습니다. 해수욕장도 많이 있습니다. 명사도 있습니다. 북한의 명사십리 못지않게 아름답기 때문에 붙인 지명이겠지요.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리아스식 해안이란 게 이런 건가요. 깎아지른 벼랑들이 들어갔다 나오는 곳마다 판타스틱한 해안을 형성해놓았습니다. 파도가 바위를 치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것도 보았고, 길가의 호랑가시나무도 보았고, 바다를 보았고, 바다를 비추는 태양도 보았습니다. 산 중턱에 걸쳐있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도 보았고, 수평선도 보았고, 배도 보았고, 갈매기도 보았고, 등대도 보았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외포 갈매기.

 

이 날 여행 멤버도 좋았습니다. 이날의 여행은 모두의 가슴에 소중하고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아쉬움이라면 거대한 조선 현장을 못 본 것입니다. 다음에 거제에 가면 조선소를 꼭 보고,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해금강 등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긋하게 감상해야겠습니다.

 

아! 잊은 게 있네요. 외포에서 사가지고 온 그 대구 말입니다. 그날 저녁 식탁에 바로 올렸습니다. 대구는 신선할 때 먹어야 한다고 해서입니다. 덕분에 점심, 저녁 대구를 실컷 먹었습니다. 거제도 여행은 그 목적을 확실히 이룬 셈입니다.

 

 

ⓒ www.jadam.kr 2006-01-16 [ 오현주 ] 역시 호박을 머리에 이었습니다.

 

오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01.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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