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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이 시대야말로 기존 농업의 틀로부터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www.jadam.kr 2003-09-04

한 농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토착미생물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며 의문이 나는 것들을 꼼꼼히 물어왔는데 그 목소리는 왠지 가냘픈 떨림으로 들려 왔다. 순간 눈물이 울컥 나올 것만 같아 대화를 잠시 멈춘 후에 얘기를 해야만 했다. 현농촌의 실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서인지 그 목소리의 떨림은 이제 마지막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좌절의 늪에서 버둥대는 한 인간의 몸짓으로 느껴진 것이다. 농토는 전부 은행에 저당잡혀 이미 내 땅이 아닌 들판에 서서 어떤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애쓰는 가냘픈 존재, 농민들이여 !

 

한국의 농촌, 아니 아시아의 농촌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농업은 있으나 농민은 외면당하고 농업경제는 있으나 농민경제는 실종된 듯하다. 경작지마저 도시인들의 손에 넘어가 자신의 토지에서 경작을 하는 농민의 수가 급격히 줄어간다.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를 하거나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빈번히 접하게 된다.

 

그전과 현재 농촌 실상이 크게 달라진 것이라면 바로 ‘희망의 상실’이다. 농가경제를 지탱할 만한 소득작목을 기대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미래의 희망을 상실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부채는 더욱 큰 부담이 된다.

 

한 해의 농사를 거두어들이고 곳간에 1년 먹을 양식을 쌓아두면 만사가 태평이었던 그 시대, 한겨울 양지 바른 토담밑에서 옹기종기 한담(閑談)을 나눌 수 있었던 정겨움, 불과 30년 전 농촌의 모습이다.

 

그러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때를 생각하며 오늘의 농촌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집집마다 농기계로 가득하고 온갖 가전제품이 들어와 있어 도시인의 소비수준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듯하나 먹을 양식만 있으면 느꼈던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현재 농촌의 문제는 엉켜진 실타래와 같이 상당한 복잡성을 띠고 있어 단편적인 해석이 불가하나 농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현재 농촌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과학농업’이 보급되기 시작한 지난 30여 년 동안, 변해 온 한국 농촌의 모습을 더듬어 가면서 현재 농촌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일지라도 구하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믿음으로 접근을 해 보자.

 

이 시대야말로 기존 농업의 틀로부터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농업 관련 조직이나 연구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신기술과 이론을 만들어 내기에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연구한 결과는 거의 예외없이 새로운 비용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로 귀결된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려면 기계나 새로운 자재를 구입하게 되어 투입비용은 계속 증가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연구 성과들은 ‘농민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차단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신기술을 받아들일수록 기술의 종속은 더욱 심화되고 영농자재의 자급은 불가능해진다.

 

예전에 농민은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주체적 권위를 갖고 있었으나 요즘 농민의 대부분은 단순 노동자화되어 있다. 농업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구입하고 자신은 그저 노동을 제공할 뿐이다. 농업이 인스턴트화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하며 짓는 농사가 아니라 따라가는 농사를 짓는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선진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투입비용을 확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따라서 농업이란 자연 속에서 영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력을 기반으로 추진하는 사업과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도움이 된다’, ‘가치가 있다’, ‘이렇게 하면 돈이 된다’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새로운 투입을 생각한다.

 

또한 그 새로운 투입이 농업의 ‘진보’라고 여긴다. 그런 소위 ‘진보’라는 것이 축적되면서 농업은 거대화되고 첨단화되었지만 반면에 농업의 자립성과 농업기술의 주체성은 더없이 손상되고 말았다.

 

또한 기대되었던 생산성 향상도 농산물 가격 폭락 등으로 의미를 잃었다. 선진농법의 적용으로 부농(富農)을 예견했던 전문가들의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농업경제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농산물 가격 하락을 예견하지 못했을까 농산물의 가격 하락으로 농민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더욱더 투자를 확대하나 그런 과정이 전면적으로 발생하는 까닭에 농산물 가격은 다시 떨어지고 만다.

 

농업기술 연구나 농업경제 연구의 어느 측면을 보나 진정으로 농민의 입장에서 실행된 연구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농민이 살려면 기존의 농업기술이나 농업정책 속에 가리워진 실체를 분명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것들 속에 농민은 없다고.

 

자연농업은 지금까지 타성으로 굳어져 왔던 농업인식의 틀에서의 새로운 전환을 촉구한다. 자연농업은 일체무용(一切無用)의 입장 즉, “이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접근방법으로 농업에 군더더기 같이 붙어 있는 불필요한 기술과 이론, 그리고 비용과 노동력을 과감히 잘라 버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한 수십 년의 노력 과정을 통해서 현재의 자연농업이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연농업을 말하면서 자립성과 주체성을 자주 거론한다.

 

농업에 있어서 자립성과 주체성을 말하면 ‘50년대 식의 발상’이라고 외면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전처럼 큰 소리로 비판하지는 못하리라.

 

진정으로 농민이 살려면 농업에 있어서 자립도를 최대한 강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자립도에 비중을 두다 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통념도 버려야 한다.

 

자립성과 생산성은 양바퀴와 같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한 방향을 가는 동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경제가 거의 모든 원자재를 수입하여 만들어 내는 수출중심의 경제로 세계경제 흐름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농업 또한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농촌경제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끌어들이는 투입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최선의 노력으로 투입을 줄여야 한다.

 

투입을 조장하는 이면에는 ‘효율성 향상’이라는 그럴 듯한 논리가 있겠지만 현 농촌의 실상을 보건대 그 논리는 상술에 불과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자연농업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최소한의 기계화와 설비화, 영농자재에 있어서는 완전한 자급을 추구한다. 손수 자재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이 정신적인 측면에서 ‘농업의 농업다운 회복’을 만들어 내지만 더 나아가 생산성이 높은 농업을 실현하는 길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무엇이 필요없는가’,‘비용을 줄일 곳은 없는가’로부터 시작해 조금은 극단적으로 ‘그것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가’까지 농업의 주변을 냉철한 관점으로 다시 살펴야 한다.

 

비슷한 평수의 영농규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서 오로지 ‘세레스(농업용 자동차)’한 대로 필요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농업용 차량 1대와 짐차 1대, 자가용 1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또한 각종 농기계로 가득한 엄청난 크기의 창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한면 정말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경운기 한 대만을 가지고 충분히 농사를 짓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있다.

 

화려한 씀씀이를 가진 농민이 있는가 하면 다방에서 커피 한 잔 먹는 것까지 안절부절못하는 농민이 있다.

 

자연농업인들이여!

 

현농업의 해결점은 나 자신부터 문제 삼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히 명심하기 바란다. 나 자신부터 과욕과 허세로부터 벗어난다면 분명히 농촌은 아직 희망적이다.

 

조한규 명예회장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9.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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