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ww.jadam.kr 2011-06-06 [ 최종수 ] 묘비 앞에 광대버섯들이 여기 저기 돋아 있다.

버섯 관찰의 묘미는 만남의 기쁨에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만나는 한 송이의 버섯을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작년(2010년)은 오랜 가뭄의 연속이었다. 산에 가도 버섯 한 송이가 없는 날이 이틀이나 계속될 때에는 그저 숲속을 걷기만 하였다. 커다란 만남의 기대를 잊지 않은 채 걸었다. 돌아설까 마음이 들다가도, 아니, 저 쪽에, 저기 저 끝에서 갑자기 무성하게 돋은 버섯을 만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 곳으로 다가간다. 가뭄 끝에는 실망만이 기다리지만 그래도 땅만 내려다보며 그저 걷는다.

ⓒ www.jadam.kr 2011-06-06 [ 최종수 ] 묘지 광경

생명 만남의 기대를 안고 한 작은 생명, 잘 눈에 띄지 않는 생명체를 찾아 산으로 숲으로, 심지어 죽음이 잠들어 있는 묘지로 헤맨다. 자연의 신비 앞에서는 언제나 넉넉해진다. 서두름 없는 여유가 생긴다. “사람이 가장 외로울 때 찾아 가는 곳이 자연”(정호승)이라는데, 그곳에 가면 이웃이 있다. 비록 묘지라 하여도 나를 반겨 맞아 주는 이웃, 버섯이 있다.

ⓒ www.jadam.kr 2011-06-06 [ 최종수 ] 묘지 옆에 서 있는 단풍나무에 느타리버섯이 많이 돋았다.

유시화 시인이 엮은 자연에 대한 잠언 시집 가운데 라첼 카슨이라는 분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대지는/꽃을 통해/웃는다”(꽃 전문). 이 시를 읽다가 문득 묘지에서 돋은 버섯을 생각하였다. “버섯은/죽음을 통해/웃는다.”

어디를 가도 버섯은 돋게 마련이지만, 유독 묘지로 발길이 잦은 것은 웬일일까 옛날 같으면 공동묘지라 하면 무서운 생각이 먼저 들었던 때가 있다. 물론 미국 묘지는 공원 같아서 오히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기까지 하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고요하고 경치도 좋다. 거기다가 그 곳에 가면 여러 종류의 버섯들이 심심치 않게 돋고 있다. 묘지에는 온갖 나무들도 많고 또 잘 관리되어 있어서 버섯을 관찰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특별히 나무가 많기 때문에 느타리버섯과 같은 부생균 버섯이 돋아도 엄청나게 많이 돋는다. 뿐만 아니라 나무의 종류에 따라 그 나무와 공생관계에 있는 균근균 버섯 또한 많이 돋는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해마다 가을이면 노르웨이 전나무 밑에서 광대버섯을 참 많이 만난다. 물론 독버섯이지만 많이 돋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찰하며 감상하기에 바쁘다.

ⓒ www.jadam.kr 2011-06-06 [ 최종수 ] 묘비 밑에 말불버섯이 많이 돋았다.

한 가지 식용버섯을 채취하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잔디 관리를 위하여 화학비료와 살충제나 제초제를 많이 뿌리기 때문이다. 식용버섯이라 하여도 화학물질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버섯을 따러 묘지에도 간다 하였더니 어느 분은 거기서 돋는 버섯은 먹지 말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떤 야생버섯 애호가도 묘지에서 버섯을 채취할 때면 왜 그런지 누가 보는 사람이 없어도 눈치를 살핀다고 한다. 왜냐하면 마치 고인의 사체가 양분을 제공하여 버섯이 돋기라도 한 것처럼, 만일 그 고인의 가족이 사랑하는 이의 묘 근처에서 버섯을 채취하는 것을 보면 화를 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방부 처리한 사체가 지표에 있는 버섯에게 양분을 공급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왜 그런지 남의 불행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으려 하는 것 같아 죄스럽기도 하다는 것이다. 허지만 묘지는 안식처이다. 버섯을 만나러 묘지에 가는 것은 단지 식용버섯을 찾으러 가는 것만은 아니다. 묘지는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가장 훌륭한 곳이다. 더구나 묘지에 버섯이 돋는다는 사실은 무언지 모르게 삶과 죽음에 대한 차원 높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래서 버섯은 죽음을 통하여 웃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죽음이 잠들어 있는 곳이 묘지이지만 거기서 아름다운 생명체를 피워 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죽음이 생의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 www.jadam.kr 2011-06-06 [ 최종수 ] 묘지에 있는 활엽수 그루터기에 돋은 느타리버섯

존 모피트의 시, “어떤 것을 알려면”을 읽어보니 어떤 것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면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하고 바라보는 나는 바로 내가 바라보는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또 진정한 버섯 사냥꾼은 버섯처럼 생각하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 버섯을 알고자 하여 오랜 세월을 바라보았으나 과연 내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보아 왔던 버섯처럼 생각하고 또 그 버섯이 되고자 하였던가 버섯이 된다고 하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그리고 다시 버섯을 곰곰이 살펴보니 내가 그 버섯처럼 되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놀라운 일이다.

ⓒ www.jadam.kr 2011-06-06 [ 최종수 ] 묘실 앞에 광대버섯들

죽음에서 생명을, 웃음을 피워내야 하고

쓰레기를 되살려 땅과 흙에 활력을 주어야 하고

좋은 것을 혼자만 먹지 않고 나누어 먹는 공존공생을 보여주어야 하고

치명적 독이라도 사람을 일깨우는 일에 써야 하고

지구와 사람을 치유하는 약이 되어야 하고

맛과 향이 좋은 먹이가 되어야 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그림이 되어야 하고

형형색색 빛나는 채색이 되어야 하고

삶의 이야기를 담은 종이가 되어야 하고.....................

ⓒ www.jadam.kr 2011-06-06 [ 최종수 ] 죽은 활엽수 그루터기 옆에 느타리버섯이 돋았다.

더 적을 필요가 있을까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될 수 있다면 내 생명의, 내 생애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참으로 죽음에서 조차 웃음을 피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버섯들을 만나고 또 만난 버섯들을 오래 바라보기 위하여 묘지를 자주 찾아가는 것이다. @

최종수(야생버섯애호가),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1.06.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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