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카페인 과다 복용을 경고하는 기사를 한 신문에서 읽었다. ‘하루에 커피를 4잔 이상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하루 3잔 정도는 마셔도 되는가’하는 생각을 한 사람이 필자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카페인의 유해성을 강조하려고 쓴 기사가 결과적으로 카페인을 습관처럼 마시는 사람에게 ‘면죄부’만 준 꼴이 된 것이다.

과연 커피 3잔과 4잔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기사는 카페인에 대한 개개인의 감수성을 무시했다. 인체 특성에 따라 커피 3잔에도 카페인 중독이 되는 사람이 있고, 5•6잔을 마셔도 괜찮은 사람도 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 넘쳐 나는 건강정보들은 종종 개인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맹목적인 숫자만 제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칼로리 계산에 따른 음식물 섭취 정보도 마찬가지다. 각종 칼로리 계산 책이 요즘 건강서적 베스트셀러를 장식하고 있는데, 사람을 생명체가 아니라 연비를 계산하는 자동차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 진다. 다이어트에 있어 핵심은 음식의 칼로리가 아니라 개인의 소화 능력이다. 오염식품의 차단을 통해 소화 흡수력을 높이면 자연스레 비만은 해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로리 책들은 불량식품마저도 칼로리 계산을 해서 먹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혈압이나 혈당, 간기능 등과 같이 병을 진단•치료하는 기준도 모두 수치화돼 있다. 그 숫자에 따라 약이 투여되고 치료가 시작된다. 그러나 혈압이나 혈당 등은 사람의 심리상태와 신체활동, 음식물 섭취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의사들은 이 점을 더 잘 알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치들이 매우 엄밀한 임상경험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인간을 통계 속에서만 바라보려는 한계점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이에 필자는 한 가지 중요한 제안을 한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변하는 수치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행동이 위축될 뿐이다. 그러나 몸에 해로운 음식과 습관을 피하고 꾸준히 운동하다 보면 혈압•혈당계를 끼고 살지 않아도 수치는 정상으로 수렴하게 된다. 설혹 혈압이나 혈당•간기능•비만 등의 수치가 정상을 벗어났더라도 섣불리 환자임을 선언하지 말고 건강습관부터 재정비할 것을 권한다.

출처 : 조선일보(손영기 한의원 원장)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9.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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