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의 서구화. 이 말은 한때 우리 한국인이 반드시 달성해야 할 선망의 명제였다. 체력이 승부의 중요한 잣대인 운동선수들에게 특히 절실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각종 스포츠대회 중계석에는 “우리도 하루빨리 식생활을 서구화해야 한다”는 아나운서들의 역설이 있었다. 보리밥에 푸성귀만 먹어서는 도저히 서구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는 푸념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말이 슬며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비만의 뒤에서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생활습관병의 수식어로도 쓰인다. 아울러 아토피를 비롯한 알레르기 질환과도 연결 끈을 대고 있다. 이제 ‘식생활의 서구화’란 더 이상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닌, 하루빨리 버려야 할 ‘오류’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 이유를 우리나라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변화의 바람이 오류의 근원이었던 미국에서부터 불어왔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께, 미국 생리학계의 일부 선각자들은 현대의학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비만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생활습관병의 창궐. 그들은 이를 신종 ‘문명병’으로 규정하고 영양적인 측면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체내 성분들을 분자 수준에서 영양으로 조절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른바 ‘분자교정의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의학 프로토콜이 태동하고 있었다.
식사와 영양 개선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은 미국 아브라함 호퍼 박사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비타민을 이용해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증상을 크게 개선시켰다. 호퍼 박사의 실적에 고무된 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의 연구에 속속 동참한다. 그중 역사에 남을 인물이 바로 라이너스 폴링 박사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폴링 박사는 처음으로 ‘분자교정의학’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이 분야의 연구를 독립된 의학 이론으로 완성했다.
서구의 식생활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분자교정의학자들의 연구가 종합되면서 식품 성분에도 관심이 모아지게 됐고, 자연스레 옥석이 가려지기 시작했다. 해로운 성분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부류로 갈무리될 수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정제당, 나쁜 지방, 화학물질이었다. 이름하여 ‘식품 유해성분 삼총사’다.
‘삼총사 성분’은 식품 상식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식품의 우열을 가름하는 좋은 잣대이기 때문이다. 과자ㆍ빵, 청량음료, 인스턴트 식품 그리고 패스트푸드를 포함한 가공식품들이 지탄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결같이 ‘삼총사 성분’이 들어 있어서다. 그게 바로 서구화된 식생활의 맨얼굴이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수제비, 된장찌개, 김치예요.” 얼마 전 미국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슈퍼볼 MVP 하인스 워드의 한국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보는 우리의 미래 식생활상은 자명해졌다. 이론대로, 정답대로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때다.
▣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제공 : 한겨레,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05.1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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