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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輻共一穀(삼십복공일곡)이니 當其無(당기무)에 - 논밭에서 읽는 노자<11>그릇이 비어 있어서 쓸모가 있고 쓸모가 있어서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듯이, 사람도 쓸모가 있으려면 비어 있어야 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사회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다.

바퀴살 서른 개가 구멍 하나에 모인다. 그 ‘없음’에 수레의 쓸모가 있다.

질흙을 이겨 그릇을 만든다. 그 ‘없음’에 그릇의 쓸모가 있다.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든다. 그 ‘없음’에 방의 쓸모가 있다.

그런 까닭에 있어서 이롭고 없어서 쓸모가 있다.

三十輻共一穀(삼십복공일곡)이니 當其無(당기무)에 有車之用(유거지용)이요

挻値以爲器(선치이위기)니 當其無(당기무)에 有器之用(유기지용)이요

鑿戶유以爲室(착호유이위실)이니 當其無(당기무)에 有室之用(유실지용)이라.

故(고)로 有之以爲利(유지이위리)하고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이니라.

www.jadam.kr 2005-10-04 [ 유걸 ]

무엇이 있어서 살아가는 데 이로움을 주는데, 그것이 아무리 있어도 쓸 수가 없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바퀴살이 바퀴통에 모여 바퀴를 이룬다. 그런데 바퀴통이 비어 있지 않으면 바퀴살이 그 곳에 모일 수가 없고 바퀴살이 모이지 않으면 바퀴가 굴러갈 수가 없고 굴러가지 않는 바퀴가 무슨 이로움을 사람에게 주겠는가 그러니 바퀴가 있어서 이롭지만, 그 바퀴를 이롭게 쓸 수 있는 것은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여관에 방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방마다 손님이 들어 있으면 그 많은 방들이 나에게 쓸모가 없다. 돈이 있어도 빈방이 없으면 다른 여관을 알아봐야 한다. 지게질을 하려면 먼저 빈 지게를 지고 가야 한다. 무엇을 지고 갔다가도 그 지고 간 짐을 부린 다음에야 다른 짐을 질 수 있다.

콩이 가득 담겨 있는 소쿠리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지금 콩이 가득 담겨 있는 소쿠리는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있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비어 있었기에 콩을 담을 수 있었을 테니까.

배추를 심어 잘 자라고 있는 밭에 옥수수를 심을 수는 없다. 씨는 비어 있는 밭에 심는 것이다. 두 가지 이상 되는 작물을 한 밭에서 기르는 경우가 있지만 두 가지든 네 가지든 그것들 모두를 수용할 만한 여지(餘地)가 있어서 씨를 심는 것이다.

www.jadam.kr 2005-10-04 [ 유걸 ]

노자(老子)는 자연을 가장 높은 스승으로 모신 사람이었다(25장). 그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에서 자연의 이치를 읽었고 그것을 인간사회의 도리(道理)로 적용하여 가르쳤다. 그릇이 비어 있어서 쓸모가 있고 쓸모가 있어서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듯이, 사람도 쓸모가 있으려면 비어 있어야 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사회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다.

비어 있는 사람을 흔히 백수(白手)라고 한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괭이로 밭을 일구려고 해도 손이 먼저 비어 있지 않으면 괭이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백수(白手)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면서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괭이질을 해야 할 때에는 괭이를 잡을 수 있고 괭이질이 끝나면 곧 손을 비워 놓고 있다가 다음 일에 착수한다.

어제 먹은 밥이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위장을 채우고 있으면 오늘 밥을 먹을 수 없다. 오늘 내가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음은 어제 먹은 밥이 모두 소화되어 저 갈 곳으로 가고 위장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이 반찬이다.

www.jadam.kr 2005-10-04 [ 유걸 ]

마음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하여 선입견(先入見)을 가지고 있으면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 눈이 맑아야 대상이 밝게 보인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 이르기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말고 마음을 내라고 했다. 맑은 마음, 텅빈 마음으로 사랑하든지 미워하든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하라는 얘기다.

대지(大地)는 늘 가득 차 있으면서 또한 늘 그것을 비워서 농부로 하여금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게 한다. 곳간을 채우는 것만이 능사(能事)가 아니다. 그것을 먼저 비우지 않고서야 무엇을 거기에 채우랴 비움과 채움, 그것은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동체이면(同體二面)이다. 그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면서도 순서가 있다. 채운 다음에 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운 다음에 채우는 것이다.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들되 비어 있는 방을 먼저 만든 다음에 그 방에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사는 것이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자연은 어김없이 이 순서를 지키는데 사람만이 한사코 이 순서를 무시하여 스스로 고단한 세상을 만들고 그것으로 모자라 생태계까지 병들게 한다.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지만 알고보면 사람만한 헛똑똑이 없다.

이현주,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10.0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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