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리는 한겨울,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보고픈 책을 읽는 모습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즐겁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보는 책의 종류도 다르고 마시는 차도 다를 것이나 그 운치만은 통하는 바가 있으리라. 여러분은 겨울철 주로 어떤 차를 마시는가.
어느 해 겨울 오지라고 알려진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내린천 상류에 위치한 살둔산장이란 곳을 방문해 하룻밤 묵은 적이 있다. 나무로 지은 특이한 구조의 2층집으로 바로 집 앞으로는 내린천이 돌아 흘러가는 곳이다. 겨울철이어서 거실에 무쇠난로가 있고 난로 위 주전자에선 무언가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안주인이 몸에 좋은 거라며 따라주는데 숭늉 같으면서도 숭늉과는 다른 구수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았다.
그것이 겨우살이차였다. 잠을 자던 방안에도 겨우살이를 말리기 위해 채워둔 양파망이 여러 개 걸려있었다. 주인부부는 늘 그렇게 겨우살이차를 끓여 마시며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도 따라준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도 겨울이 되면 보리차처럼 겨우살이를 끓여 마시곤 한다.
겨우살이는 늘푸른 나무로 다른 나무를 숙주로 해서 살아가는 기생식물이다. 언젠가 새삼이란 식물을 거론하면서 잎과 뿌리가 없는 새삼이 완전한 기생식물이라면 겨우살이는 그 자체 잎을 가지고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반기생식물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 ⓒ www.jadam.kr 2007-01-09 [ 유걸 ] 광합성을 하면서 표피에 뿌리를 내리고 기생하는 겨우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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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는 사철 늘푸른 잎을 하고 있지만 기생하고 있는 나무가 잎을 다 떨어뜨린 겨울철에야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기에 마치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겨울나무로 아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4종의 겨우살이가 있다. 겨우살이가 가장 흔하며, 그 외에 꼬리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 동백나무겨우살이가 있다.
늦가을에 메주콩 크기로 다닥다닥 달리는 겨우살이 열매는 반투명의 연노랑색이 대부분이지만 붉은 색을 띤 것도 있다. 이를 붉은겨우살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겨우살이는 참나무, 팽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등에 주로 기생한다. 진초록 줄기는 Y자로 가지를 쳐 나가고, 길이 3~6cm의 잎이 마주 달린다.
내장산 백련암에서 원적암에 이르는 호젓한 숲 길가에는 굴참나무를 비롯한 아름드리 참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겨울철에 가면 대부분의 참나무 높은 빈 가지에 새집처럼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겨우살이를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영화 속에서 스파이더맨이 이나무에서 저나무로 이가지에서 저가지로 옮겨가며 그 물을 쳐 놓은 것처럼 연달아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번식의 비밀은 열매와 새에게 있다.
말캉말캉한 열매를 손이나 입안에 넣고 한번 터뜨려 보자! 마치 가래처럼 끈적끈적하고 미끈미끈한 과육에 적잖이 놀라게 될 것이다. 먹잇감이 귀한 겨울철에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되는데, 새들 또한 이 끈끈한 과육과 그 속의 씨앗을 소화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배설하게 된다.
그것이 다른 나뭇가지에 들러붙게 되면 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마르면서 단단하게 고정되고 봄이 되면 그곳에서 싹이 튼다. 싹이 나서 나무껍질에 기생뿌리를 박고 두 개의 잎을 매달기까지 대략 5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황금가지’라 하여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추녀 밑이나 마구간의 천장에 겨우살이를 매달아 두어 병과 마귀를 쫒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탄절에는 겨우살이를 문 위에 걸어두고 그 아래서 연인들이 키스를 나누거나 지나다님으로써 복과 장수를 얻는다고 하여 요즘에도 그 전통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항암효과가 있다하여 항암제로 널리 이용이 되고 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는 상상기생(桑上寄生)이라 하여 뽕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만을 약으로 쓴다고 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질이 평(平)하며 맛은 쓰고[苦] 달며[甘] 독이 없다. 힘줄 뼈, 혈맥, 피부를 충실하게 하며 수염과 눈썹을 자라게 한다. 요통(腰痛), 옹종과 쇠붙이에 다친 것 등을 낫게 한다. 임신 중에 하혈하는 것을 멎게 하며 태아를 안정시키고 몸을 푼 뒤에 있는 병과 붕루를 낫게 한다.’
예전에는 뽕나무가 흔했지만 지금에는 뽕나무가 귀할 뿐더러 뽕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발견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때문에 요즘에는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주로 약재로 이용한다. 밤나무와 버드나무 등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는 두통 증상이 있다하여 이용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사전>에는,
‘맛은 쓰고 성질은 평하다. 간경, 신경에 작용한다. 풍습(風濕)을 없애고 간신(肝腎)을 보하며 근골(筋骨)을 튼튼하게 하고 태아(胎兒)를 안정시키며 젖이 잘 나오게 한다. 약리실험에서 자궁수축작용, 강압작용, 지혈작용 등이 밝혀졌다. 요통, 관절염, 태동불안(胎動不安), 유즙불하, 고혈압, 해산 후 자궁의 이완성 출혈 등에 쓴다.’ 고 한다.
겨우살이는 주로 겨울에 채취한다.
높은 가지에 기생하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아예 기생나무를 잘라버려 산림을 훼손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직접 채취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요즘 시골장에 가면 비교적 싼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생재의 경우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 이용한다. 차로 다리고자 할 경우 쇠붙이를 싫어함으로 유리주전자나 약탕관에 넣고 약한 불로 끓이는 것이 좋다.
유걸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7.01.0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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