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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지 않았던 길은 있지만, 가지 못할 길이 있을까?
치악산 산꼭대기를 점령한 단풍이 산아래 마을을 호시탐탐 노리는 시월,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에 서른을 바치고 있는 농사꾼을 만났다. 우리나라 최초 인삼 농사 친환경인증(저농약)을 받은 임진수(36)씨. 선하디 선하게 생긴 얼굴, 안경너머의 눈은 장난기가 한껏 어린 천진한 아이의 눈을 닮았다.
임진수씨의 이력서를 들여다보면 온통 인삼뿐이다. 1996년에 충북대학교 농과대학 연초학과를 졸업한 뒤 증평인삼시험장, 투엠바이어연구소(여기서도 인삼 농사를 위한 미생물을 연구 했단다.)에서 직장생활을 한 뒤로 인삼을 직접 재배하는 길로 뛰어들었다.
인삼에 철학을 담고자
“처음엔 학교에서 배운 데로 농약을 치며” 인삼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친환경 인삼의 길로 인도하려고 그랬는지, “관행을 하면서 나는 잘 안됐어요. 다른 사람은 약을 치며 지상부를 잘 살리는 데 나는 안 돼요. 배운 데로 남들 하는 것처럼 똑같이 약을 쳤는데, 내 것은 죽어.” 관행으로 해도 죽고 병이 들어요. 똑같이 하면 안 되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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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농사를 아는 사람은 농약 덩어리라고 할 정도로 약을 많이 친다. 그 농약이 인삼도 사람도 아프게 한다. “농약이 내 몸에 받지 않아요. 물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쓰고 약을 쳐도 내 몸을 아프게 해요. 2002년도지. 약을 (인삼에) 쳐도 쳐도 병이 잘 잡히지를 않아요. 눈병이 심하게 오고.”
그때 이웃에 사는 선배의 소개로 자연농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자연농업연찬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듣고 나니 인삼도 무농약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연농업) 내게 딱 맞아요. 자연농업이 단순히 농사법만이 아니라 철학적인 것도 있어요. 농업에 철학을 접목시키는 게 쉽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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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임진수씨는 인삼에 철학을 담고자 노력을 한다.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 ‘자농삼팜(www.janong3.com)’ 인사말에, ‘두 발로 흙을 밟아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농부’라고 자신을 소개 한다. 이 믿음으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창조하는데 흔들리지 않겠’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자연을 닮고자 하는 마음과 두 발을 흙에 묻고 사는 농부의 자존심이 어렵고도 힘든 무농약 인삼에 도전하게 한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아내 천애정씨는 남편을 시인이라고 말한다. “이 사람은 굉장히 낙천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에요. 연애편지도 얼마나 감동적으로 썼는지 몰라요. 막걸리를 엄청 좋아해요. 농사에 정신없어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쉴 때는,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쉬는 여유를 찾아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막걸리 먹고 싶어 취직 안하고 농사짓는 거지.”
시인의 인삼
천애정씨는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 제천여고 미술 선생을 한다. “농대생으론 특별나게 미학을 들었어요. 그래서 만났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짬짬이 시도 써보는 임진수씨는, 자신의 미학을 인삼에도 고스란히 담으려고 한다. 임진수씨 내면에 있던 미의 철학이 자연농업을 만나자 단번에 무농약 인삼 농사를 실천에 옮기게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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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임진수씨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올 9월 9일 최초로 인삼 친환경농산물(저농약)인증을 받았지만 첫 발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시련은 계속된다. 역병을 잡지 못해 고생을 했다. 올해는 역병을 거의 잡았는데 비가 와 인삼밭이 침수가 되어 뿌리 위 지상부가 다 죽었다. 내년 무농약인증 받으려는 밭이다.
“비가 와 침수가 된 게 아니지.” 천애정씨 목소리가 높아진다. 올해 무농약인증 예정지 밭 주변 배수로 공사를 시에서 하였다. 400mm관을 800mm관으로 교체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비가 예년보다 적게 왔는데 밭이 침수가 된 거다. 알고 보니 공사한 사람이 배수로 끝부분에 공사를 마치고 판넬을 제거하지 않고 공사를 끝내는 바람에 물이 역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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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수씨는 좌절하지 않는다. “뿌리는 살아 있잖아. 내년에 피어나겠지.” 속이야 얼마나 타겠는가. 하지만 담담히 희망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어려움마저 디딤돌로 삼아 일어날 농사꾼임을 깨닫게 한다. 이 희망 가득한 삶은 저절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시련을 디딤돌 삼아
“이 사람은 인삼에 미쳤어요. 날마다 작업일지를 써요. 매 해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건데 뭐 쓸게 있다고. 술에 취해 졸면서도 작업일지는 써요.” 임진수씨가 운영하는 ‘자농삼팜’ 홈페이지를 보면 날마다 이루어지는 작업을 꼼꼼히 적는다. “그래야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어떤 시련도 그를 꺽지 못할 거라는 믿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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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작업일지를 들춰본다.
작업내용 : 밤뒤3년근 미생물관주하고, 5년근 농약을 살포하다........
[토미1.6리터+한방160ml+키토산160ml+수용성인산칼슘160ml+동자액(+으름녹즙)320ml+미나리녹즙320ml+현미식초320ml+바닷물4리터+물800리터]*2 - 다 못줌. 약 150칸 정도 남았음. 아미노산을 첨가 못하다.
아침에 추출한다고 해놓고서 잊어버리고 안가지고 왔다.(쿠퍼500g+가벤다150g+키토산650ml+탄산칼슘650ml+물650리터)*1....약액이 조금 모자랐다.
지난번엔 약액이 약 550리터가 소요 되었었는데..다음엔 약액을 700리터는 타야 할 듯.
쿠퍼의 약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탄산칼슘을 200배로 혼용하라고 설명서에 쓰여 있었다.
하여 목초액산호탄산칼슘을 혼용하다. 키토산이 약의 흡수력을 높여주므로 희석배수를 높이다.
(물 650리터에 200배는 3.25리터, 키토산을 넣어주었기 때문에 200배를 곱하기 5를 더해서 1000배로 희석하다.탄산칼슘 650ml를 넣어주다.)
*밤뒤 3년근 보식해야 겠다.작년에 캐지않은 묘삼(현 3년근)으로. 빈곳이 너무 많다.
그리고 식재할때 묻는 깊이를 너무 낮게 했는지 줄기가 넘어진것들이 많다.
기계로 식재했는데, 깊게 파이지가 않은듯.(반장아주머니 조작미숙).
가을에 관리기로 복토를 해야 겠다. 잊지 말고."
(2004년 6월 18일 10-16시)-퍼옴 '자농삼팜 게시판 작업일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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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꼼꼼히 적은 작업일지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가 된다. 미생물 채취에서 토양만들기, 효소 만들기, 풀뽑기, 영양제 살포와 같은 모든 일정을 숨김없이 기록한다. 홈페이지에서 작업일지를 보면 인삼농사를 눈에 보는 듯 그려지게 한다. 이 기록이 누구도 엄두내지 않은 인삼 무농약 재배로 가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기준이 될 거다.
유기농 인증을 향하여
“인삼은 인증이 처음이라 잘 안내주려고 하고, 엄청 까다로워요.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도 기준이 없으니 (인증) 내주는 걸 주저주저 했지요. 올해 무농약으로 저농약 인증 받았으니 내년엔 무농약 인증을 받아야지요.” 홈페이지엔 호밀을 심어 예정지 관리를 하며 무농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임진수씨의 발걸음을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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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만 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늘 판로에 막히고 만다. 하지만 임진수씨는 걱정이 없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홈페이지에 기록하는 작업일지가 광고가 되고 단골을 만들게 한다. “(직장을 다니느라) 늘 힘들게 일하는 남편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아내의 판매량도 만만치 않다. 크기는 작지만 자연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철학이 담긴 ‘자농삼’을 접한 고객은 저절로 다시 찾게 된다.
임진수씨의 꿈은 무농약 인증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무농약인증에는 자신감을 갖고 “유기농 인증”을 꿈꾸고 있다.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재배하겠다고 말하지 않고, ‘창조’를 하겠다고 했다. 임진수씨의 자연농업 인삼 농사는 창조의 농사로 기록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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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새, 큰 공간의 뜻을 가진 ‘한새’, 크게 비우라는 뜻의 ‘한비’, 두 아들의 이름도 임진수씨가 직접 지었다. 임진수씨의 내면을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내 자식도 떳떳한 농사꾼을 만들고 싶”어하는 임진수의 농사 미학과 철학이 창조하는 인삼. 거기엔 우주가 담겨있다.
*임진수님의 자농삼 농장은 영월군 주촌면 판운리와 원주 신림에 있다. 판운리에는 섶다리와 평창강이 흐르고, 신림은 치악산 남쪽 자리에 있다. 홈페이지 www.janong3.com 에 가면 상품과 인삼재배 일지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이메일은 3663225@naver.com 이고, 전화는 011-366-3225.
오도엽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10.2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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