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發 금융위기설이 세계경제에 다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연초 영국의 급진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경제보고서가 화제다. 영국정부의 싱크탱크로 활동하는 신경제학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주빌리연구소가 내놓은 이 보고서는 미국과 영국 주도로 이뤄진 금융 세계화(Globalisation)의 추진 배경과, 수혜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국제 금융계의 메커니즘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 10년간 호황을 누렸던 미국경제가 최근 달러화와 주가폭락으로 침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당연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세계화의 後폭풍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에 미치게 될 여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도 돋보인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발췌, 게재한다.<편집자주>

금융 세계화의 숨은 배경은 미국의 엄청난 누적적자

금융 ‘세계화’(Globalisa tion)의 배후에 존재하는 힘은 1960년대 이후 늘어나고 있는 미국의 엄청난 적자(deficit)다. 미 의회와 영국의회는 미국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제금융의 자유화, 즉 세계화를 추진해 왔다.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동안 세계화라는 현상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에 주로 집중되어 왔다. 예컨대 1988년 월터 리스턴(Walter Wriston·前시티뱅크 CEO)은 ‘포린 어페어즈’지 기고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는 급성장하는 국제 금융시스템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의 새로운 국제 금융제도는 이전의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가나 경제학자, 중앙은행가들, 또는 재무관료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주요 국제회의가 마스터플랜을 낸 것도 아니다. 새로운 국제 금융시스템은 테크놀로지에 의해 건설되었고… 지구를 연결시키는 원거리 통신과 컴퓨터를 통해 민간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반(反)세계화론자들을 비롯한 다른 한편에서는 리스턴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세계화는 시장확대에 골몰하고 기업이익을 채우려는 공격적인 거대기업들에 의해 더욱 촉진되어 왔다는 강한 견해를 유지해 왔다(‘기업 세계화’).

우리는 금융 세계화 이면의 힘과 관련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오히려 우리는 민주적 정부들과 이들 나라의 의회지도자들이 금융 세계화를 이끈 실질적인 추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1994년 에릭 헬라이너(Eric Helleiner ·캐나다의 경제학자)가 그의 저서에서 주장했듯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이 1960, 7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온 미국의 무역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세계화’ 프로젝트를 착수했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자본의 이동을 막는 법적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적인 결정들을 이끌어 왔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메워져야 했고, 미국은 어떠한 불쾌한 조정이나 해외 채권국의 정책적 자율성도 훼손하지 않은 채 부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영국 정부는 런던에 있는 ‘국적 없는’ 유로달러시장을 통해 미국의 적자를 메워주는 브로커 역할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시장은 두 개의 세계 최강국 의회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헬라이너는 ‘1960년대 후반 첫번째 달러화 폭락이래 미국 정부는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달러들로 자국의 대외적자를 메워 주도록 설득함으로써 적절한 조절 수단을 계속 미뤄왔다.…1970, 80년대에 걸쳐 행해왔던 접근법을 통해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은 보다 자유로운 국제 금융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이것은 점증하는 대외적 긴장에 직면한 미국이 자국의 정책적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다’고 주장했다.

유로달러시장의 출현은 1960년대의 자본 통제를 제거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헬라이너는 ‘선진 산업국가들은 브레튼우즈에서 논의된 이후 자본의 이동을 경계해 왔다. 불안정한 투기자본의 이동이 그들의 정책적 자율성을 제약하고 안정적인 환율과 자유로운 무역관계를 바탕으로 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불안정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자본 통제의 제거는 미국의 적자가 급증하는 끔찍한 계기를 맞으면서 미국과 영국에 의해 이뤄졌다<표1 참조>. 이것이 바로 ‘세계화’ 과정의 본질이다. 오늘날 미국 적자는 연중 매일 40억달러에 이르는 해외 저축고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

최고의 채무국,그러나 광란의 소비

미국은 1944년 브레튼우즈협상 과정에서는 다른 서방국가들이 전후 경제질서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새로운 질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UN에 의해 다음의 목표를 위해 출범했다.1920년대와 30년대의 자본자유화로 야기된 불균형과 무질서를 예방하고 제한하기 위해

▷자본 이동을 제한하는 수단을 통해 각 민족국가들의 정책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해

▷‘제국주의적인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영국의 보호주의적인 정책에 대항하는 것을 포함한 자유무역을 제고하기 위해

브레튼우즈협상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로마켓은 민족국가 간의 통화 제한을 무시하는 첫번째 시도였다. 유로마켓은 미국으로 하여금 해외 자본시장으로부터 추가적인 금융을 동원할 수 있게 기능했다. 유로달러시장의 존재는 점차 모든 주요 서방국들과 대부분의 개도국 정부들에 의해 자본 제약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 이는 결국 글로벌 경제에서의 금융자본의 역할이 크게 팽창하는 기초가 됐다. 그리고 그 결과 더욱 확대된 무역 자유화가 더욱 확대됐다.

미 의회에 따르면 1970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 거래의 90%는 무역을 통해 이뤄졌고 자본 이동에 따른 거래는 10%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국제무역의 엄청난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 비율이 완전히 역전됐다. 국제거래의 90%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 파는 무역과는 무관한 금융 거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거래의 대부분은 차관이나 초단기성 주식, 채권, 파생금융상품 그리고 기타 투기적 금융, 도박과 투기 등의 형태로 이뤄져 왔다.

세계적인 컨설턴트사인 맥킨지는 2000년까지 전체 금융 주식이 전세계적으로 53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평가했다.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총생산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달리 말해 OECD 국가들의 총생산액의 3배에 달하는 액수가 국제 채권자들과 금융인들의 비생산적인 대부와 투기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관련해 맥도널드나 나이키와 같은 회사들을 비난하지만, 적어도 그 회사들은 실제적인 상품들을 만들어낸다.

비록 그 생산물들이 참기 어려운 방법으로 만들어진 역겨운 햄버거와 입기 꺼려지는 운동복일지라도…. 은행과 금융투자가들은 대부·도박·투기 등 가장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금융 자유화 덕분으로 이런 기관들은 생산적인 경제로부터 이탈해 돈 놓고 돈 버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이렇게 초단기적이고 비생산적인 자금의 흐름은 국제 금융시스템의 불균형과 불안과 주기적인 위기를 초래했고, 그것은 개도국이나 신흥시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 정부가 정책적 자율성을 상실해감에 따라 이러한 불균형은 1920년대식 ‘세계화’ 시대에 각국이 경험한 국제적 긴장을 유도했다.

미국의경제운용 학교에서 다시 배워야

대학교수들과 경제전문가 그리고 여론은 미국 같은 부자 나라의 누적된 적자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에 대해서는 매우 혹독한 잣대를 들이댄다. 부유한 나라들은 경제를 운영하는 데 분별 있고 효율적이고 유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들의 사치스럽고 높은 생활 수준에 걸맞은 것으로 치부된다. 반면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재정을 운용하는 데 무능하고 부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빈국들의 엄청난 부채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운동경기에 출전한 어린이들처럼 가난한 나라들은 그들의 정책적 자율성을 희생해야 되고, 부유한 채권국들이 제공한 사소한 은전이 가치 있는 것처럼 고난도의 묘기를 선보여야 한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세계의 부유한 나라들의 엄청난 대외부채는, 아프리카의 베냉 같은 나라의 외채가 점심식사때 떨어진 빵부스러기로 여겨질 만큼,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3억명의 인구가 2조2,000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데 이는 전체 개도국 50억명의 인구가 지고 있는 2조5,000억달러의 대외부채와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미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이것은 미국 국민총생산(GDP)의 4분의 1에 해당해 대부분 개도국들의 부채수준에 비해 낮은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표2>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미국의 총 대외부채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채액을 모두 합친 것의 10배를 초과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이 왜 이토록 많은 빚을 지게 됐을까. 간단히 말해 미국인들은 그동안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들은 무분별한 구매력으로 수출로 벌어들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입품을 사들여 빚잔치를 해왔다.

미국 사람들은 그동안 한국의 카메라나 일본의 자동차와 같은 아시아의 값싼 물건들에 푹 빠져 있었다. 반면 많은 물건을 수입해 왔지만 상대국에 수출할 만한 매력적인 물건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2001년 미국의 전체 수출액은 수입액의 절반에 그쳤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인들은 지속적이고 의심할 바 없이 즐거운 소비의 대축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을 계속 소비해 왔다.

미국인들의 탐욕적 소비는 경상수지 적자를 야기했다. 그것은 상품과 서비스의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와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무역외수지, 그리고 외채 이자수지를 모두 반영한 것이다.

미국은 현재 역사 이래 최대의 경상수지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연중 적자폭은 4,450억달러로 GDP의 4%를 웃돈다. 이같은 적자액은 근년에 들어 매년 50% 이상씩 증가하는 추세다.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이같은 적자폭이 계속 증가해 2006년에는 7,3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았다(‘파이낸셜타임스’지 2월27일자).

IMF에 따르면 미국의 이러한 적자에 대한 보전액은 과거 20년 동안 전세계 저축고의 2.5%에 불과했던 것이 7.5%까지 상승했다.

미국은 가장 큰 범죄자라고 할 수 있지만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하는 유일한 나라는 아니다. 2000년 영국(250억달러)·호주(150억달러)·독일(190억달러)·스페인(170억달러) 등도 세계 각국의 저축고를 축냈다. 브라질(250억달러)·아르헨티나(90억달러)·멕시코(180억달러)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몇몇 나라들도 세계 저축고의 상당부분을 잠식했다.

출처 : 월간중앙 김홍균 기자(redkim@joongang.co.kr)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9.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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