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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도님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막내인 정재명씨가 집에서 같이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본업이 바로 농업이다.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중ㆍ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대 대신에 3년 동안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군복무를 마쳤다. 현재, 매실농장 5000평과 복숭아농장 5000평을 부모님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24살의 젊은 농사꾼 정재명!!! 그를 만나면서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오전에는 대안학교에서 오후에는 마을에서 일을 하다.
정순도님은 아들 셋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다. 14살부터 오전에 대안학교를 마치고 오면 마을에 있는 독거노인들의 일을 돕게 했다. 독거노인들이 외양간에 있는 축분을 치우는 일은 힘이 들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것을 치워 직접 밭에까지 갖다 놓게 하였다고 한다. 처음엔 마을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지만, 아이들은 성실하게 그 일을 해 내었다. 정순도님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일을 하게 한 것은 바로 교육적인 측면에서였다.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아이들의 자립심과 자연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군복무를 농사를 지으며 마치다.
정재명씨는 농어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후계농업인/후계어업인 산업기능요원제도를 통해 농사를 지으면 3년을 복무했다. 그는 3년 동안 아버지를 통해 농사일을 배우고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자연농업을 늦게 배우신 아버지의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자신과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아버지는 무경운ㆍ무농약ㆍ무비료의 원칙하에 식물의 자생력을 키워 식물이 자라는 대로 농사를 짓는 반면, 자신은 계획 하에 원하는 대로 작물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현재 그는 200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취농창업후계농업인이다.(자세한 내용은 첨부 자료 참고) 아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할 때 반대는 안하셨는지요
정순도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데, 농업도 좋은 직업이고 아들이 농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반대는 안했습니다. 도시에서는 항상 긴장되고 꽉 짜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얼마나 많이 받겠어요. 시골은 다릅니다. 스스로 연구하여 자신의 농법을 개발하고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에는 현금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아들은 그 많은 직업 중에 농업을 택한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일하면 열 일꾼보다 낫습니다. 내 몸이 움직여야 할 곳에 아들이 알아서 해 줍니다. 마치 내 팔다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죠. 아들도 식물을 가꾸는 일에 큰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 택한 길이기 때문에 저는 먼저 한 선배로서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도만 해 주고 싶습니다.” 가족농 중심의 고품질 생산만이 살아남을 길.
앞으로 농촌에 극심한 인력 부족이 예상되기 때문에 가족농이 되어야 한다. 생산량 위주의 농사보다 적게 생산하더라도 질 높은 농사를 지어야 하며, 자연농업을 통한 생산과 직거래를 통한 판매까지 가족의 범주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어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적은 인력만으로 가능할 수 있는 농업만이 앞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재명씨는 현재 흙내농원을 부모님과 함께 관리하면서 1000평의 복숭아나무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토양관리, 전정, 나무 관리 등 모든 일을 해 나가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고 있는 중이다. 하동 자연농업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정기모임에 가고 싶지만, 또래의 젊은이들이 없어 참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흙내농원이 위치한 하동군 횡천면에도 농사를 짓는 친구들은 없다. 정재명씨와 같은 많은 젊은 농사꾼들이 앞으로 자연농업을 실천하며 그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길 바란다. 농업인력육성제도 및 정책 http://www.korea4-h.or.kr/admin/databank/pds/upfile/%C1%A4%C8%B2%B1%D9%B0%FA%C0%E5_1.hwp
손병홍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05.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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