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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월 22일 토) 오후 산에 들어가 애팔래치아 등산로(Applachian Trail)를 좀 타고 버섯을 찾아 다녔는데 다시 주차한 곳으로 나오다가 마침 Shelter(등산객 대피소 겸 간이숙소) 앞에 한 사람이 밥을 짓고 있습니다. 얼굴을 보니 수염이 더부룩하여 그렇지 동양인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혼자 등산하지는 않을 터인데 싶어 영어로 물었지요.
"아 유 제파니스?"
그 분이 답, "노, 아임 코리언."
그래 한국어로 "한국분이시군요."
그래서 나무를 주워다가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 분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두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은 암벽 등반도 하는 전문 산악인 이종관씨. 3개월 전에 메인 주를 떠나 이곳 중간지점까지 온 것입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이 미국 동부지역의 유명한 등산로는 미국 동북쪽 끝에 있는 메인 주로부터 저 남쪽 조지아 주까지 2175마일=3480km의 대 장정 등산로입니다. 그 분은 현재 실종 중인 박영석 산악인과 함께 히말라야는 물론 남미 아르헨티나 안데스 산맥에 있는 높은 산(이름은 들었으나 잊었음)을 포함하여, 알래스카 매킨리는 4번이나 등정했답니다. 그 분 나이 올해 53, 애팔래치아 등산로 3480km 전 장거리를 종주(縱走)하여 완주(walk through)할 것을 처음 꿈꾼 것이 그 분 20대였다니 이번 대장정의 꿈이 실현 중인 것은 거의 30년 만에 일입니다. 이제 대장정의 절반을 걸었으니 앞으로도 3개월을 더 걸어가야 할 판입니다. 현재까지 이 분이 알기로 한국인으로 애팔래치아 등산로의 대 장정을 완주한 사람은 두어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합니다.
그 분 말씀이 남쪽 조지아에서부터 올라오면 훨씬 수월하다더군요. 그런데 자기는 코네티컷 주에 사는 관계로 메인 주에서 출발하였는데 길이 험준하여 고생 많이 했다 합니다. 하루 평균 15마일(24km) 걷는 것이 보통이고 35마일 걸어 본 것이 가장 많이 걸은 것이라 합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 간간 자동차를 얻어 타고 인근 마을로 나가 모텔에 머물면서 목욕도 하고 밥도 사먹고 빨래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150불 비용이 드는 것은 잠간이라고 합니다. 등산 도중 동물들을 만났을 법하다 했더니, 사슴은 부지기수요 여우도 만나고 뱀도 여러 번 만났으며 곰도 만났다 합니다. 그 분은 전문 산악인, 이 사람은 아마추어 버섯장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기도 왠지 야생화 보다는 버섯을 만나면 너무 예뻐서 촬영하게 된다 합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날도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고 배도 고프고 기온도 뚝 떨어져 선선합니다. 더구나 그 분 밥 지어 놓은 것이 다 식는 판이라 더 이상 붙들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어 무사히 대 장정을 마무리 짓기 바란다 하며 어서 밥 식기 전에 잡수시라 하면서 작별하게 되었답니다. 혼자 어두컴컴한 숲속을 걸어 나오다 생각하니 참 그분 대단한 분이구나. 그 멀고 험준한 길을 그것도 혼자서 걷다니........무서운 자기 결단의 사람입니다. 아마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 아니겠는가 싶었는데,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차에 와서 살펴보니 먹을 것이 좀 있기에 사과 큰 놈 3개와 오렌지 주스 한 병, 영양 드링크 Boost(한 병 마시면 250칼로리) 한 병을 싸들고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날은 저물었습니다. 쉘터에 갔더니 머리 등불로 불을 밝히고 혼자 밥을 먹고 있습니다. “내 다시 왔소. 더 드리고 싶어도 무게 때문에 짐이 될 터이라.....”하면서 몇 가지 건네고 다시 돌아 산을 나오며 내내 그 분 혼자 밥 먹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한국 뉴스에서는 박영석 산악인에 대한 속보가 이어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등산로 간이숙소에서 만난 분과 이야기 하면서도 박영석 산악인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옛날 알래스카 매킨리에서 산화한 고 고상돈 산악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이 부족한 사람은 30여 년 전 그 때 고 고상돈 산악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썼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3쪽 반이나 되는 긴 이야기는 밀어두고 그 때 써서 말미에 달았던 짧은 글을 여기에 옮겨 적음으로써, 이종관 산악인의 무사 완주와 안전을 기원하며 동시에 박영석 산악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해 보고자 합니다.
산 정상 눈 속에 핀 꽃
높은 산
얼음 벽 틈에 핀 꽃
꽃잎은 져도
뿌리는 지심(地心)까지 깊다
산화(散華)한 꽃잎은
부서진 태양으로 흩날고
꽃술 향기는
하늘까지 높다
높은 산
얼음 벽 틈에 피었다 진 꽃은
어디서 도움을 구하는가
기도소리로 승화한 꽃잎의 흔적은
지면을 덮다
(고상돈, 이일교 두 산악인를 추모하면서
1979년 6월 30일 밤)
최종수(야생버섯애호가),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1.10.2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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