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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오지마을에서 공동체문화를 꿈꾸다.농촌다움과 농업다움의 상생을 위한 대안문화 찾기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한밭골의 안녕을 기원하는 까마귀 솟대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 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이 백두대간이다. 이에 비해 낙동정맥은 태백산 피재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안 지방의 담장 역할을 한다.

이 낙동정맥과 태백산맥을 따라 이어진 산맥이 백암산을 거치면서 독경산을 이루는데 이 깊은 산속 자락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서면 영덕군 창수면 너른 분지의 옛 마을이 커다란 밭들을 하나로 품은 한밭골과 만나게 된다. 인근의 제일 가까운 마을인 인천리와 갈천리에서도 족히 4~5Km를 더 들어가서야 만날 수 있는 골짜기가 한밭골이다.

이곳에는 10여개의 작은 교량들이 줄지어 있기 때문에 큰비만 오면 넘치는 오지이다. 이런 한밭골과 인연은 2004년 초, 하늘 그리운 사람들 카페를 통해 자율네트워크형 마을공동체로 뜻을 모으던 중 이웃마을 이장으로부터 이곳을 소개받아 많은 분들과 교류를 나누면서 시작되었다.

과거 10여 가구가 살던 이곳은 종중 땅으로 독경산을 중심으로 나뭇잎이 머금은 물줄기가 동쪽으로 떨어지는 거의 모든 곳이 포함된다. 지금은 초라한 농가 세 채와 조그만 재실 한 채만이 남아 고단했던 산속생활의 이면을 보여준다.

기존 농부의 과도한 시설투자 욕심으로 급기야 망하게 된 한밭골의 황폐한 땅과 주변시설을 대하면서 도시민들이 편안하게 다녀갈 수 있는 쉼터를 생각하게 되어, 2004년 한 해 동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구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행동으로 옮겼다. 그와는 별개로 이 땅의 주인인 종중 어른들께는 귀농과 공동체에 대한 꿈을 현실화 시키겠다는 의지표현의 한 방편으로 작은 목소리를 담아 제안했다.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2004년 하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울릉도 벌개미취를 풍경농업의 일환으로 심었던 것이 꽃밭을 이루었다.

제안으로는 "한밭골을 장기적으로 임대함과 규모화 된 관행적인 영농방식이 아닌 친환경적인 농업을 하고 한 가정의 귀농이 아닌, 농촌마을의 대안(Model)을 제시하기 위한 두세 가정이 함께 마을을 이루어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휴식처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어찌됐든 1년 동안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마을을 복구하고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농작물을 키워내고 경관도 살리면서 토속적인 채소로 쓰일 수 있는 풍경작물도 실험적으로 재배했다. 초기에는 우리가족의 귀농지로 생각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누구든 초기 한밭골에 들어와 사는 귀농자에게 모든 관리를 맡기기로 했다. 한곳에 집단으로 모여 니것 내것 없는 공동체가 아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삶의 문화로 연결지어지는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모색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귀농초기 누구든 낮선 곳에서의 귀농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도록하는 계기로 1년 동안만 한시적으로 시행했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집수리 자재, 농기계 등을 집에서 옮겨갔고 전기료와 전화료도 해결해 주었다.

초창기 서울과 영덕을 오가며 여렵사리 찾아가 폐비닐들을 제거하고 쉴틈없이 농작물을 보살폈지만 거리가 먼 관계로 매주말 찾아가던 햇수는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자연 줄어들었다. 자주 찾아가지 못하면서 그곳에 정주하는 사람들과 나의 마음은 달랐는가 보다.

다만 공동체를 표방한 집단적인 생활공동체가 아니었기에 영덕에 새로운 관계의 망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으로 부담없이 도움을 준 것인데 차츰 몸도 마음도 멀어져 갔다. 하지만 이곳을 거쳐간 분들이 옛 정을 잊지않고 4년동안 발효시킨 약주를 준비하여 인근에 있는 칠보산 자락으로 초대해 주어 오늘 이곳 한밭골도 들러보게 된 것이다.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하늘 그리운 사람들의 조형주(바위섬님)과 함께했던 김영님이 농작물을 키워내는 밭에서 공생농업에 대하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년전 한밭골의 폐가된 농가와 농토를 복구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감회가 깊지만 지금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완전한 공동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가 소원하게 생각했던 작은 부분들을 찾아 끊임없이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시간이 되면 들러본다.

앞으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개인의 자율과 공동체의 적정한 어울림이 만들어지는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생각한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분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기대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간 오지의 농촌에서 문화적인 마을공동체를 엮어갈 꿈을 꾸면서 말이다.

너른 한밭골에는 아랫마을 사람들이 대량으로 심어놓은 호박과 무우, 배추가 제초제와 농약으로 뒤범벅되어 지어지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집뒤 한쪽으로는 정직한 농부로 살기위한 바위섬님의 농토를 보면서 희망도 본다. 천지기운을 받아 자유롭게 성장하고 있는 다품종들의 작물이 잘 추수되어 우리들의 밥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오후2시쯤 한밭에 도착하니 너무도 조용하다. 집 앞으로는 텐트를 말리고 있던 골장이 넌지시 바라다 보길래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는 곧장 바위섬님의 토담집에 들어서니 너무도 곤한 낮잠에 빠져있다. 조심스럽게 우리가 왔음을 알리고 함께 밭으로 나갔다. 함께했던 지인과 밭에서 작물의 생육상태와 농사방법, 제초와 병충해 방재 등에 대한 이야기와 수확후의 유통문제에 이르기까지 고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비닐만을 사용하여 자연적인 농사를 짓고 있는 고추는 파릇하게 생기가 넘친다.

초창기 지인들과 심어놓은 울릉도 벌개미취는 어느새 수많은 꽃망울을 터뜨려 식물원이나 관광농원에 와있는 착각을 일으켰다. 깨끗하게 자란 고추며, 고구마, 참깨와 들깨, 여러 종류의 콩들이 싱싱하게 커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직한 농심(農心)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일이 상황설명을 마친 조형주(일명 바위섬)님이 상기된 표정으로 현재의 마음을 털어 놓았다. “뜻이 맞는 분들과 본격적으로 자연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농사를 힘들게 생각하고 기피했는데 이제는 농사가 재미있고 무슨 농작물을 심고 가꾸든 자신 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 얘기 저 얘기를 마치고는 가다가 밭에 지천으로 널린 무우를 뽑아가란다. 장사꾼이 사놓은 것인데 무슨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다 버리고 갔단다. 오면서 차에 한가득 무우를 싣고 고개 너머에 있는 갈천마을로 향했다. 굽이굽이 돌아 갈천마을에 다다르니 2년 전 귀농하여 기존의 마을 분들과 함께 열심히 담배농사와 고추농사를 짓는 부부가 각각 집과 고추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억척스럽게 대단위로 짓는 이 부부의 농사는 벌써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었다.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한밭골 후미진 뒷뜰에는 다품종의 농작물이 풀과 어울려 자라고 있었다.

고추밭에서 일하고 있는 바깥주인과 담배농작물의 수매를 앞두고 이웃주민들과 열심히 담뱃잎을 가려내고 있는 안주인과 인사를 하고는 바쁘고 거친 삶을 잠시 뒤로 하고 술 한 잔을 나누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는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시골에 사는 즐거움 보다는 고달픈 기색이 역력했다. 두부부의 배웅을 받는 자리에서 앞으로 정확히 7년 후에는 좀더 여유로운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지리산 쪽으로 제2의 귀농을 하고 싶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동안 살이 많이 빠지고 얼굴도 검게 그을린 김덕만(41세)님과 여전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그네를 챙겨주고 웃어주는 그의 아내가 영원히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굽이굽이 이어진 창수령을 넘어 새로운 만남을 위해 길을 재촉했다.

류기석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09.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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