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아침은 연두색 대지에 옅은 안개가 피어올라 하늘에 맞닿는 것으로 시작된다. 몽골 울란바타르를 비롯한 도시지역 몇 곳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인구 65%이상이 울타리로 둘러쳐진 집이 필요 없는 게르에서 자유로운 자연과 사람간의 소통을 이루며 언제나 열려있는 생활을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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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 한여름이라지만 이른 아침과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여 장작난로를 피워야만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가로지르는 유목민들의 발길을 막기 위해서 엉성하지만 바트 숨베르 자연농업실험농장 주위에는 울타리를 둘러놓아 불편함을 감소시켰다. 그래도 어디에서 찾아왔는지 육중한 말들이 유유자적하며 농장 한가운데로 몰려와 풀을 뜯고 있고, 게르 옆 야생 풀밭에는 잘 자란 냉이들이 노오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 보기 좋았다.
몽골의 땅은 수백수천 년 동안 이동식 목축을 해오던 땅으로 기름져 보였고, 이 땅에 무슨 농작물을 심든지 잘 가꾸기만 한다면 제법 훌륭한 농토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문명의 이기인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더욱이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없어 천혜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자연의 향내만을 맡을 수 있으니 어찌 이보다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일행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경북대학교 남녀 해외봉사단 학생들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쌀과 부식으로 규모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젊음과 패기 그리고 선진국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순순한 몽골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가르치려하는 모습 속에 좋은 감정도 있었지만 그들만의 자본과 문화를 자랑하는 일방적인 하향식 교류는 욕심으로 비쳐져 실망이다. 사전에 좀더 치밀한 계획과 자료를 가지고 이들 몽골인 들이 생각하는 삶과 가치의 근간이 되는 유목생활의 문화적 장단점을 넘어 이들의 고민과 희망에 대한 이해와 협력자세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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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매학기 연해주와 몽골 등 제3세계로 해외봉사를 떠나는데 자비로 얼마간의 항공료만을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은 대학에서 지원하여 자원봉사를 떠난다고 한다. 울란바타르대학교에서의 단순노동이후 봉사라는 명목으로 이곳 시골의 한 초등학교를 오가며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힘겨운 장기들을 보여주는 이들의 아침나절 세면장풍경은 우리네 물 쓰듯 흥청망청 온갖 세제를 이용한 물난리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침나절 세면장에서 인연이 된 경북대 해외봉사단 인솔 교수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 속에서 나누는 생태적인 삶과 즐거움에 대한 이해가 맞아 함께 공감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네팔여행시 가난해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측은지심이 생겨 돈을 건넸는데 당당히 받질 않아 주었던 손이 미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들에게는 돈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분은 몽골에서의 첫날, 울란바타르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관람하다가 나오면서 지갑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하는 바람에 마음이 많이 상해있는 듯 보였다. 우리와 함께 몽골의 오지를 구석구석 체험하고 싶은 심정을 토로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간단한 아침을 해먹고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안내자 바타가 들꽃들이 많이 피어있는 곳을 한바퀴 산림감시원과 돌고 온다고 안내자 야트마와 함께 그의 차로 다녀오란다. 카메라를 챙겨들고는 경북대 인솔교수와 함께 초원 속으로 들어갔다. 비포장의 흙길은 예상외로 단단해 보였다. 사륜구동의 일제 자동차는 꼭 우리의 갤로퍼를 빼 닮았다. 초원위를 달려 언덕을 넘으니 연붉은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고 주변으로는 이름모를 꽃들이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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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이어진 야생의 꽃길은 2Km이상 지속되면서 사방을 온통 들꽃들로 물들여 놓았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 무리들을 뒤로하고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초입에 들어서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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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초원뿐인 대지를 지나 한 가정이 살고 있는 게르를 찾아 들어갔다. 길도 없는 그곳에서 산림지기의 소임을 하고는 나오려는데 잘 말린 치즈와 밀가루로 만든 과줄을 한 소쿠리 내왔다.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인데도 손님들을 위해 차려낸 몽골인 들의 손길은 우리의 농촌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들의 자연에 대한 존경심은 대대로 초원생활을 하면서 신고 다니는 장화에서부터 이동식 천막 게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듯 했다. 몽골 장화의 비밀은 신발 바닥 맨 앞부분에 있다. 바닥 앞부분이 위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기 때문에 이걸 신으면 발을 뒤꿈치에서 발가락 쪽으로 부드럽게 구르면서 걸을 수밖에 없다. 손으로 만든 신발조차도 이런 식으로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니 어찌 생태적인 삶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으랴.
이와는 반대로 각지고 납작한 우리네 신발들을 보라. 보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식물의 생명은 아예 살펴보지도 쳐다보려하지도 않으려는 무의식이 팽배한 삶이지만 이들 몽골인들은 아주 작은 미물까지도 소중히 생각하여 무조건 발로 밟아 깔아뭉개지 않는 본성을 신발이라는 단순한 도구로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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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속 한가운데 외로이 서있는 게르를 돌아 나와 다시 비탈길을 넘어 골짜기 속으로 내 달렸다. 활짝 핀 들꽃들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아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언덕배기를 오르고 차가 멈추어 수많은 산들을 품은 초원을 구경하기도 했다. 한쪽에는 염소나 양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들이 쌓여있는 우리네 성황당과 같은 어워가 있어 몽골 분들과 세 바퀴를 돌며 돌을 던지고는 사방으로 보이는 열려진 풍경에 마음을 놓았다.
늦은 오후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말 타는 것을 섭외했다. 어렵사리 근처에 사시는 분들의 말을 다섯 마리 빌려 타고는 초원으로 향하는데 얼마 안가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 얕잡아 보고는 말은 주변만을 빙글빙글 돌면서 자기의 고집을 피웠다. 한 시간이 흘렀을까 말에게 갖은 애정표현을 다 쏟아 부어 달래어 간신히 산등성이로 올라가 드넓은 초원을 감상하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으로 채웠다.
거친 야생의 초원에서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으로 내달리는 내 주위에는 들꽃으로 가득하다. 연신 꽃들과 주변풍경을 사진에 담아 두고는 연두 빛 야생초들의 물결 너머로 이따금씩 보이는 한가한 가축들이 안겨있는 영원한 대지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야생들꽃들이 무더기로 피고 지는 노오란 초원은 평화로워 세상근심이 저절로 사라지는 듯하다. 이때다 싶어 온 가족이 말을 타고 하염없이 초원을 내리달리니 좋긴 좋더라. 수없이 피고 지는 들꽃들의 천국으로 날아가듯 말을 타고 내리달리면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무겁고 추한 욕심의 덩어리들이 하나하나 실오라기 풀리듯 풀려나가니 그동안 맺혔던 가슴 한 구석이 뻥하니 뚫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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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할 때 쯤, 안내인 바타가 옆집으로 마실을 가자고 찾아왔다. 주변은 온통 깜깜한 어두움으로 둘러 한치 앞을 분간키 어려울 지경이다. 그때가 새벽1~2시쯤은 족히 되었을 성 싶었다. 아담한 통나무로 지은 옆집에는 아주머니 한분이 심술 굳게 침대에 누워 곤한 잠을 자고 있었고, 인자한 얼굴을 지닌 아저씨는 우리와 마주 대하고는 농장문제에 따른 심정들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웃음을 머금은 밝은 얼굴로 말 우유로 발효시켜 만든 마요주를 연신 따라주어 처음에는 비위가 상할까봐 못 마셨는데 여러 번 반복하여 마시다보니 입맛이 들어 속이 편하다. 밀가루로 만든 과줄과 통통한 천연치즈도 한 소쿠리 꺼내오는 넉넉한 손길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다음날 일찍이 옆집 아이에게 연필 한통을 선물로 주고는 원주민 식구들과 마요주를 마시며 즐거워했다. 돌아오려는데 들통에 마요주를 하나 가득 채워 주어 일행과 나누어 먹었다. 허나 다들 잘 못 먹는 눈치라 마요주는 모두 내차지가 되어 몽골 땅에서 마음껏 마셨던 발효술이 되었다. 바트 숨베르 농장의 오전은 하루 종일 주절주절 비가 내렸다. 점심식사로는 경북대학교 해외봉사단원들이 해놓고 간 카레와 함께 우리들만의 맛난 밥상을 차려 머나먼 타국에서 우리음식을 싫 컷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이곳의 시차는 한국과 같아 지내기에 편리했다. 하지만 저녁9시가 넘어도 환한 초원에서는 그저 바람소리에 눈뜨고 적당히 잠드는 삶이 습관이 되어야 피곤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몽골총각은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생긴 것에 더하여 순박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운동을 썩 잘 할 뿐 아니라 언제나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열심인 것에 놀랐다.
몽골에서는 남자나 여자의 머리칼을 특별한 의미로 생각한다. 그래서 머리를 풀고 다니는 것은 '헤픈 여자'의 상징으로 통한다. 아이들은 사내아이나 계집아이나 일정한 나이까지 머리칼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그대로 놔두고는 자연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 완전함에 너무 일찍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아마도 높은 유아 사망률 때문에 생긴 관습처럼 생각된다. 이들이 머리를 자르는 시기는 별자리를 보고 성년식의 시점을 찾아 홀수 나이인 세살내지 네 살이 되어야 비로써 성년식을 치루고 머리를 자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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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무렵 날씨가 좋으면 말을 빌려 타기로 하고는 소일삼아 토마토 농장에 가서 토마토순도 솎아주고 농장식구들과 함께 뒷산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 이곳저곳에는 흰 버섯이 많이 자라 있었다. 먹는 놈들을 구별하여 한 소쿠리 채우고 뱀이 없는 둥그런 초원동산들을 마구 올라 다녔다. 숲이 없는 산에는 온통 야생의 풀들이 꽃을 피워냈다가는 지고 하는 가운데 이따금씩 새들과 짐승들이 파놓은 구덩에 지천으로 날아다니는 메뚜기 떼들만이 심심치 않게 초원을 활보하고 있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푸른 야생의 풀잎 속을 헤치며 오른 정상은 환상적.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겹겹으로 파노라마를 이룬 능선들과 강줄기들, 양떼와 소 떼 무리들, 유목민의 집들이 우리들을 반기는 듯 하다. 허공을 향해 돌던 매도 사라지고 정적이 감도는 초원의 향기는 갑자기 눈과 코와 입으로 다가와 한순간의 피로를 씻어준다. 몽골인들은 대체로 눈이 좋아 안경이 필요 없고, 이가 좋아 칫솔이 필요 없다.
대도시로부터의 시끄러운 소음과 각종 오물에 더렵혀진 거리, 형형색색의 어지러운 간판문화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무공해 초원만이 녹색바람을 일으켜 고요함과 더불어 넉넉하고 편안한 안식을 주는 대지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는 바람과 구름, 양떼와 목동, 말과 게르만이 초록의 들판 위를 주름잡는다. 내려오는 산기슭에는 백리향과 인진쑥 등 우리의 산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어 잘 자라고 있었다.
늦은 오후 들어 야생들꽃무리들이 많이 피어있는 초원을 말을 타고 한바퀴 돌고난 후, 게르로 돌아오니 양을 잡는다고 6만 뚜그릭을 달라고 하여 주었다고 한다. 한국 돈 6만원에 허르헉을 해주려는 모양이다. 먼저 허르헉을 만들기 위해서는 넓은 초원위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양 한 마리를 사와야 한다. 몽골에서는 가축이 귀한 재산이므로 짐승을 함부로 잡거나 요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손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접대용으로 허르헉을 대접한다.
농장 한쪽 구석에서는 이곳에 부부학생으로 와서 일하고 있는 부인과 이웃집 아주머니가 열심히 양의 내장을 손질하고 선지를 부어 순대를 만들고 있었다. 몽골인들이 양을 잡을 때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순간적으로 숨통을 끊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가축들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미풍양속인 것이리라. 오랜 세월 유목생활로 다져진 이들만의 고시레 문화로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진지하게 대한다.
고기는 스테인레스로 만든 기다란 우유 통에 넣을 준비를 마치고 따로 장작불을 피워 탄소함량이 많이 들어가 맛을 좋게 하는 초토라는 몽골 특유의 돌을 빨갛게 달구어 고기와 파와 감자, 당근 등의 양념을 넣고 소금을 뿌리고 함께 집어넣고는 뚜껑을 단단히 덮는다. 외부에서 열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 초토의 온도에 의해 고기가 익는 방식인 것이다.
잠시 후 우유 통 안에서는 대단한 소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우유 통 뚜껑사이에서는 커다란 굉음을 내며 수증기가 마구 솟아오른다. 막간을 이용하여 천연 순대를 맛보니 어찌나 맛이 좋던지 여러 점을 단숨에 목구멍을 통해 넘겼다. 잠시 양고기에 뜸을 들이는 동안 비닐하우스로 이동하여 호박과 토마토, 오이, 고추 등의 작물을 돌아보고는 특별히 토마토 키우는 법을 그곳 부부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곳 비닐하우스의 토마토는 줄기를 솎아주지 않아 이파리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기에 한줄기만을 남겨 공중에 묶어주고는 모든 순들은 제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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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양념으로 뜸을 들인 양고기가 익어갈 무렵, 허르헉을 맛보기 위해 우리일행들과 몽골인 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이웃한 해외봉사단 학생들에게도 양고기를 한 사발 갖다 주고는 이웃한 몽골인들과 둘러앉아 큰 사발에 담긴 양고기를 맛보았다. 어두움이 몰려오는 늦은 저녁 두 손으로 양고기를 잡아들고는 대초원의 바람과 태양, 별과 달, 풀꽃들의 향기를 마시며, 전통 양고기요리 '허르헉'을 맛보다. 약간 질긴 듯 했지만 우리의 돼지고기 맛과 비슷해 썩 괜찮았다.
이동생활 속에서 이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만든 허르헉은 지혜가 담긴 음식이기에 더욱 손길들이 오갔고, 비위를 상하는 냄새도 없어 담백했다. 이토록 신선한 고기를 과연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먹어볼 수 있을까 늦은 밤 초원 위를 수놓은 별빛들을 바라보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생각했다. 개의 죽음까지도 헛되이 보이지 않는 몽골인들의 생활문화 속에 묻어있는 생명에 대한 배려는 참으로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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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초원을 달려온 바람이 휴식을 위해서 잠시 게르 앞에 머물다가는 지나간다. 몽골의 아름다운 초원아! 이번여름 우리가족들을 이곳에서 보내게 해주어 고맙다. 우리들이 여태껏 꿈꾸어 왔던 행복이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깨달고 비로소 초지를 행운으로 대한다.
요즘 몽골정부는 초원의 숲과 나무를 보존하기 위하여 그간 이어져온 이동식 가축방목을 규제한다고 한다. 대신 한곳에 정착하여 정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정주공간을 정해 정착영농을 하려는 뜻일 게다. 그 실험을 위한 공간이 바로 이곳 바트 숨베르 자연농업농장이다. 이곳에서 배워간 몽골 젊은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살 지역으로 들어가 자연농업으로 정착을 이루는 소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활한 대자연을 안방삼아 이동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이동식 목축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문화다. 산수 좋은 곳을 찾아 자신의 집을 짓거나 소유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초원과 물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무소유로 살아가는 것을 원한다. 냇물에서 빨래나 물건을 씻을라치면 당장에 부당함을 알리고 보살피는 모습에서 그들의 마음을 느꼈다.
드넓은 초원에서 말과 함께 산책을 즐기기 위하여 인근의 산허리들을 단숨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반대편에 있는 구릉으로 내려가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볼이 불그레한 쌍둥이 어린형제 둘이서 열심히 말을 돌보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어서 잔돈 1,000원씩을 주고 돌아왔다.
풀밭 사이를 가로질러 농장으로 오는데 소 떼를 몰고 오는 사람, 양젖을 짜는 사람, 말을 타는 사람 등 활기찬 몽골의 초원생활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타다가 지친 말을 타고 산등성이를 말과 함께 힘껏 오르고 달리고를 반복하다가 또다시 지는 저녁노을을 감사히 맞는다. 허나 인근 게르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의 친척쯤 되는 젊은이를 통해 말 값을 흥정하고 어렵사리 합의를 본 것이 좀 비싼 값으로 말을 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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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바트 숨베르에 있는 울란바타르대학교 농장을 떠나는 날이다. 유난히 햇볕이 좋은 날씨다. 우리들의 그레이스 봉고차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을 보내고서야 도착했다. 왔던 길을 되돌려 초원 속으로 항해하듯 달리다가 역시나 언덕길을 만나면서부터 맥을 추지 못했다. 잠시 쉬면서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꽃피운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앞으로 허브견학은 유럽이나 일본이 아닌, 이곳으로 와야겠다. 돈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야생의 허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시 가던 길을 되돌아 길이 없는 무법의 초원을 가로질러 색다른 묘미를 찾아 우회했다. 제법 많은 차량들이 이용했던 길이라 비포장 길이 잘 닦여있었다. 이곳도 언덕길이 포함되어있어 잠시 동안 걸었지만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들꽃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몇 시간을 달리니 2차선의 포장길이 반갑게 마중 나왔다. 곳곳에는 게르로 만들어 놓은 캠프장이 보였고, 울란바타르에 가까이 올수록 시끄럽고 복잡했다.
시내에 들어가 제일먼저 들른 곳은 미아타 항공사였다. 내일 경비행기를 타고 흡수골로 떠나는 날이라 미리 예약해 놓은 항공기의 승차권을 끊기 위해서였는데 아뿔사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가이드들은 미아타 항공사직원과 여러 차례 상의를 해보고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울란바타르 대학교에 잠시 머물다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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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하우스 담당자는 여행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은 우리일행의 숙소가 불확실하여 어려움이 많았단다. 간신히 두개의 방을 얻고는 그동안 씻지 못한 몸과 마음을 열심히 보듬었다. 그런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요주 1.5리터짜리 한 병이 발효하면서 폭발해 게스트하우스 룸이 온통 마요주로 뒤범벅되어 양젖냄새로 가득했다. 흡수굴에서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위해 나선 아내가 없는 통에 아이들과 열심히 게스트하우스를 대청소하는 소동을 치렀다. 앞으로 몽골에 여행을 떠나시는 분들은 절대로 마요주 뚜껑을 막고 가져오면 폭발할 위험이 있음을 명심할 것.
해맑은 아침햇살이 울란바타르대학 게스트하우스를 깨웠다. 오늘은 흡수굴로 떠나는 날이다. 미아타항공 티켓을 끊기 위해 서둘러 징기스국제공항에 나가 대기해야만 했다. 노심초사 저마다 살림에 필요한 짐꾸러미들을 가지고는 대합실 한쪽 귀퉁이에서 기다리다가 바타의 친구가 미아타 항공사에 근무하는 덕에 무난하게 흡수굴행 비행기 티켓을 거머쥐어 울란바타르를 떠나게 되었다.
이번 흡수굴여행에는 안내자 셀렌게만이 우리와 동행하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은 44인승 경비행기는 권위적인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곳에서는 초코렛과 사탕 한 개만이 서비스로 나왔다. 하늘에서 바라다 본 몽골의 대초원과 산악지대 는 끝없이 넓었고, 구불구불 사방으로 향하는 길들과 세렝케티 강이 주는 역동성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산과 들에는 온통 초록의 풀들만이 무성한데 이따금씩 사막화 되어가는 곳도 있어 속히 나무를 심고 가꾸는 정책적 안목도 필요하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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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쯤 날아오르다 도착한 곳은 무릉(MERON)이다. 꾸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고 초라한 공항은 쉽고 간단하게 수속이 이루어졌다. 무릉공항을 걸어 나오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짐을 가지고 공항 밖으로 나가니 러시아식 짚 차 프르공이 대기하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척박한 땅으로 둘러싸인 무릉을 향해 달렸고, 무릉 시내에는 푸르름의 생동감과 발랄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직 나무판자와 벽돌로 만들어진 집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코리안 레스토랑이 눈에 띄었다. 얼~씨구 지~화자! 식당에 들어가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키고는 기다렸다. 김치볶음밥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나머지 음식들은 기대이하로 억지로 목구멍으로 넘겨야 했다. 모두들 낭패를 맛보고 고약한 무릉을 서서히 빠져나왔다.
편안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막한 시내를 한 바퀴를 돌아보고 우리네 60~70년대 만물시장도 구경했다. 특별히 가스레인지를 사려고 여러 슈퍼마켓을 찾아가 보았는데 가스레인지는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가스통만 가지고 떠난 흡수굴 행. 아직도 흡수굴을 가려면 4~5시간을 족히 걸린다. 무릉에서 흡수굴은 완전 비포장 길이다. 새로운 초지를 향해 이동하는 유목민들처럼 우리도 끝없이 이어진 초원의 길을 따라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는 이들의 문명지를 차로 달린다. 중간 중간에 야생화들의 집단 서식지들을 바라보는 그리움이 있어 그런대로 지루하지는 않았다.
침엽수림의 소나무 군락들이 점점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고 있을 때 프르공은 잠시 멈추어 쪽빛의 하늘과 양떼의 구름, 초록의 물감을 들인 들판과 숲을 통해 미지의 땅으로 왔음을 실감케 해준다. 차는 또다시 하얀 석산골짜기를 가로질러 자갈이 수북이 쌓인 강을 건너 멀고먼 흡수굴로의 입구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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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굴 입구에서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고, 한사람이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우리의 가이드 셀렌게는 공원관리인을 잘 설득하여 저렴한 입장료를 내게 했다. 덤으로 커다란 쓰레기용 비닐도 나누어 주었다. 흡수굴을 향하는 여러 갈래의 강줄기들은 깨끗했고 힘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8시경이 되어서야 흡수굴 초입에 있는 작은 도시 하트갈(HATGAL)에 도착했다. 그곳에 있는 네이쳐스도어(NATURE'S DOOR)에 묵으려 하다가 강가랑 너무 떨어져 있고 주변 시설들도 좋지 않아 프르공 기사와 이야기하여 더욱 안쪽에 있는 캠프로 가자고 했다. 하트갈에 도착하면서 내리던 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다. 제대로 길이 놓여있지 않은 숲길을 따라 강을 건너고 언덕을 넘어 인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차는 달렸다.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오르는 고원위에 펼쳐진 폭 50km, 길이 150km에 이르는 제주도만한 거대한 천연호수 흡스굴, 사륜구동 자동차가 아니라면 애당초 접근조차 어려운 산악지형 해발 2,300미터에 바다 같은 호수를 품은 땅, 자유로운 이동을 소망하는 말과 양 그리고 야크들이 한가로이 호수주변을 거닐며 풀을 뜯고 있는 오염되지 않은 천연의 산림 숲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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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울창한 산림, 길 따라 이어진 계곡들은 하나같이 물이 흐르지 않고 말라 있었다. 산속 길을 천천히 오르던 차창 밖으로 야생의 들꽃무리들이 빗물에 더욱 생기를 얻어 보일 때 쯤 갑자기 경찰차가 와서 우리차를 세운다. 올라오는 차가 있을 경우, 내려오던 차는 반드시 일단 정지를 하고 가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운전사의 면허증을 가져다보고 딱지를 끊고는 가버렸다.
우리가 보기에 그 경찰관의 얼굴을 붉어 있었고 술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숲길을 따라 난 고개를 넘자마자 좌측으로 캠프장이 하나 둘 보였다. 조금 더 가니 흡수굴 호수가 보이는 곳에 아담한 캠프가 있어 물어보고는 그 옆에 있는 네이쳐스 도어를 숙소로 정하기 위하여 현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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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쯤 도착하여 결국에는 마야투어 캠프(MAYAR TOUR CAMP)로 숙소를 정하고는 프르공 운전사 아저씨께는 얼마간의 한국 돈을 채워 9만원정도를 주어 보냈다. 두 곳의 게르에 짐을 풀고는 저녁노을로 붉게 물든 호수와 3,000미터가 넘는 하얀 산들을 마주 대하고는 뜨끈한 장작난로와 따스한 보온 통의 온기를 느끼며 행복한 밤을 맞았다.
류기석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09.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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