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몸무게가 클수록 새끼를 적게 낳는다. 인간이 자손을 적게 낳는 것은 에너지소비가 30톤의 킹콩에 맞먹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화 킹콩(1976)에서 킹콩의 손에 올려진 여주인공.

최근 TV 드라마에서는 복고가 유행이다. 이곳저곳에서 검정색 교복과 나팔바지를 입은 탤런트들이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부추기고 있다. 복고풍 드라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한 인기를 끌어왔다. 그런데 요즘의 복고풍 드라마는 예전과 다른 면을 하나 가지고 있다.

'똑 사세요'란 대사로 유명했던 한 드라마를 생각해보자. 5남매인지 6남매인지 좁은 방에 올망졸망 누워있던 아이들이 기억날 것이다. 반면 요즘 등장하는 옛날 가족은 매우 단출하다. 현대 핵가족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별다른 느낌 없이 받아들였을지 모르지만, 분명 예전엔 가족수가 많았고 지금은 적다.

지난 3월 28일자 '사이언스'에는 유럽의 인구가 2000년도를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부부들이 아이를 적게 가지고 또 늦은 나이에 출산하기 때문이었다. 왜 못살던 시절엔 그토록 아이를 많이 낳다가 살만해진 요즘 인구 감소 현상까지 생겨났을까. 최근 미국의 생태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단서를 에너지 소비와 출산율을 비교함으로써 밝혀냈다.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멜라니 모스 박사는 생태학 전문지인 '에콜로지 레터즈' 최신호에서 "사람의 출산율은 다른 포유동물들에서 나타나는 에너지 소비량과 생식 사이의 상관 관계를 따른다"고 주장했다. 동물 세계에서는 먹이에 대한 수요, 즉 에너지 소비가 커질수록 출산율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소비는 몸의 크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래서 몸집이 큰 동물들이 적은 수의 새끼를 낳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약 100킬로그램 정도인 암놈 고릴라는 3-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북미인은 몸무게 30톤의 킹콩?

반면 인간사회는 동물세계의 출산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정설이었다. 실제로 북미대륙의 평균적인 여성은 고릴라보다 훨씬 몸무게가 적지만, 자녀는 그보다 적은 2명 이하로 낳는다. 그렇지만 모스 박사는 인간의 에너지 소비를 계산해보면 인간 또한 동물 세계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스 박사 연구팀이 음식, 교통, 난방, 여가 등을 고려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적인 북미대륙 사람은 무려 1만1000와트나 소모한다. 이를 몸무게로 환산하면 킹콩 수준에 육박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모스 박사는 "북미인들의 에너지 소비량은 몸무게가 30톤이나 되는 영장류의 대사 작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소비량으로 계산한 몸무게를 볼 때 인간의 낮은 출산율이 설명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전세계 100개 국가들에 대해 출산율과 에너지 소비량을 조사했다. 또한 미국의 출산율과 에너지 소비량이 지난 150년 간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도 분석했다. 그 결과 출산율은 에너지 소비량의 증가와 함께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오늘날 인류는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자원을 누리고 있다. 에너지 소비가 늘어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다윈은 더 많은 자원을 획득한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다. 왜 인간사회에서는 늘어난 에너지가 자녀 출산에 이용되지 않는 것일까.

어떤 학자는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면서 더 적은 수의 자녀를 갖는 이러한 패러독스에 대해 선진국의 높은 생활비와 일상화된 경쟁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현대인들은 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결과 자녀를 여럿 낳기보다는 적은 수의 자녀가 풍족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나왔다. 어쩌면 우리는 예전에 유행했던 구호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제는 하나인가?

출처 : 매경이코노미 2003년 4월 25일자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10.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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