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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개된 제 이력 중에 틀린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계적인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틀렸습니다.(웃음) 저는 내수용 사진가입니다. 제 사진을 바깥으로 보내려고 하는 의도도 없고, 스스로 내수용 사진가라고 생각하고 그렇게만 공급하려고 하는데 세계적이라고 하니 당황스럽습니다. 그런데 제가 세계적이기는 한 모양입니다.(웃음) 최근 1~2년 사이 세 개 국가에서 개인전을 하자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내수용 사진작가다라고 하며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사실 작가로서 그런 걸 슬쩍 거절하는 맛도 있는 거거든요.(웃음) 실제로 작가들은 이력서에 한 줄을 더 보태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력서가 몇 줄인지, 몇 장인지로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도 허영심이 있었다면, 거절하지 않고 외국에서 개인전을 해서 이력서에 넣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걸 보고 대단하다 세계적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력서에는 몇 번 했는가는 써있겠지만, 어떻게 했는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는 그런 개인전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후배들에게 하는 이야기 중에 개인전은 차고 넘쳐서 하는 것이지, 없는 독을 기울여서 바닥을 긁어 퍼낸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 놓고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전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창조가 철철 넘쳐서 흘러야 진정한 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기록매체
사진은 1893년 프랑스에서 다게르에 의해 이 세상에 정식으로 발명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사진을 발명하려고 했던 이유는 초상화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부르주아지들의 상징은 초상화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후, 중산층이 대두되면서 모두 초상화를 걸어놓으려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면 모델을 놓고 일주일은 그려야 합니다. 결국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빨리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발명한 것이 사진입니다.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는 몇 백명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사진이 크지도 않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 처럼 딱 한 장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카메라, 렌즈로 발전하면서 1880년에 코닥이라는 회사에서 필름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 때 본격적으로 복제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림을 쉽게 그리기 위해 만들었던 사진이 복제가 되기 시작하면서, 사진의 본질이 뒤늦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어떤 인쇄매체보다도 빠르게 아주 정확하게 무엇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도 무엇을 똑같이 기록할 수 있지만 기간이 너무 길어집니다. 그런데 사진은 순간에 아주 상세한 것도 똑같이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한히 복제가 가능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기록과 재현이 엄청나게 빨라졌습니다. '밥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는 사진을 이야기 할 때 ‘밥사진’을 하자고 합니다. 쌀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습니다. 술, 떡, 뻥튀기, 여러 가지 과자들도 해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쌀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밥을 하는 것입니다. 밥을 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떡도 해먹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주식主食 부터 먼저 하자는 것입니다. 밥으로서, 주식으로서의 사진은 기록입니다. 사진으로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거나, 추상적인 것도 표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쌀로 뻥튀기나 술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밥으로서의 사진은 스트레이트 사진을 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이트 사진이라는 것은 무엇을 찍고 만드는데, 작위적인 기교를 내포시키지 않고, 똑바로, 정직하게 찍는 것입니다. 사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스트레이트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이라는 것은 사실성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록사진이라고 해서 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때와 장소 주제는 사진만으로는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아무 사진이나 찍어놓고 언제, 어디라고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를 찍었는지, 무엇을 찍었는지 구체적인 현장의 기록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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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발명하고 나서 처음 신문에 쓰이기 시작했을 때는 신문에 사진을 인쇄할 방법이 없어서 사진을 찍어오면 화가가 사진을 목판으로 만들어 인쇄를 했습니다. 그 당시 사진기자의 조건은 신체 강건하고 아주 튼튼한 사람이었습니다. 들고 나가야 할 카메라가 60Kg 정도여서 몸이 좋아야 사진기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지나 1930년에 라이카라는 소형 카메라가 나오면서 누구나 찍을 수 있게 되었고, 사진이 민주화 되었습니다. 물론 작기만 했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원시적인 카메라 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출현해서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술을 창조하고 실현했습니다. 그 사람의 동물적 감각과 굉장히 많은 훈련으로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거리와 노출을 맞추어 놓고 초인적인 인내로 기다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나타나면 탁 찍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동카메라가 나와서 거리, 노출 등을 모두 맞춰주니 누구나 손가락만 움직이면 결정적 순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디지털이라는 것은 필름도 필요 없고 현상소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라크에서 포로 학대 사진 찍은 것이 발표되어 말썽이 난 것, 우리나라에서 개똥녀가 화재가 된 것은 모두 디지털 때문입니다. 디지털이 아니라면 프로라도 그 순간을 잡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디카는 바로 확인도 가능하고 쉽기 때문에 바로 바로 찍고, 복제와 전파도 빠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두 손 놓고 걸어가면서 전자장치에 “예쁜 여자 찍어라.”, “멋진 풍경 찍어라” 하면 알아서 찍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이 사진을 찍기 때문에 모두가 사진가가 아닌, 사진가가 멸종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변화되는 사진문화
그러나 우리는 디지털을 바로 인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디지털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로 재현해야 합니다. 저장은 디지털로 하지만 최종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아날로그입니다. CD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열광을 했지만 조금 지나서는 LP소리, 아날로그 소리가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로 풀릴 때 100퍼센트 모두 전환되지 않기 때문에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사진도 그렇습니다. 디지털이 신기하고 아주 선명하긴 하지만 전문가적 입장에서 보면 초기 CD와 같습니다. 아날로그 보다 선명하긴 하지만 분위기가 소멸되어 있습니다. 사진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인화 방법은 은이 감광재료로 되어있는 전통방법입니다. 그런 사진은 깊이가 보이고, 느낌도 좋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사진은 아주 평면적이고 맹맹하고,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거부감이 들 정도의 선명함 때문에 저항감도 느껴집니다. 아직까지 아날로그로 100퍼센트 전환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아직까지 디지털 사진은 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사진을 쓸모 있게 만들려면 포토샵으로 한 시간 이상 투자해야 쓸만해 집니다. 찍을 때는 간단해도 후에 사용하려고 할 때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디지털 사진은 땀방울 하나, 머리카락 한 올을 선명하게 모두 잡으려는 의도로 개발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UCC시대가 오면서 이런 의도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선명함은 상관없고, 내용만 화끈하면 된다는, 내용만 어필하는 것이 있다면 샤프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확실히 현실의 사건을 따라가는데 효과적입니다. 다만 이런 추세로 가면 사진의 미학이나 세련된 톤은 모두 없어지고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그런 혼란스러운 시대를 거치고 나면, 또 어떤 철학이 정립되어 세련된 시대로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에 여러분이 하실 일은 디카 신형만 사시면 되는 것이고..(웃음) 다만, 디지털 카메라가 아무리 확산되더라도 필름 카메라는 것은 절대 사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름도 제 생각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디지털이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니까 값이 올라가게 될 겁니다. 그러나, 본질은 변치 않는다
사진이란 무엇인가는 앞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무엇보다 사실적으로 빨리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사진입니다. 그런데 사진이라고 했을 때, 물질적으로 인화지 위에 인화된 것을 다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는 그릇입니다.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습니다. 커피잔에는 물도, 약도, 술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커피잔에 담겼다고 모두 커피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찍은 사진은 그림일까요 사진일까요 정확히 말하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찍은 사진’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 내용은 피카소의 것입니다. 사진작가는 그것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용을 보고 사진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야 합니다. 사진 전람회 열심히 가시는데, 지금 가장 기본적인 관점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기록적이고 스트레이트 한 것이면 사진이고, 뭔가 알 수 없다면 사진이긴 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진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차이는 굉장히 큰 것입니다. 사진도 저장만 해놓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기록사진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은 쌀로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밥이다. 사진으로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적인 사진이다. 밥 같은 사진이 사진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사진을 감상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본 강연 내용은 강운구 선생이 나눔문화포럼에서 발표한 것으로 발표자의 허락없이 무단으로 전제할 수 없습니다. 나눔 문화 : http://www.nanum.com
제공 : 나눔문화,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7.03.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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