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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질문을 던지며 자문자답 할 때 만약 당신을 향해 바람처럼 미끄러져 오는 일엽편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바로 이 책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이 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이 문명사회가 악마의 대륙이라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이 지적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다. 흔히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그 위기의 본질이야말로 이 악마의 땅을 천국의 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논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첫째. 역사현실에 대한 인식기능인 대학인의 지성과 성찰에 관한 부분이며 둘째. 욕망의 주체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본질인식 문제이며 셋째. 인간의 욕망과 문명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과 인간본성에 관한 문제다.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이란 책 제목에서도 짐작 할 수 있듯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인식의 시점과 대상을 아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도 특별하거니와, 그 시점을 87년 6월 항쟁 이후에서 현재까지라는 역사현실, 즉 우리의 민주화과정과 세계의 냉전구조가 정리되는 시기의 세계사에서,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을 작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기반위에서 지식과 정보의 시대라는 오늘의 시점이 요구하는 대안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하나 정리되는 것 없이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의 인문사회과학에 경고를 던지는 것이란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 오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6월 항쟁 이후 전개되는 보수와 진보의 지루한 정체성 논쟁에 던지는 경고와 조언이기도 하지만, 그 쓸데없는 이념의 논쟁 중심에 6월 항쟁의 중심세력이 서 있음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런 어리석은 싸움에 휘말리고 있는 후학에 대한 애정어린 경고의 의미까지 곁들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책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은 1부에서 역사 속의 절망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지식인의 성찰문제를 축적된 절망의 지식에서 희망이 있는 대안적 지식을 도출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엇비슷하지만 2, 3, 4부의 전 편에서 '역사 속의 낡은 것과 새것'에 주목하고 이를 '감성이 주관하는 대중의 사회적 문제'와 '이성이 주관하는 권력과 문명'의 문제로 쪼개어 조명하고 있다. 나아가 문명을 등에 지고 감성의 세계를 파괴하는 과학문명에 비수를 들이댐으로써 이성의 자기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세계냉전체제 붕괴와 아직도 굳건히 버티고 있는 분단구조라는 두 유산이 분비해 내고 있는 우리의 혼란을 정돈하면서 우리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여간 고맙지 않은 충정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은 우리사회뿐만 아니라 급속히 지구촌화가 진행되고 있는 여러 방면의 현실로 인식의 시야를 확대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는 물론 운동론과 환경문제 그리고 과학기술과 지구화 문제를 골고루 다루면서 우리의 희망과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 것이다. 전편에서 신구와 상하 앞뒤를 대칭적으로 조명하고 그 중심에서 우리의 눈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 가를 설파하고 있다. 이 일엽편주의 열 여섯 장삼거사들은 내공이 절정에 달한 분들로 학술단체협의회에서 파견된 당대의 논객이다. 이들은 욕망이 춤추는 정보의 바다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근대이성을 정보의 바다 그 욕망의 바다에서도 자기구실을 할 수 있는 '이성' 즉 '현대이성'으로 단련하고자 '학단협'이라는 대장간에서 인문사회과학이라는 풀무질을 하고 있는 대장장이다. '근대 이성'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살려내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려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성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란 나무에서 그 욕망이 생성하고 키우는 과일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는 이런 감성의 자식인 이성이 오히려 감성을 제어했던 근대와 달리 이성이 감성을 제어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감성과잉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현대는 욕망의 전장터로 변하고 만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분류하는가. 근대이성에서 보았듯이 이성은 감성에 충실하여 문명을 제작함과 동시에 또한 자신의 어머니인 감성을 제어하는 자기부정의 역지배 기능을 작동시킴으로써 인간의 의미를 그 역지배의 작동량을 통해 확보하게 ?! 풔 것이어야 한다. 자동차의 제동장치와 같은 것이다. 감성에 충실하지만 또한 그 감성을 제어하는 이성의 존재야말로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조금 어려운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의미는 인간의 특징인 이성을 감성에 귀속시키는 이성의 자기성찰과 겸허함이 전제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이성이라는 자기정체성을 유물적 과실의 존재로 규정하고 인식하면서 욕망을 제어하는 성찰력이 작동되는 한에서 인간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욕망과 이성, 유물론적 본질과 관념론적 이성이 하나로 융합 되어 있으면서 조화롭게 작동되는 때에 성립되는 것이다. 그 조화가 깨지면 인간은 유물론적 존재인 동물에 귀속되거나 관념론적 존재인 귀신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학단협의 이 책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이 87년 6월 항쟁이후 사회주의붕괴라는 세계사의 새로운 전개 앞에서 무지를 뽐내며 지루하게 논쟁을 펴던 우리의 인문사회과학에 모처럼 큰 틀로 역사를 정리하려는 뜻에서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대안을 준비하고자 하는 의미를 묶어 후학에게 보내는 이 노력에 감사 하면서 그러나 평자는 이에 한가지만 더 덧붙이고자 하는 말이 있다. 역사를 어떤 기점에서 잘라 새것과 낡은 것 같은 단위로 절단해서는 안 되는 살아있는 생명과 같은 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지속적인 과정에서 그 강물의 목적이 평면의 이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직이동에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치의 흐름에서 우리가 새로 창안하고자 하는 가치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역사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새로운 눈'의 시선이야말로 오늘의 시점에서 '문화'라는 가치로 향해야 한다고 본다. 즉 새로운 눈의 초점이 '문화'여야 한다는 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서울지역 인문사회과학서점모임 대표 인서점 심범섭 (http://cafe.daum.net/loveIN)
심범섭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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